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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리스 부인 Oct 02. 2022

믹스커피

영혼까지 달래주는 달달한 맛

먼지가 날리는 건설현장 모퉁이 가건물,  '함바집(현장 식당)'이라 불리는 수진의 식당이 있다. 

아이보리색 플라스틱 패널로 지어진 그곳에는, 일상과 사람, 그날의 이야기 그리고 하루를 버티게 해 주는 음식이 있다


누군가 묻는다. 막일이라 불리는 '노 가 다'가 힘드냐고. 

정답은 없다. 편하게 어느 누구나,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고, 아님 더운 여름날에 입은 옷이 몇 번이고 땀에 젖는 미치도록 힘든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힘든 일'이라는 게 맞다. 다만 많이 힘드냐, 아님 조금 덜 힘드냐의 차이일 것이다. 

물론 일하는 분야와 공정에 따라 그 강도도 다를 것이다. (전문적 기술을 필요로 하는 분야일수록 육체적 '힘듦'은 약하지만 정신적 '힘듦'은 쎌 수 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듯이 철근팀, 목수팀, 해체팀, 시스템팀(건설 작업을 위해 쇠파이프를 이용해 건물 내외부에구조물을 만드는 작업으로 일명 '동바리'라 불리기도 한다.) 모두 각 팀에 속해 있는 근로자들 마다 '힘듦'에 대한 정의와 강도도 제각각이다.

시스템 동바리 작업: 건조물을 지지하거나 사람이 다니면서 작업하는 공간(비계)를 만드는 일이다.

'힘듦'에 대한 생각이 사람마다 다르듯이, '힘듦'을 해소하는 방법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은 일과 후, 저녁 반주로 소주를 마시며 피로를 푸는 경우가 많다. 반면 젊은 근로자들은 술보다 피시방에 가서 게임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하지만 일과 중, '힘듦'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모두가 인정하는 '믹스커피'가 있다. 

한집 걸러 하나 있을 정도로 커피전문점이 많아지고 어느 편의점에서도 원두커피를 사서 마실 수 있지만, 건설 현장을 둘러싼 플라스틱 패널 안에 있는 세계에서는 믹스커피 만한 것이 없다. 간혹 밖에서 점심을 먹은 젊은 근로자들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물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지만, 짬짬이 있는 휴식 시간마다 쌓인 피로를 풀어줄 수 있는 것은 역시 믹스커피이다.


수진의 식당에는 퇴식구 옆에 믹스커피 스틱이 가득 들어있는 바구니와 종이컵이 있다. (최여사가 매일 아침마다 200개 들이 커피 한 박스를 뜯어 담아놓는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식판을 퇴식구에 놓고 믹스커피를 한 잔씩 타서 나가곤 한다.

 

노란색 커피 스틱을 뜯어 종이컵에 붇고, 보온 통에 담겨 있는 뜨거운 물을 절반정도 따른다. 진하게 먹는 사람은 절반보다 적게 물을 따르고, 연하게 먹는 사람은 반보다 많이 따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손에 든 종이컵을 후후 불어가면서 식당 문을 나서는 것은 더운 여름이나 입김이 하얗게 나오는 겨울이나 같은 풍경이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한 손에 종이컵을 들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담배를 피우지 않은 사람들은 두 손으로 종이컵을 감싸고 조금씩 식혀가며 커피를 마신다. 


근로자들은 잠시 쉬는 시간이 주어지면 수진의 식당 앞으로 간다. (수진은 식사시간이 끝나도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브레이크 타임에는 식당 문 밖 테이블 위에 보온통과 믹스커피를 놓아 둔다.)

머리가 희끗한 인부가 커피를 두 잔 만들어 뒤에 따라온 젊은 청년에게 건넨다.

"마셔 봐, 몸이 좀 녹을 거야."

젊은 남자가 후후 불어가며 커피를 마신다. 둘은 말없이 커피를 마신다.


나이 든 인부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이거 마시면서 저기 좀 봐, 하루 중에 숨을 천천히 쉬며 하늘 볼 시간은 이거 마실 때뿐이거든."

젊은 청년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오늘따라 푸른 하늘이 더 높아 보인다.



@ 수진의 TIP

여름에는 종이컵에 물을 절반 이하로 타고, 얼음 두 개를 넣어 마시면 천국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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