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사는 얘기
저는 스무 살 이후 지금까지 약 30여 개국, 40여 개의 도시를 다녔습니다. 대학생 때 처음 호주 어학연수를 시작으로 미국 아르바이트, 졸업 후 해외 인턴생활로 이어지며 기업용 제품의 해외영업을 하면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실천했습니다. 집과 아주 멀리 다른 시간대 속 다른 환경의 장소에서 틈틈이 삶에 대해 다양한 사색을 갖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이제 제가 방문했던 나라에서 당시 경험했던 것들을 떠올리며 당시 변화했던 세계관 인생관 직업관을 얘기해보려 합니다.
1. 호주
선생님 : “당신의 모국어도 아닌 영어를 그렇게 미국식(겉멋 든 것 같은)으로 발음하면 좋지 않습니다.”
나 : “… …”
선생님 : “아이 캔”(I can), “아이 칸트”(I can’t) 미국식으로 잘 구별이 되나요?”
나 : “캔”, “캔(트)”, “… …”
선생님 : 처음부터 영어 고유의 발음으로 연습해야 합니다. “캔(can)”, “칸트(can’t)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들어와 2년 총 8년을 영어를 배우면서 영국도, 미국도 아닌 호주에 앉아서, 난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가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난 8년 동안 배워온 미국식 영어가 이제 와서 잘못되었다며 고치라는 호주 선생님의 강요를 받고 있었다. 난 앞으로 만날 외국인들과 어떤 언어로 의사소통하며,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2. 산타바바라 미국
나 : “넌 국적이 뭐야?”
외국인친구 : “어머니가 프랑스 인이고, 아버지는 미국인인데, 사실, 프랑스에서 태어나서 미국에서 살고 있어, 여권도 프랑스와 미국 두 개를 갖고 있지”
나 : “그럼 넌 어디 사람이야?”
외국인친구 : “나? ㅎㅎ 글로벌 시티즌이지~”
대학을 갓 졸업한 나는 국적을 두 개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조차를 몰랐다. 내게 조국은 오로지 대한민국뿐인데, 저 친구는 미국과 프랑스가 축구하면 어딜 응원하지? 그런 건 관심 없나? 넓은 세계 속, 유일한 나의 조국 대한민국 국민으로 난 여러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면해 나갈 것인가
3. 홍콩
나 : “너 중국어 쫌 하잖아~, 네가 길좀 물어봐라~”
내 친구 : “(중국어로 샬라샬라~)”
중국인 : “… …”
나 : “왜 못 알아듣냐?”
내 친구 : “관둥어를 쓴다는 가봐~ 못 알아듣네~”
나 : “그게 모야?, 중국어 아냐?”
내 친구 : “북경에서 쓰는 중국어 북경어, 광둥성에서 쓰는 중국어 광둥어”
어릴 적 그렇게 많이 봤던 홍콩영화의 중국어가 북경에서 만든 전통중국영화와 다른 말을 쓰고 있다는 걸 이제 성인이 돼서야 눈치챘다. 결국 그 광활한 대지의 수십억 인구의 언어가 중국어라는 걸, 그리고 영어도 필리핀 영어, 호주 영어, 캐나다 영어 등등, 그렇게 존재한다는 걸… 한국어도 충청도어, 제주도어가 존재한다는 걸… 중국에서 만난 조선족의 한국말을 도무지 못 알아들으면서 인천에서 태어나 자란 인천 한국어를 구사하는 나는 얼마나 한국어를 내 모국어로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는 걸까
4. 뉴욕 미국
나 : “너네 나라는 영어 안 써? 유럽에서 왔잖아”
스웨덴친구 : “스웨덴어를 쓰고 영어는 안 써”
나 : “스웨덴어라는 게 있어?”
스웨덴친구 : “어 당연하지, 너도 한국어 하잖아~”
유럽은 독일어 아니면 프랑스어 정도만 쓰는 줄 알았지, 나라마다 그렇게 각각 다른 말들을 사용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생각하면 가끔, 한국이 중국어를 하는 줄 알고, 또는 일본하고 같은 말을 쓰는 줄 아는 외국사람들을 만났던 기억이 난다. 내가 참 무식하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들이 바로 내 자신인 걸 부끄럽게 깨달았다. 미국에 십 년을 살아도 한국말만 쓰고 있는 아줌마, 베트남에서 사업하면서 베트남어 한마디도 못하는 아저씨, 한국 대학에서 8년을 넘게 강의하면서 한국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른다며 부끄러워하던 나이 든 미국인 교수가 생각났다. 내가 키우는 애완견은 한국말만 알아듣고, 미국에 있는 애완견은 영어만 알아듣는다는 건 내가 애완견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지도 않으면서 의사소통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수백 개의 국가와 수십 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수십억의 사람들과 의사소통에서 난 얼마나 언어에 의존하는 걸까
5. 우즈베키스탄
나 : “러시아어로 고맙다고 어떻게 해?”
우즈벡친구 : “스파시바” 그런데, 여긴 우즈벡이니까 우리말로 “라크메트”라고 하면 더 좋아해
나 : “러시아어가 너네 말 아니야?
우즈벡친구 : “소련연방에 있어서 그 말을 썼던 거지, 우리말이 따로 있어”
나 : “그럼 전 국민이 러시아어와 우즈벡어를 할 줄 아는 거야?”
우즈벡친구 : “아주 구석진 시골사람은 러시아 말을 못 할 수도 있지 오히려”
미국식 교육과 친미주의적 환경 탓에 러시아권에 나라들은 정말 깜깜했다. 다닌 나라들은 무조건 맥도널드가 있고 코카콜라를 먹을 수 있었다. 어릴 적 스위스 국민이 4개 국어 한다고 해서 정말 신기했는데, 중앙아시아 사람들도 전 국민이 무조건 다 2개 국어를 한다는 건 또 새로웠다. 그리고 추가로 이슬람교도라는 것도… 어릴 적 아버지 서재 구석에 푸쉬킨의 작품을 읽으면서, 친척형이 구해준 마돈나 테이프를 들으면서 난 왜 아무런 눈치를 못 챘었는지… 미국이 영향을 준 나라만 익숙한 난 세상의 절반인 반미국가들에 대해서 대표적인 친미국 대한민국 국적인으로 어떤 생각으로 대해야 하는 걸까
6. 다마스커스 시리아
시리아 현채인 : “여기는 기독교인들 지역이어서 맥주집이 있어!”
나 : “기독교인들 지역? 중동은 다 이슬람교 아니야?
시리아 현채인 : “무슨 소리야~” 내 친구도 기독교인데…
나 : “이스라엘 하고 사이가 좋지 않잖아~”
시리아 현채인 : “그건 영토적인 문제구~”
가뜩이나 중동에 대한 정보가 없는데 중동사람이 기독교인도 있다는데 충격을 받았다. 전 중동국가들이 금요일이 휴무라는 것도, 아랍국가들이 아라비아 숫자를 쓰지 않는 것도, 왼손잡이가 많지도 않은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쓰는 것도… 정말 하나도 몰랐다. 헐리웃 영화 속 터번을 두른 테러리스트로 등장하는 중동사람이 기독교인도 있다니… 서양사람들은 동양사람은 다 불교를 믿는 줄 알 수도 있겠네…어느 순간 세계는 열렸고 모르는 문화가 아주 쉽게 주변에 다가왔지만 세상 밖은 다행히 나의 무지보다 훨씬 나에게 관대하게 대해줬다. 오히려 내가 더욱 문을 닫고 편견 속 시간을 낭비하는 게 지속되었고 이제와서는 그런 시간이 정말 아깝다는 생각뿐이다.
7. 두바이
나 : “세계적인 국제도시가 왜 이렇게 덥냐~ 도무지 이해가 안 가네 사람들이 여길 왜 좋아하는지”
두바이친구 : “세상에서 가장 비싼 물건, 바로 석유만 있으면 날씨는 상관없어”
생각하면, 라스베가스도 사막에 세워졌다. 많은 거래량의 돈만 있으면 사람은 모이고 도시는 세워진다. 내가 더운 건 단지 내가 여기에 흥미가 없고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난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 매년 반복되는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탓해가며 얼마나 더 투덜대며 살아갈 것인가
8. 사우디
나 : “아무리 기도한다고 길 한복판에 차를 세우고 가냐”
사우디에이전트 : (기도하느라 없어졌다)
하루 5번 메카방향으로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평생 기도를 하는 사우디 사람들… 도대체 일은 언제 할 거냐고 물을 수 있다. 흡연을 하는 사람은 최소 하루에 5개피 이상은 피우는 것 같다. 기도가 생활이라면 흡연자들의 담배 피는 시간하고 뭐가 다를까… 의심하지 않고, 주저하지 않고 그렇게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백 가지 생활습관 같은 일들이 누군가에게 다르게 비칠 수도 있다고 아주 조금, 잠깐이라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는 난 멍해졌다.
9. 모로코
나 : “아프리카에서 아직 프랑스어가 많이 통하네요?, 식민지까지 했으면서”
모로코에이전트 : “우리는 프랑스 식민 지였던걸 그렇게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식민지라는 게, 우리가 겪은 것과 같지 않은 나라도 많다. 한편으론 우리만큼, 우리보다 더 심한 상황을 경험한 나라들도 참 많다. 총칼을 들고 누가 누굴 돕는다는 건 어불성설이겠지만, 경험은 무엇이든 간에 소중한 자산이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였던걸 치욕적으로 생각하는 건 사실이지만, 인정하고 극복할 때 비로소 다시는 그러한 치욕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잘 안다. 나라를 빼앗기고 끊임없이 항쟁했던 독립투사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변절했던 이들, 대세를 따라 움직인 역적이 된 사람들… 여전히 남북이 갈라져 있는 이곳에서 나는 대한민국 남한 인천 사람으로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 걸까
10. U.A.E.
레바논에이전트 : “알라가 말하길, 우리에게 3가지가 있으면 세상의 주인이라고 합니다. 첫째, 오늘 먹을 음식, 둘째, 건강한 몸, 셋째, 쉴 수 있는 장소.”
나 : “난 그 3가지를 갖고 또 여러 가지 다른 것들을 갖고 있는데? 난 주인 정도가 아니라 왕이네 ㅎㅎㅎ”
코란이든, 성경이든, 불경이든, 모두 참 좋은 말로 인간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어디에도 누구 말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없는데, 내가 가진 책이 맞다고 얘기하면 남이 가진 책은 틀린 거냐고 싸움이 난다. 그렇다고 봄이 오면 왜 꽃이 피는지, 하늘은 왜 파란지, 남녀는 왜 사랑하는지 아무도 설명하지는 못한다. 유신론자는 무조건 하나의 같은 신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여전히 풀지 못하는 대자연의 질문들을 갖고 자연의 섭리 속 난 무엇을 믿고 의지 할 것인가
11. 몽골
나 : “한국사람이 몽골사람하고 참 많이 닮았다고 하죠?”
몽골친구 : “칭기즈칸이 한국에 가서 3년간의 기록이 없다는 얘기가 있어요, 우린 그때 서로 섞였을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
나 : “ㅎㅎㅎ 미스터리한 역사는 늘 그렇게 흥미를 끌죠”
우리가 최근에 지배받았던 민족은 일본이다. 그리고 중국인들보다 일본사람들과 우리는 참 많이 비슷하다. 만약 일본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한다면, 난 매우 불쾌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세계관대로라면, 몽골은 전 세계가 증오하는 국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동북아, 극동아시아 속 대한민국의 역사는 로마로 뒤엉킨 유럽역사와는 다르게 아주 독립적인 역사일까 몽골도 내몽골 외몽골이 있다. “임”씨는 중국에서 온 성이라는데, 난 중국에서 온 조상님의 자손으로 한국에서 산다는 거면 난 한민족이 맞는가
12. 프랑스
아시리아인 : 예수님이 쓴 언어가 뭔지 아세요?
나 : 히브리어?
아시리아인 : 아람어 라고 합니다.
나 : 아람어????
아시리아인 : 저는 스웨덴에 살지만 아시리아인 이고요, 우리는 이 아람어를 씁니다.
이라크와 시리아에 있는 아시리아를 중심으로 전 세계 약 350만이 분포되어 있는 나라 없는 민족 아시리아인, 그리고 예수님이 사용했다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자신들의 종교와 커뮤니티를 설명하는데, 정말 생전 상상도 못 한 처음 듣는 얘기들이었다.
이슬람의 성전 코란은 당대 언어를 그대로 적고 지금까지 하나도 변경 없이 전해지고 있다면서 그 정통성을 강조한다. 예수님과 같은 민족인 유대인은 기독교를 부정하고, 내가 알던 예수는 아람어를 써서 제자들을 가리켰다는데 그 언어는 이제 세상에 아주 극소수만 아는 언어이다.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든 간에 사건의 진실은 하나이다 그리고 그걸 전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겠지만 그 방식이 뭐든 간에 진실과 헷갈리면 안 될 것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은 그저 손일뿐이다.
13. 터키
나 : 어디서 오셨어요?
쿠르드족 : 쿠르디스탄에서요
나 : 쿠르디스탄? 그게 어디죠?
쿠르드족 : 이라크 안에 있어요
나 : 아... 나라는 아니죠?
실례가 되는 건 알았지만, 내 무지를 가장 빨리 깨는 것은 직선적인 질문과 바로 듣는 답이었다. 국가가 없는 민족으로 가장 많은 3,300백만의 쿠르드족. 몇 해 전 이라크에서 독립을 시도하다 무산되었다는 뉴스를 봤다. 미국의 노예제도, 한국의 양반제도, 인도의 카스트제도 등등 내가 아는 인종차별제도는 인간존엄성과 평등에 어긋나는 제도로 무조건 폐지되야 하고 그래서 폐지되었다. 국가 안에는 민족이 있다. 그리고 그 국가 안에는 여러 민족이 있을 수 있다. 모든 민족이 국가를 가질 수는 없다. 아니, 국가를 갖고 싶은 민족이 자유롭게 국가를 세울 수가 없다. 위아래, 흰색검은색, 종족혈통 꼭 인간존중의 사상이 아니더라도 불평등은 충분히 가행되고 지속된다. 내가 사는 땅에 남이 들어오면 싫고 내 민족이 사는 땅을 다른 민족에게 주기는 더더욱 싫다. 대한민국도 그랬고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그렇다. 우리가 미워하고 안된다고 외치는 건 학대 수준의 극악무도한 반인륜적인 건에 대해서만 일뿐이다.
14. 에티오피아
현재 2011년 8월
에티오피아인 : 우리는 지금 2003년입니다.
나 :???
동료 : 저도 들었는데 여기는 예수님 탄생이 8년 늦게 전달되었대요 그래서 여기는 자신들이 믿는 예수님 탄생연도로 계산해 우리보다 8년이 늦는다고 하더라고요
모르는 건 배우면 되고, 궁금한 건 찾아보면 된다. 하지만 아예 생각의 근본은 바꿀 수가 없다. 모두가 지금 2011년이라고 당연히 생각하고 그렇게 의심하지 않는데 아프리카대륙 동쪽 끝, 그리 유명한 나라는 아니지만 우리 6.25도 참전한 나라가 우리와는 아니 세상과 다른 서기 A.D. 를 쓰고 있다는 건 아예 생각의 근원이 바꿔야 하는 사실이었다
하루는 24시간, 1년은 365일 모든 게 우리가 합의한 사실이지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 난 그렇게 정해놓은 세상에 온갖 재주를 부리며 사는 다람쥐 느낌이었다. 내 나이 결국 지구의 공전으로 계산된 횟수라는 것, 다른 은하계의 생명체와 젊고 늙음은 어떻게 비교해야 하는 걸까.
15. 알레포 시리아
현지 법인을 통해 비자를 받고 몇 번을 두바이에서 다시 비자 확인을 받고 비행기에 탔다. 정말 적은 인원의 외국인 입국심사 줄. 마침내 내 차례에 여권과 비자를 보여줬다.
입국심사관 : 국가별 입국 시 내는 비용이 적혀 있는 큰 간판을 가리킨다.
나 : 한 50개국은 표시되어 있는데...... 찾았다! 어? 근데 북한이다.
입국심사관 : 내가 나라를 못 찾자 나를 불러 다른 방으로 데려간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Others : USD35"을 가리키며 여기 없는 국가는 $35 내라고 한다.
북한도 입국비자비용이 표시가 되어 있는데, 대한민국이 왜 없지? 세상에 우리만 북한이 나라가 아니라며 괴수집단으로 교육받았다. 알고 보니 중동전에 북한공군이 시리아를 목숨 바쳐 지원해 시리아와 북한은 거의 혈맹의 의형제 수준이었다. 도대체 왜 우리는 북한은 주체사상에 세뇌되었다고 가리키며 온갖 미움을 키우며 일절 다른건 얘기도 안해준 건지... 김수영이란 시인을 검색하면 절대 나오지 않는 시가 있다. 김일성 만세
16. 이집트
아침에는 네발, 점심에는 두발, 저녁에는 세발인 건? 그래! 보러 가자 스핑크스!
피라미드 입구부터 정말 난장판이다. 근데 관광객을 위해 적어 놓은 입장료와 아랍숫자로 적어놓은 입장료가 틀리다. 아랍숫자가 두 배는 싸다. 모지?
일단 아랍숫자로 돈을 냈다. 아무 소리 없이 표를 준다.
아... 이집트, 세계 7대 불가사의 피라미드는 온통 사기꾼과 삐끼들로 가득했다. 같이 온 사람 외에는 다 호객행위하는 사람으로 보면 된다.
우리는 유명한 무언가를 보게 될 때면 당연히 그 물건이나 장소의 신비함과 경외로움을 상상한다. 결코 가는 여정의 또는 가서 더티하고 피곤한 사기 수준의 호객행위는 이런 상상에 낄 틈이 없다. 꿈과 현실을 얘기할 때 늘 이집트가 생각나고 피라미드가 생각난다. 절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 세계인들의 버킷리스트 1위 피라미드였다.
17. 남아공
키 큰 흑인이 조깅을 하고 있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다. 자연 속 아니 도시 속 그냥 세상 속 흑인은 정말 아름답다고 느낀 처음이었다. 검은색이 주는 왠지 모르는 위화감에 흑인에 대해 항상 나도 모르게 갖는 편견이 있었다. 남아공에서 본 흑인들은 정말 자연스러웠고 모두가 다 친절했다. 악수를 하기보다는 가볍게 주먹을 부딪히고 인사말을 건네기보다는 턱을 올려 눈웃음을 건네는 따뜻한 자연 그 자체였다. 정말 신이 만든 가장 자연에 가까운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 누구랑 있어도 조화로운 사람, 달라서 어색한데 바로 그 벽을 허무는 사람들. 나는 왜 황인이라 부르지 않는지 흑인이 왜 특별한지 깨달았다
고등학교시절 수업을 마치면 학교도서관에 앉아 책도 읽고 친구들과 얘기도 하고, 이런저런 것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큰 책상 앞 대형 유리창으로 보이는 서해의 작은 섬들이 석양에 물드는 것을 보는 게 좋았고, 곧 이곳을 벗어나 내가 서있을 창밖의 세상을 상상을 하는 것도 참 좋았습니다. 어느 날, 그 풍경을 가깝게 보고자 창가에 다가갔는데, 멀리서 보지 못했던 학교 앞 바로 밑에 즐비한 판자촌들…. 날씨는 추웠고, 이불로 창문을 막고, 박스로 벽을 세우면서 그렇게 고통스럽게 겨울을 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겨울햇살 따뜻한 내가 있는 곳과 사뭇 다른 풍경, 그곳에서 제가 생각한 건, 도대체 저 사람들에게 삶이란 무엇이길래 사는 걸까… 춥고, 추하고 악취 나는 저곳에서 자고 일어나 일 나가고 들어와 다시 편안하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을까…
참 어렵지도 않았던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오랜 세월을 그냥… 그렇게 그저 살아만 왔습니다. 가난한 극오지의 나라들을 다닐 때면 느낀 것이 있습니다. 그곳 사람들의 참 열악한 환경과 도구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진 완성품의 물건은 정말 뛰어났습니다. 당연히 더 높은 교육과 좋은 도구를 가진 우리나라의 물건이 더 낫지만, 가격 및 노력대비 완성도를 얘기하자면 그들의 것이 훨씬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새 발전은 스스로를 쓸모없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왜 어떤 것을 할 때면, 무엇을 만들 때면 꼭 그렇게 이것저것 다 갖춰서 하려고 하는지, 좀 부족하게, 좀 모자라게 해서는 못하는 건지… 오히려 그런 발전된 문명과 환경이 나를 자유롭지 않게 더 불편하고 무능하게까지 만들고 있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삶이란 그렇게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이고, 우리는 그 안에 최선을 다하는 희열과 만족을 끄집어내는 주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은 삶의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이란 정말 소중하고 귀중한 것입니다.
기억은 삶의 증거이며 산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처럼.. “기억한다 고로 나는 살고 있다”
난 어떻게 살 것인가? 여러분은 어떻게 살 겁니까? 저는 제가 기억하는 대로 그렇게 소중하게 살 것입니다. 그게 지금까지 길게 써온 세계관 가치관 인생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