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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소담유리 Jun 08. 2020

극한직업 "독박 육아"

힘들고 아픈 ‘육아 전쟁터’


 혼자 독박 육아를 하면서 폭풍 성장하는 아들과 미친 듯 밀려오는 피곤함 사이에서 '육아 우울증'을 심하게 앓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아이는 남들보다 체력이 넘쳐 집이나 밖이나 할 것 없이 늘 몸으로 부딪히며 격하게 놀기를 즐겼다. 걸음걸이부터가 ‘쿵쿵쿵’인 아이는, 등치가 커지자 살짝만 뛰어도 집이 울렸다. 또한 아이들의 장난감은 여러 가지 소리를 냈고, 시끄럽게 하는 날이 많았다. 아파트 생활을 하다 보니 집에 있으면 아래층에서 수없이 올라왔다. 좋은 말을 들을 리 없었다. ‘죄송하다’고 말을 하면서도 마음은 좋지 않았다. 이해는 하지만 늘 내 인상은 찌푸려져 있었다. 눈치가 보였던 나는 순간순간 아이를 혼내게 되었고, 혼난 아이는 울었다. 우는 아이를 보면 속상하고, 미안했다.


미안한 마음에 아이를 데리고 키즈 카페에 가기도 했다. 한데 키즈 카페에 데려가는 날엔 어김없이 아이의 폭력성이 문제가 되었다. 아이의 성향을 잘 아는 나는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 무수히 노력했다. 키즈 카페에 가면 늘 아이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아이의 행동을 제재했다. 문제가 생기면 얼른 아이 대신 사과를 했다. 활동적인 아이를 쫓아다닌다는 것은 쉽지 않다. 아이들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겪어 본 부모님들은 알 것이다. 그 힘든 일은 키즈 카페에서의 나의 일과였다. 키즈 카페는 즐거운 곳이 아니었다. 엄마에게는 막노동보다 더 힘든 곳이었다. 아이와 키즈 카페에 가서 2시간을 놀다 오면, 4시간의 노동을 한 것보다 더 힘들었고 지쳐 있었다.


그렇게 놀고 집으로 돌아오면 순간순간 스트레스와 함께 피로가 몰려왔다. 피로가 몰려올 때면 ‘누가 때려죽인다.’ 해도 잠을 자야 할 만큼 힘들었다. 적어도 하루 한 두 번 정도는 그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병든 닭'인 냥 잠이 들곤 했다. 아이가 어리다 보니 잠이 밀려올 때면 아이에게 TV를 틀어주는 것 이외엔 해줄 게 없었다. TV를 틀어주고 시계를 보며 잠시 잠을 청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잠을 자는 터라 자는 시간은 5~10분 남짓,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이는 엄마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TV를 보면서도 자고 있는 엄마에게 와서 안기고, 징징거리며, 잠을 깨웠다. 그렇게 제대로 잠을 청해보지도 못하고, 잠시 5분 정도 눈을 감았다 뜨면 집안은 난장판이었다. 아이는 그 잠시의 시간 동안 내게 1시간짜리 청소를 하게 만들어 주었다. 우유를 쏟고, 그 위에 휴지를 풀어 거실 한가득 채우고, 장난감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발 디딜 틈조차 없는 거실 바닥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쩔 수 없이 그것들을 치우다 보면 내 속에선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이에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내 아이는 왜 나를 생각해주지 않지?'라는 생각에 울기도 했다. ‘내가 아파서, 너무 피곤해서, 정말이지 누가 때려죽여도 잠을 자고 싶을 만큼 힘들어서 나도 모르게 쓰러져 잠을 청한 건데... 어째서 내 아들인 너는 나를 조금도 생각해주지 않는 거지?’, ‘가만히 앉아서 TV 시청 좀 해주면 좋으련만... 어째서 가만히 있지 않는 거지?’ 내 머릿속에는 무수한 생각들이 스친다. 나를 잠시도 쉬지 못하게 하는 아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원망스러웠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아이에게 말해봐야 소용없었고, 말 못 하는 아이에게 화를 내봐야 아이는 말없이 눈물만 글썽일 뿐이었다. 무언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어린아이의 눈을 보니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아이 때문에 나 또한 많이 답답했다. 좁혀지지 않는 서로의 마음의 거리가 참 멀었다. 아이도 답답했겠지만, 나도 많이 힘들었다.      



 힘든 시간이 계속되어 가면 갈수록 아이는 점점 더 폭력적이고 산만하게 변해갔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문제로 지적하는 사람들과의 불편한 만남 생기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나는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누구라도 내 아이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를 해오면,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나도 알고 있는 아이의 단점들이지만,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듣는 건 무엇보다 싫은 일이었다. 그런 말을 듣고 온 날이면 나의 부정적인 생각들은 활화산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사소한 일에도 아이를 다그치게 되고, 심하게 훈육을 했다. 그렇게 육아의 악순환은 계속되었다.


 아이를 훈육하고, 다그치는 그 시간은 나에게 많은 피곤과 스트레스를 가져다주었다. 내 말에 따라와 주지 않는 아이를 보면 화가 났고, 어떻게든 바꿔보려 안간힘을 썼다. 나의 노력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에게 하루에도 열두 번씩 널뛰기를 하는 나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안 그래도 갑상선 기능의 저하로 감정 기복이 심한 나에게 피곤과 스트레스는 강적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니 피곤함은 두 배로 늘었고, 생각이 많아지니 숙면을 취할 수가 없었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일어난 아침은 몸이 무거웠고, 축축 쳐졌다. 일어나면서부터 짜증이 섞여 있었다. 사라지지 않는 피곤함이 나를 억눌렀다. 그런 몸을 이끌고 일어나 아침부터 아이가 잠들기 전까지 육아를 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옥이었는지... 나의 힘든 상황 또한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돌고 또 돌아 내게로 다시 왔다. 지금도 느껴지는 참 힘든 초보 육아, 독박 육아의 회상이다.

 

 신랑은 육아에 대한 관심은 1도 없었다. 아이는 엄마가 키우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는 사람이었다. 사회생활로 피곤함을 핑계로 아이와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얼굴 한번 보기조차 힘들었다. 나만 혼자 하는 '독박 육아', 신랑은 모르는 아이와 나만의 '육아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하루하루를 ‘육아 전쟁터에서 살아남기’를 목표로 하며 지냈다.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결혼 생활도,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던 육아도 너무 힘에 부쳤다. 육아라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모르고 아이를 낳았던 그날, 나는 아이를 잘 키울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이가 내 생각대로 쉽게 쉽게 커주는 줄 알았다. 아이는 낳아 놓기만 하면 지 알아서 커주는 줄 알았다. 나도 그렇게 컸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의 그 ‘오만 방자’ 했던 나의 자만심은 늘 후회로 되돌아왔다.     



 “우라질! 세상에 육아만큼 극한 직업이 또 있을까?”

 육아는 지루하고, 힘든 극한 직업이다. 육아는 끝이 없는 기나긴 다큐멘터리이다. 출근을 하고, 잔업을 하고, 야근을 해도, 퇴근 시간이란 없다. 정해져 있는 보수도 없으며, 집안일뿐만 아니라, 아이에 관한 여러 가지 일들을 다 해내야 한다. 요리, 청소, 건강관리, 친구 관리, 스타일링에 학습지도까지 다방면으로 모든 일을 다 해내고 있으면서도 그 일을 인정받기란 쉽지 않다. 아이의 재능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그 성과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우라질! 육아도 문서작성을 할 때처럼 미리 보기 기능을 이용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의 상황을 미리 보기로 보았다면, 미리 보기를 통해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 다시 고쳐나갈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내 삶도, 내 아이 육아도 ‘전쟁터’가 아닌 ‘행복터’가 될 수 있을 텐데...

참 아쉽기만 한 독박 육아의 고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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