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우울증, 감정조절 불가, 하루 열두 번도 더 욱~
“출산 후 85%에 달하는 여성들이 일시적으로 우울감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산후우울증’, 정신없이 아기를 키우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 있고 내 시간은 없이 오로지 아이 뒤치다꺼리하는데 바쁘고 ‘지금 내가 뭐 하는 거지?’ 답답함이 밀려온다면 당신은 ‘육아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육아 우울증을 심하게 겪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첫째 아이 출산 6개월 만에 갑상선암수술을 받았고, 수술 후 연고도 없는 곳으로 이사를 와 새로운 환경에서 아이와 함께 적응해야 했다. 새로운 곳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누구 하나 말 붙일 곳이 없었다. 육아를 하면서 늘 외로움을 느꼈다. 산후 우울증과 수술 후유증, 육아 우울증까지 겹쳐 정말 힘들었다.
아이가 8개월이 되자 기던 아이가 일어서기 시작하고, 분유를 먹던 아이가 분유와 함께 이유식을 먹고, 사물을 만지고 떨어뜨리며 본인의 역량만큼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엄마인 나는 하루 일과가 벅차기 시작했다. 아이의 이유식을 만들어야 했고, 하루 열두 번도 더 쏟아지는 물과 음료수를 닦아 주어야 했다. 거실 가득한 아이의 널브러진 장난감과 깔끔 떠느라 매 끼니 먹고 난 후 갈아입힌 옷 세탁 등 할 일은 늘 산더미였다. 매일 반복되는 헬 육아로 육아는 점점 더 힘들었고, 결국 생활이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육퇴(육아 퇴근)하고 싶지만 아이들은 더 보채고, 독박 육아로 집안일과 육아까지 모두 내 몫으로 해내며, 말할 상대 없이 온종일 집에만 있으니 나만 혼자 도태되고 소외된 느낌을 받는다. 모든 관심은 ’ 아기‘에게 집중되고, 나는 아기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인 것처럼 ‘투명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남편의 야근, 출장 등 업무가 가중돼 있다 보니 남편 역시 피곤한 상태, 서로가 예민, 부부 사이 대화 단절, 독박 육아를 하다 보니 분노, 짜증, 답답, 갑갑, 우울함, 불면증까지...” 이 모든 것이 육아 우울증을 겪는 엄마의 고통들이다. 아시아투데이 카드 뉴스에 나온 내용이다.
“육아 우울증, 감정조절 불가, 하루 열두 번도 더 욱~~”
내가 겪은 우울증의 증상이 그랬다. 감정조절이 전혀 되지 않았고, 아이의 행동을 보며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욱했다. 아이는 그저 아이일 뿐인데 나는 아이를 어른으로 바라보며 실수를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의 감정 상태에 따라 아이의 행동이 실수가 아닌 반항으로 여겨졌고, 사소한 일도 크게 화를 냈다. 하루 종일 집에서 나와 눈 마주치며 말하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자는 것이 아이 하나뿐 이였으니 내 눈에 보이는 사람은 아이뿐 이였다. 그런 아이가 내 감정의 수혜자가 되었던 것이다. 말도 못 하는 아이와 대화를 시도하기도 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고 혼내고, 실수를 하면 한심한 듯 바라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기 짝이 없으나 그 당시의 나는 육아가 처음이었고, 모든 것이 서툴렀으며, 내 안의 우울증을 드러내지 못하고 깊이 감추고 있었다.
내가 감추고, 모른 척하는 사이에 우울증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었다. 사회생활을 한참이나 했던 여자로서 집에서 말 못 하는 아이만을 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가 사랑스럽고 이쁘기는 했지만, 답답함은 이길 수 없었다. 특히나 친정은 멀어서 갈 수도 없었고, 신랑님 회사 때문에 이사한 곳은 아무 연고가 없는 곳이라 주위에 아는 사람 하나 없었다. 잠깐이라도 소통을 할 만한 곳은 없어 보였다. 딱히 찾아 나서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대화를 할 상대조차도 없는 이곳에서의 육아는 외로웠다. 집에서 은둔 생활을 하다 보니 점점 더 집콕 생활에 젖어들었고, 외출이 귀찮고 싫었다.
어느 날의 나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처럼 아파트 베란다 밖을 바라보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내 하루가 굉장히 공허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아이와 실랑이를 하며 독박 육아로 너무나 바빴다. 그런데 그 모든 시간이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낸 시간 마냥 내가 뭘 했는지 생각조차도 나지 않았다. 무의미하게 지나쳐버린 내 하루가 너무 아쉬웠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했음에도 인정해주고 싶지 않은 하루를 보낸 듯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 가슴속이 더 쿵! 쿵! 주저앉았고, 내 가슴속에 차곡차곡 묻어두었던 우울한 감정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혼자 꿍하고 말없이 지내다가 신랑만 보면 대화를 시도했다. 나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는 신랑이 야속했고, 내 말을 듣지 않는 아이가 미웠다. 아이와 있는 낯 시간에는 아이를 혼내고 울리기 일쑤였고, 그렇게 밤이 되면 아이의 자는 모습을 보며 ‘미안하다’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회사 일로 지친 신랑에게 화를 내는 일이 많아졌고, 부부싸움을 하는 일도 많았다. 이 시기에 이혼하자는 말도 여러 번 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의 우울함이 가족 모두의 우울함이 되어버렸다.
우울함이 끝으로 치닫던 어느 날,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무서운 상상을 했다.
“우리 집은 아파트 9층. 여기서 뛰어내리면 죽을까? 내가 뛰어내릴까? 저 아이를 던져버릴까?” 지금 생각해도 정말 끔찍한 생각이다.
결국 나는 이 끔찍한 생각을 마지막으로 이 모든 상황을 벗어나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신랑에게 우울증이 심한 것 같다고 말했고, 인터넷을 찾아보며 알게 된 우울증의 극복 방법들을 말해주었다. 우울증은 집에 있는 가족이 돌보아 주어야 한다고 알렸다. 그리고 내가 한 그 끔찍한 생각들을 말해주었다. 신랑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냐?”라고 화를 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받아들인 듯했다. 그 후 신랑은 주말에 아이와 있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했다. 내가 화를 내거나 짜증이 나 있으면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기도 하고, 내가 혼자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다행히 신랑의 도움으로 상태가 조금씩 좋아졌다. 아이는 쑥쑥 자랐고, 첫째 아이라 너무 어려서 안 된다고 생각했던 어린이집을 생각을 바꾸고 보내기 시작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자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고, 마음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에 주위에 있는 엄마들과의 만남도 가지면서 나의 우울증을 하나씩 풀어나갔다.
우울증이란 것은 참 무서웠다. 나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둠 속을 깊이 파고드는 기분이었다. 그 속에 잠겨 있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았다. 그 시기 내가 빠져나와야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면 정말 끔찍한 상황을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힘든 직장생활도 어느 정도 잘 버텼고, 적정 시기에 결혼을 했고, 4kg의 우량아를 순산을 할 정도로 뭐든 잘 견뎌내는 성격이었지만, 첫째 아이 육아에서 육아 우울증은 피해 갈 수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육아를 하는 엄마라면 육아를 하면서 어느 순간 느껴지는 그 우울함은 그 누구도 피해 가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지금도 수많은 육아 맘들이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에게 알려 주고 싶다. 우울함을 느낄 때 그 감정들을 누군가에게 알리라고... 그것이 가족이 되었건, 친구가 되었건, 누구에게라도 나의 우울증을 알리고 도움을 받으라고 말이다. 그 수위가 지나치게 높고 헤어 나오기 힘들다면 병원을 방문해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요즘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의학의 힘을 빌리면 좀 더 수월하게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울증이라는 것은 혼자 힘으로 벗어나기는 힘들다. 여러 가지 강연을 통해서든, 책을 통해서든,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든, 꼭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으면 한다. 육아 우울증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가족 모두의 일이다. 내가 겪어 보니 내 우울함이 가족 모두에게 전달되는 것이 더 큰 문제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