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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소담유리 Aug 19. 2020

갑상선암! 피곤함이 주는 고통

갑상선암 경험담

 갑상선암 수술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분가를 하면서도 나는 이렇게까지 힘들어질 거라는 걸 예상 못했다. 내 몸 상태가 이렇게까지 나빠질 거라는 걸 몰랐던 것이다. 30년을 사는 동안 큰 아픔 없이, 병원과 멀리했던 튼튼했던 내 몸을 너무 믿은 이다. 어리석게도...


 남들이 쉽게 말하는 갑상선암! 그저 가벼운 암이라고 쉽게들 말해서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수술 예후는 다 달랐을 텐데 암에 대한 지식도, 아픔에 대한 경험도 부족했던 나는 참 쉽게도 남의 말을 믿었다. 생각해보면 사람마다, 건강상태에 따라, 생활환경에 따라 경험하게 되는 아픔의 정도에는 분명 차이가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아마도 나는 첫째 아이를 출산하면서 심하게 변형이 된 내 몸 상태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 출산 후 6개월 만에 받았던, 지금까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었던 '암수술'의 여파는 정말이지 내 인생 최대의 난관이었다.     



 「갑상선암은 다른 암에 비해 치료 예후가 좋은 편이며 비교적 간단하게 시행되지만 아무리 간단하게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모든 수술 후에는 수술 후유증이 있기 마련이다. 갑상선암 치료 후에는 호르몬 결핍으로 인한 의욕 저하, 무기력함, 만성피로 등의 증상과 함께 기억력이 저하되거나 체중이 급격히 증가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될 수 있으며 심각한 경우 우울증, 불안장애, 초조함 등의 심리적인 문제도 발생될 수 있다.」 소람 한방병원 갑상선암 증상 치료 후 부작용 관리에 관한 내용이다.     


 아이돌이 막 지났을 무렵, 신랑님 친구 결혼식에서의 일이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조금의 피로감이 있었다. 그래도 신랑의 친한 친구 결혼식이고, 나의 결혼식에도 와 준 고마운 분들이라 당연히 결혼식에 참석했다. 결혼식이 진행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얼굴에 조금의 경련이 일어났다. 하지만 처음 경험해 본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그렇게 결혼식이 끝나고, 친구들과의 사진 촬영 후, 식사를 하러 오기까지 한 시간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체력 넘치는 아들은 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소리 지르고, 뛰려고 했다. 꽉 막힌 공간이라 답답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참 말을 안 들었다. 그렇게 남들 눈치 보며 말 안 듣는 아들을 달래느라 결혼식도 제대로 못 보고,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것 때문이었을까?’ 식사를 하려고 앉아 음식을 입에 넣는 순간 내 입술의 둔탁함이 느껴졌다. 결혼식을 보는 중간중간 눈 떨림이 좀 있었으나 그저 가벼운 눈 떨림인 줄 알고 지나 쳤는데.. 안면근육이 마비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라 당혹스러웠다. 너무 놀란 나는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오고 싶었다. 그래서 신랑에게 먼저 집에 가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신랑은 내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크게 화를 냈다. 내 목소리엔 짜증이 섞여 있었고, 내 행동은 막무가내였으니 아마 신랑 눈에도 그게 좋아 보이진 않았던 모양이다. 신랑과 말다툼을 하며 주차장으로 내려와 아이를 안고 차에 탔다. 한 번도 그런 적 없던 신랑이 원망 섞인 목소리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의 상황을 감추고 싶어 같이 언성을 높여 싸웠다. '내 얼굴을 잠시만 쳐다봐도 알 텐데, 내 목소리에 조금만 귀 기울여도 이상하다는 것이 느껴질 텐데....' 그저 내 상황을 못 보는, 나를 몰라주는 신랑이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싸움이 커지자 나는 점점 더 흥분을 했고, 눈물과 함께 내 얼굴은 더 일그러져갔다. 울다가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신랑에게 한마디 했다. "당신은 내 얼굴이 이상해 보이지 않아? 내 말투가 이상하지 않아? 나 진짜 아파서 집에 가겠다고 한 거야. 내 얼굴에 마비가 오는 것 같아서... 이런 내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먼저 집에 가겠다고 한 거야." 그제 서야 신랑은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딱히 말은 하지는 않았지만 순간 놀란 눈치였다. 당사자인 나도 이렇게 놀라운데 당연히 그도 놀랐을 것이다. 신랑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그렇게 싸움이 일단락되자 나는 혼자 심호흡을 하며 흥분을 가라앉히고, 나를 달랬다. 내 아이를 꼭 안고서 말이다. 한참이 지나 조금 안정이 되었을 때쯤 병원에 도착했다. 종합병원 응급실은 너무 복잡했다. 주말이기도 했지만 아픈 사람도 많았고, 여기저기 울음소리와 거친 말소리들이 들렸다. 거기서 언제 올지 모르는 내 차례를 기다리다가는 왠지 아이도 나도 병이 더 날 듯했다.  응급실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기보다는 편하게 집에서 안정을 취하는 것이 나을 듯했고, 한참의 실랑이 속에 지친 나는 쉬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안정이 되었고, 조금씩 얼굴이 풀어졌다.


다음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지난주 피검사 결과가 너무 좋지 않으니 지금 당장 병원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피검사 결과 칼슘 수치가 일반인보다 현저히 낮아 이 상태라면 마비가 올 수 있다는 것이 주치의 선생님 말씀이었다. 굉장히 위험한 수치라고 하시며 걱정하셨다. 이미 한차례의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간 터라 나는 느긋했지만, 전화를 주신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는 굉장히 다급했다. 빠르게 조치를 취해 주신 의사 선생님 덕분에 병원에서 3시간가량 링거를 맞았고, 몸이 좀 편안해졌다. 그렇게 병원을 다녀온 신랑과 나는 어제의 일을 되새겨보며, 지금 나의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조심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간은 못해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응급실 신세를 지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나름 조심하고, 약도 잘 챙겨 먹었지만 늘 칼슘 수치와 갑상선 수치는 낮았다. 그로 인해 순간순간 손발이 저리거나, 눈 떨림이 있었고, 무한한 피곤함이  느껴질 때면 조금이라도 잠을 자야 했다. 그 수위가 높아질 때면 온몸이 축 늘어져 움직일 힘조차 생기지 않아 하루 온종일 쓰러져 있기도 했다. 그렇게 몸이 힘들었던 갑상선 수술 후유증은 꽤 오랜 기간 나를 괴롭히며 지속되었다.   

 

 “ 누가 그랬던가? 갑상선암은 가벼운 암이라고...? 예후가 좋다고?”

 사람마다의 차이는 있겠지만 갑상선암을 겪어 본 사람으로 절대 가벼운 암이 아님을 말해주고 싶다. 예후가 좋고, 수술이 간단하기는 하다. 수술이 간단하다 보니 수술 후 2박 3일이면 퇴원을 하라고 한다. 그리고 예전과는 다르게 목을 통한 수술 이외에 갑상선암 수술의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다. 미용을 위해 수술 자국이 안 보이도록 수술하는 경우들도 있었지만 나는 가장 기본적인 목을 통한 수술을 했고, 2년 정도면 수술 자국도 목주름처럼 안 보일 거라더니 그대로 남아 있다. 뭐 수술 자국은 내 피부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다.

 

나는 수술 자국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숨기고 싶었다. 목 정중앙에 난 상처는 누가 봐도 수술 자국이었고, 보기 싫었다. 누군가가 목에 난 상처를 물어볼 때면 신경 쓰였다. 그래서 목걸이로 숨겨 보기도 했고, 화장품으로 숨기거나 옷으로 숨기기도 했다. 목부분이라 수술 자국이 너무 두드러지게 보여서 싫었다. 수술을 한 것이 표시 나는 것이 싫었고, 아무렇지 않게 수술했냐고 물어오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힘들었던 건 수술 후에 오는 미칠 듯한 피곤함이었다. 이 피곤함은 정말이지 견디기 힘들었다. 수술 전 사회생활을 하던 시절엔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면서도 커피 하나로 피곤함을 이겨내며 살았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수술 후의 피곤함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이 안 될 만큼 크게 느껴졌다.


 하루 중 피곤이 밀려오는 시간에는 누가 ‘때려죽인다’고 해도 잠을 청해야 할 만큼 피곤함의 지수는 높았다. 참기가 힘들었다. 아니, 잠을 참을 수 없었다. 오죽하면 어린아이에게 TV를 틀어줘 가며 잠깐이라도 잠을 청했을까? 그리고 또 하나 손발 저림이나, 눈 떨림, 안면근육마비 등 여러 가지 후유증을 동반한다. 병원에서 주는 약만으로는 금방 채워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신체 리듬은 매일매일이 다른데 호르몬을 조절하는 갑상선의 기능을 매일 똑같은 약으로 수치만을 맞추다 보니 늘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하기는 어려운 것이 아닐까 싶다.




 내 몸에는 갑상선이 없다. 그래서 평생 약으로 갑상선 기관을 대신해야 한다. 귀찮지만 매일 갑상선 약을 복용해야 한다. 바쁜 일상으로, 두 아들 육아로 하루 온종일을 힘겹게 보내는 엄마인 나에게, 매일 무언가를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챙겨 먹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 힘든 것을 나는 오늘도 해내고 있다.    

살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을 하면서 말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 어떤 것보다 힘들고, 피곤한 것이 갑상선암 환자들이다.”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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