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소담유리 Jul 28. 2020

남다른 엄마의 선택! 농촌 유학

8살 아들의 농촌 유학.

나는 3살 아들, 8살 아들을 둔 엄마다. 내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좀 튀는 야생마적인성향을 가진, 남들이 말하는 좀 별난 에너지 넘치는 아이다. 그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나는 무던히도 많은 노력을 했다. 그만큼 많이 힘들었고, 고민을 많이 했다. 그 결과 남들은 해외 유학을 보낸다고 열을 올리는 지금 시기에 8살, 초등학교 1학년의 첫째 아들을 농촌으로 유학을 보냈다. 아이만큼이나 나 또한 남다른 엄마이다.     


 시댁, 친정을 통틀어 첫 손주였던 귀한 아이. 귀한 아이인 만큼 귀하게 키우고 싶었다. 나는 첫째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왠지 모를 학구열에 불타올랐다. 늘 머릿속에 ‘첫째 초등학교 입학은 무조건 학군 좋은 서울 목동이다’를 각인시켰다. 목동에서 안산으로 이사를 가면서도 늘 다시 목동으로 돌아갈 날만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는 절대 내가 생각하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공부를 시켜야 겠다는 나의 생각과는 달리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 유치원, 학원 등 모든 활동영역에서 두드러진 성향을 보였다. 엄마의 바람과는 다르게 너무나 에너지 넘치는 남자아이였던 것이다. 남다른 강인한 성향을 가지고 있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의 사소함에도 문제를 부각시키는 도시의 교육 현장 속에서 참 많이도 불려 다녔다. 엄마로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듣고 싶지 내용의 상담들을 많이 받았다. 첫째 아이 육아를 하면서 겉으로 표시는 못 냈지만 속상함에 남몰래 울기도 많이 울었고, 견뎌내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웠다.      



 아이가 7살. 그해 마지막 달에 받은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이 코앞에 다가왔고, 학교 적응 문제로 인해 근심이 가득했다. 요즘 도시의 초등학교 실태를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우리 아이의 성향도 잘 파악하고 있는 엄마의 입장에선 걱정이 안 될 수 없었다. ‘이 아이가 학교에 가서 수업시간에 떼를 부리거나 뛰거나 소리를 지른다면 어쩌지?’, ‘혹시 아이들과의 트러블에서 누군가 우리 아이를 "학교폭력"으로 신고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의 산만함을 문제 삼아 병원을 권유하게 된다면 나의 선택은?’ 참 많은 고민 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도 그럴 것이 대중매체를 통해 이미 내가 고민하는 이런 여러 사례들을 보았고, 들었다. 요즘 도시의 여느 학교에서는 산만함을 가진 아이를 ‘문제’로 두각 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남들보다 에너지가 넘치고, 남들보다 자기주장이 강하며, 틀에 박힌 생활을 싫어하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을 문제로 삼는 것이다. 그 문제가 되는 요소 중에는 우리 아이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점과도 일치했다. 정말 걱정이 태산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엔 한 교실에 40~50명 정도의 아이들이 함께 수업을 받았고, 그 아이들 중에는 별난 아이들 이외에 장애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그 아이들이 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가끔 수업에 방해되는 행동을 하기는 했지만 선생님들께서 그 아이들 모두를 문제 삼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요즘 학교의 실태는 좀 다르다. 초등학교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가 생기고, 피해자가 “학교폭력”으로 가해자를 블랙리스트에 올리면, 전국의 학교들이 블랙리스트를 함께 공유한다고 한다. 이것은 곧 한번 ‘문제아’로 낙인찍히면 평생 ‘문제아’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니 남들과 조금 다른 성향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얼마나 많은 걱정을 했는지... 나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살았다.


 그렇게 아이가 7살이 될 때까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한 변화의 시간 속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우리 아이가 도시학교에 부적응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으로 늘 초조했다. 그 시기 우리 아이를 망치고 싶지 않았던 불안 심리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몇 날 며칠 고심 끝에 지인의 추천으로 “농촌 유학 성공 사례”를 블로그를 통해 접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와 같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농촌 유학을 통해 아이가 얼마나 많이 달라지게 되는지, 얼마나 더 좋아지게 되었는지 자세히 나와 있었다. 나는 사례 글을 기반으로 여러 지역의 농촌 유학 센터를 검색하고 찾아보던 중 전라도 임실에 '농촌 유학 센터'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진행하는 일주일간의 캠프에 첫째 아이를 혼자 보내게 되었다. 그 일주일간의 캠프는 아이가 부모를 떠나 센터에서 생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역량을 테스트해보는 기간이었다. 이런 캠프 경험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 농촌 생활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는 일주일의 캠프에서 놀랄만한 성과를 가져왔다. 7살 후반, 농촌 유학 캠프를 보내기 전 아이의 심했던 "틱"증상이 눈에 띌 만큼 없어졌다. 눈 깜박임도 없어졌고, 기침하는 틱도 하지 않았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봐도 확연하게 차이가 날 만큼 놀라운 변화였다. 그리고 부모와 떨어져 다른 사람들과 잠을 자는 캠프가 처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울지 않고 고학년 아이들의 스케줄에 따라 잘 적응해 준 것이다. 그 변화를 계기로 남편과의 상의 끝에 지금의 농촌 유학 센터에 아이를 입소시켰다.     


『Seeing much, Suffering much, and Studying much, are the three pillars of learning. (많이 보고 많이 겪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배움의 세 기둥이다.)』라고 영국의 정치가이자 작가였던 벤저민 디즈레일리 (Benjamin Disraeli)는 말했다.

 벤저민의 말처럼 많이 보고 많이 겪어 보는 것이 배움이라면 아이에게 농촌 유학의 길은 배움의 큰 기둥을 세우기 위함인 것이다. 또한 부모가 줄 수 없었던 배움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된다. 도시에 비하면 결핍 투성이인 농촌 생활일 테지만 아이들은 더 잘 먹고, 잘 성장하며, 많은 것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고 경험하게 되고, 그 속에서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행복 또한 되찾게 되는 것이다.     



 나의 생각이지만 ‘유학이 뭐 별거 있나?’, ‘아이의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경험을 쌓기 위함이 아닌가?’ 그렇다면, 조용하고 공기 좋은, 그리고 내가 사는 도심과는 다른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이곳 농촌 또한 유학 명소가 아닐까 한다. 스마트폰 대신 학교 놀이터, 학원 대신 자연학습, 비염, 아토피 완화되는 좋은 공기, 영재보다는 인성을 중시하는 학교, 아이를 안아주시는 선생님, 농촌에서 배우며 놀며 성장하는 아이, 남다름을 인정하고 기다려주는 어른들의 가르침, 문제아가 사라지는 농촌 생활, 이외에도 농촌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많다. 이곳이 아이들에게 지상낙원이 될 수 있을 것임은 틀림없다. 모두 다 같은 이유로 아이를 유학 보내는 건 아니지만, 아이를 위한 길로 유학을 보내는 거라면 중요한 건 아이의 행복과 함께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기에 농촌 유학은 아이에게 행복도 같이 줄 수 있는 곳이다. 나는 8살 아들을 농촌으로 유학을 보낸 남다른 엄마이다. 그러나 이 남다른 생각이 아이에게 행복의 요인이 된다면 “농촌 유학”은 정말 잘한 선택이 아닐까? 아직은 어린 나이, 철부지의 톡톡 튀는 성향을 가진 에너지가 넘치는 우리 아이에게 농촌 유학은 천국이자, 아이의 행복을 지켜줄 수 있는 곳이었다. 내 아이의 행복을 지켜줄 수 있는 이곳의 농촌 유학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는 엄마의 작은 바람으로 시작되었다.

이전 19화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불편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