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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소담유리 Sep 18. 2020

늘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한 불안함

부족함이 만든 함정

 “왜 매달 마이너스 일까?”


 결혼을 하면서 마이너스 통장을 쓰기 시작했다. 외벌이를 하는 신랑의 월급은 늘 부족했다. 누군가는 월급에 맞춰서 살아야 한다고 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반복되는 부족함을 마이너스 통장에 의지하며 채워나갔다. 그러다 보니 생활은 점점 더 힘들어져만 갔다. 나만 빼고 남들은 다 잘 사는 것만 같아 보였다. 어린이집에 가보면 하나같이 메이커 있는 비싼 옷들을 입고 다녔다.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거기에 좀 신경 쓴다는 엄마들은 아기 기저귀 가방부터가 고가의 명품백이었다. 해외여행은 필수조건쯤 되어 보였다. 다들 여유 있어 보였고, 편안해 보였다. 나는 늘 부족함에 매달 청구되는 카드 값을 걱정하며 아등바등 사는데, 남들은 걱정 없이 사는 듯 보였다. 내 삶이 늘 제자리걸음이라 불안하기만 했다.    


 

 육아를 하면서 남들이 이루고 사는 것들이 부럽기도 했고, 그들의 시선이 신경이 쓰였다. 늘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은 내 삶이 불안하기는 했지만 표시 내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가 힘든 속내를 알까 두렵기도 했다. 남들을 따라 하기도 했고, 일부러 포장하기도 했다. 부족한 상황 속에서도 남부럽지 않게 아이를 키웠다. 남들이 메이커 옷을 사 입히면 나는 직구를 해서라도 아이에게 메이커 옷을 사줬다. 할부를 끊더라도 전집을 사서 책장을 채웠다. 유행하는 장난감이 있으면 웃돈을 줘서라도 구해줬다. 먹는 음식 하나도 최고급 재료를 썼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는 그 누구처럼 태교 여행을 해외로 다녀오기도 했다. 2014년 전세가 최고로 치닫던 시기에 좋은 집은 아니었음에도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집도 매수했다. 우리 집의 경제 상황은 늘 그대로인데 무리하게 많은 지출을 하면서 살았다. 더 힘들어질 줄 알면서도, 남들과 다르게 보이는 게 싫었다. 남들처럼 누리며 살고 싶었고,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지만, 남들보다 더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던 욕심이 컸다. 욕심만큼이나 불안함도 컸다. 남들과 비교하고, 그 속에 발맞춰 나아가느라 바빴다.      


 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 육아를 하는 동안, 주부로 살아가는 동안에 나는 늘 그 자리 그대로였다. 남들은 돈을 모아 집도 사고, 차도 사고, 해외여행을 다니며 사치를 부린다는데 우리 집 경제는 매달 100만 원이 모자랐다. 나는 아이를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이것저것 좋은 것만 해주며 육아를 해왔지만 아이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커주지 않았고 늘 그대로였다. 좀 더 나은 생활이 되어 가는가 싶으면 또 똑같은 상황이 되고, 아이가 좋아지는가 싶으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데 현실은 제자리걸음을 할 뿐이었다. 늘 불안했고, 위태로웠다.       


 내 생활의 불안함이 아이의 육아에도 영향을 미쳤다. 남들처럼 아이를 키우려고 하다 보니 늘 필요 이상의 것을 해주며 과잉보호를 했다. 좋은 것을 해 줬으니 아이가 남들과 다르게 커 주기를 내심 기대를 했다. 뭐든 남들보다 잘 해내기를 원했다. 아이가 원한 것도 아닌데 먼저 해주고는, 엄마의 큰 욕심과 바람을 아이에게 요구했다. ‘좋은 옷을 사주면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책을 사주면 영재가 될 거라 믿었던 던 것일까?’ 엄마의 바람대로 커 주지 않는 아이를 야단치고, 닦달했다. 차라리 해주지 않고, 바라지도 않았다면 아이도 나도 좀 편안했을 텐데... 그 모든 반성을 아이를 ‘농촌 유학’을 보내고서야 하나씩 깨닫기 시작했다.   

  

 아이가 농촌 유학을 가 있는 곳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전라도 임실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안산에서도 3시간가량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학교 엄마들과 단톡 방을 통해 소통을 하기는 했으나, 사실 내가 그곳에 살지 않으니 자주 만날 일도 부딪힐 일도 없었다. 이따금 안부를 묻거나 행사 일정을 묻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남의 아이들이 어떤 옷을 입고 다니는지, 어느 학원을 다니는지,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눈으로 볼 일이 없으니 묻기도 꺼려졌다. 그동안의 나는 생각그러지 말아야지, 내려놓아야지 하면서도 엄마들의 잘 난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요동쳤고, 학습지라도 하나 더 시키려고 안달복달했었다. 한데, 도시에서처럼 아이 친구 엄마들을 만나 커피를 마시며 쓸데없는 자랑 질에 휘말릴 일이 없으니 새삼 편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경을 많이 썼던 것이 남들에게 비칠 아이의 겉모습이었는데  아이가 무슨 옷을 입고 다니는지 매일 아침 챙겨 줄 수 없는 상황이니 그 또한 내려놓을 수 있었다.    


농촌유학을 통해 매해 지속해오던 해외직구 쇼핑을 끊었다.

이제는 비싼 옷보다는 아이가 활동하기에 편한 옷을 사고, 메이커를 따지지 않는다. 또한 아이가 원할 때 보고 싶어 하는 책만 한 권씩 사준다. 학습지와 학원도 끊었다. 불안함은 있었지만, 아이를 향한 나의 기대치가  낮아지면서 오히려 마음은 편했다. 대단한 아이가 되기보다는 지극히 평범하고 건강한 아이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늘 나만 제자리걸음을 한다는 그 불안함을 조금씩 내려놓았다.      


사실 나만 그런 마음으로 산 것은 아닐 것이다. 나처럼 나와 같은 마음으로 늘 제자리걸음만 하는 듯한 불안함을 가슴에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육아를 통해 느껴질 때가 많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면 내려놓길 바란다. 내려놓음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남들처럼 성큼성큼 앞서 나가는 것은 아닐지라도, 조금 느리지만 나 또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기억하자. 불안함은 늘 빗나간 선택을 하게 한다. 나만 제자리걸음을 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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