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소담유리 Aug 04. 2020

어쩌다 우리 아이가 문제아가 되었을까?

아이의 단점이 문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조금 더 산만하고, 난폭성을 띄는 우리 아이를 문제아로 보았다. 어딜 가나 따가운 시선을 받기 일쑤였다. 조용하게 있어야 하는 장소를 못 참아했다. 호기심이 많았고, 뛰고 소리 지르기,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다. 그러기에 나는 친구들과 커피숍에서 커피 한잔 마음 놓고 마셔보지 못했다. 한 번은 친척의 성당 결혼식을 갔는데 뛰고, 소리 지르는 아이 덕분에 예의상 인사만 드리고 식이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렸던 적도 있었다. 가끔 아이를 데리고 키즈 카페나 또래의 아이들이 있는 곳에 갈 때면 늘 우리 아이는 혼이 났다. 이유인즉, 대부분 친구를 때리거나 양보를 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었다. 함께 가지고 놀아야 할 물건을 양보하지 않고 독점하려다 늘 싸움이 일어났다. 어느 아이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요즘 사회가 아이에게도 폭력을 적용하니 사실상 억울한 경우도 꽤 있었다. 상황을 좀 더 깊이 파고들어 들어보면 우리 아이가 먼저 때리거나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결과만을 보고 판단하여 야단을 치다 보니 대부분 우리 아이가 먼저 혼이 났다. 그런 아이의 난폭성은 기분에 따라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어린이집에서의 경우는 보통 관심받기 위한 행동으로 많이 나타났으며, 친구들과의 놀이에서도 본인이 상처를 받은 경우 더 크게 난폭성을 띄었다. 선생님을 좋아하고, 선생님께 사랑받기를 원했던 아이는 선생님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으로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거나, 물건을 던진다거나, 어린이집이 울릴 만큼 큰 소리로 울기도 했다. 또한 아이들과 놀이를 할 때는 본인의 말을 들어주지 않거나, 본인이 원하는 놀이가 진행되지 않을 때면 아이들을 제압하려 들기도 했고, 화가 난다고 밀거나 때리기도 했다. 고의는 아니지만 친구를 밀어서 넘어졌는데, 교구장으로 넘어지면서 아이의 이마가 찢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의 단점은 늘 문제가 되었다.  

   

 아이가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나는 아이를 대변해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 했다. 특히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의 일은 늘 상담의 소재가 되었다. 정말 심할 땐 일주일 5일 수업에 5일 내내 불려 다녔던 적도 있었다. 아이가 친구를 때려서, 위험한 행동을 해서, 울어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엄마인 내가 불려 다녔다. 그렇게 상담을 시작하면 보통 가정에서의 문제점과 아이의 유아 시절 이야기를 하게 된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의 근본을 찾기 위함인 듯했다. 원장 선생님, 담임선생님, 상담사 선생님 등 모든 선생님들은 상담을 통해 ‘애착 관계’에 관해 많이들 말씀해 주셨다. 아이의 그 모든 행동이 관심받기 위함이고, 엄마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채우려 하다 보니 그 행동이 더 격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아이의 유아 시절 그러니까 아이가 엄마와의 애착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첫돌 즈음부터를 되돌아 생각해보면 나는 아팠고, 우울증이 있었고, 힘들었다. 아이와 스킨십을 많이 하고, ‘사랑한다’는 말도 많이 해주며, 아이와 교감을 해야 하는 그 시기에 나는 다른 엄마들과는 달랐다. 암수술로 늘 피곤했고, 몸이 아팠다. 아이를 안아주는 것조차 힘들었고, 늘 체력 넘치는 아이를 맞춰 줄 수 없었다. 아이의 사소한 행동에도 화를 내기 일쑤였고, ‘사랑한다.’는 말은 고사하고 상냥하게 말해준 일도 드물다. 아이와의 애착 관계가 형성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아픈 육아의 모든 것을 아이가 흡수하고 받아들였으니 아이의 산만함과 난폭성은 엄마인 나에게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문제아로 낙인찍혀 태어나는 아이는 없을 것이다. 몸이 약한 것은 타고 날 수 있어도, 태어나면서부터 성향을 문제 삼아 문제아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아이도 처음 태어났을 땐 그 누구보다 예쁘고, 착하고, 순수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자라나면서 엄마인 나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격하게 행동하고, 난폭성을 띄었던 것이다.


이젠 그 마음을 알기에 조금씩 아이에게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아이의 성향을 인정하고, 아이의 단점엔 눈 감아 주고, 아이의 장점은 격하게 칭찬해 준다. 아이를 더 많이 안아주고, 늘 좋은 말을 해주며 아이를 다독이고 있다. 조금씩 천천히 엄마인 내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변화시키고 있다. 사실 큰아이라는 생각 때문에, 첫째 아들이라 쉽지는 않다. 머리로는 생각하고, 잘해줘야지 마음을 먹다가도 실제 생활에서는 적용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의 행동 하나에 아이가 변화되는 것이 눈에 보이기에 점점 더 많은 노력과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내 아이가 영재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특별한 사람이 되어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아이가 학교를 다니면서, 또는 사회에 나가 부딪혔을 때 모든 사람들과 문제없이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인성을 가지길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인 나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함을 안다. 그 누구도 아닌 엄마의 사랑이 아이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내 마음속에 깊숙이 묵혀져 있는 사랑을 끄집어내어 오늘보다 내일도 더 많은 사랑을 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전 15화 농촌 유학! 비로소 희망이 보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