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소담유리 Jul 24. 2020

결국 아이를 걱정하는 건 나뿐이었다

아이를 육아를 가장 잘하는 건 엄마뿐!

육아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을 꼽아 보라고 한다면 그 첫 번째는 내 아이를 향한 무한 관심과 정확하지 않은 판단에서 비롯된 입방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보다 남의 일에 더 관심이 많았다. 내 아이의 산만함과 톡톡 튀는 행동들을 보며 쉽게 한 마디씩 건네곤 했다. 어떤 사람은 정서불안장애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사회성이 부족하여 문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심리 치료센터나 병원을 찾아보라는 제안을 여러 차례 받기도 했다. 아직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의 겉으로 드러나는 단점만을 보고 참 쉽게 말했다. 병원의 의사도 아니면서, 전문적으로 공부를 한 것도 아니면서 너무 가볍게 결론을 내렸다. 내 아이에 대한 냉담한 시선, 날카로운 지적, 상처 주는 말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자신들의 방식대로 아이에게 상처를 줬다. 그런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안 그래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까다롭고 날카로운 성격의 나에게 육아를 하는 내내 심한 자극을 주었다. 또한 그런 자극들이 아이를 더욱더 채찍질하게 만들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생각해주는 척하는 말들은 언제나 나를 화나게 했고, 신경 쓰였다. ‘의사도 아닌 일반인들이 자기 기준으로 아이를 보고 진단하고, 판단해서 말하는 것이 정답일까?’ 내심 견제를 하면서도 이미 들은 말들은 언제나 마음속의 근심거리가 되었다. 부모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내 자식에 대한 것은 사소한 말 한마디라도 걱정이 되고, 기억에 남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나보다 먼저 이미 아이를 여럿 키워 온 사람들의 조언이, 책이나 매체를 통해 알게 된 지식을 나눠주는 사람들의 말들이 처음엔 너무 고마웠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그저 그 말을 듣고 아이를 심리치료센터에 보내기도 하고, 상담사 선생님과 따로 여러 차례 상담을 받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는 건 처음 해보는 일이라 지식이 많지 않았던 나는 걱정해주는 여러 사람들의 말을 믿고 그에 따라 이것저것 아이에게 시도해 보았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아이가 상처를 받는 것이 싫었고, 더 나빠지진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서 아이를 바로 잡아 보고자 했던 것이다. 한데 여러 가지의 시도에도 아이는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우리 아이는 다른 사례의 아이들과 성향이 좀 달랐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가 그렇듯이 아이들마다의 성향 차이가 존재한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은 채 정형화된 사례들을 대입해 아이를 바꾸려고 하니 아이는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분명 내 아이에게는 다름이 존재했다.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름을 다르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틀렸다고 한다면, 나쁘다고 한다면 그것은 너무 다른 해석이 아닐까? 한데 어떤 상황에서는 우리 아이를 ‘틀렸다’ 지적하고, ‘나쁘다’며 문제로 만드는 경우가 분명 있었다. 우리 아이는 말보다는 행동이, 행동보다는 눈물을 먼저 쏟아내는 아이였다. 그러다 보니 자기 의사를 말로 정확히 전달하지 못했고, 아이는 때론 억울함을 당하기도 했다. 그것은 대부분 어른들에게서 받는 경우들이었다. 아이의 남다른 등치와 남다른 성향은 늘 표적이 되었다. 그들의 상처 주는 수많은 말들과 싸늘한 눈초리는 아이를 더 크게 자극시켰다. 아이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어른들의 입을 통해 듣고 나에게 와서 ‘엄마, 나 치료받아야 해?’라고 묻기도 했다. 아이가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면서는 더 크게 상처를 입는 듯했다. 아이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들이 상처가 되어가는 것이 더욱 힘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했다. “내 아이를 정말로 걱정하고 생각하는 건 나뿐이구나...”라는 것을 말이다. 아이를 가장 가까이서 가장 많은 시간 지켜보는 것도 나이고, 아이에 대한 것이라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엄마인 나였다. 그런 내가 왜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려 비슷한 상황의 아이들이 해왔던 것들을 대입해 내 아이를 바꾸려고만 했던 건지 어느 순간 후회가 되었다. 그 후로 1년간 지속해 왔지만 내 아이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던 놀이 치료도 멈추었다. 그리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남다른 아이의 성향을 있는 그대로 펼쳐 보여도 아이를 ‘잘 못 됐다.’ 다그치지 않을 만한 곳을 찾고 싶었다. 이 아이가 아픈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것일 뿐임을 인정해주고 싶었다. 그러다 ‘농촌 유학’을 알게 되었고, 나는 그곳에 아이를 보내기로 했다.

     

 처음 8살의 어린아이를 농촌 유학을 보낸다고 했을 때 주위의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나를 많이들 말렸다. 특히나 아이를 육아하는 엄마들이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좋으나 문제가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아이들만 보내는 것이라 매일매일을 확인할 수 없으니 모든 것들을 다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의심쩍은 반응보다는 아이가 캠프를 통해 가져온 작은 변화에 더 마음이 움직였다. 아이가 ‘여기는 스트레스 안 받아’라고 하는 말에 나는 그곳을 믿었고, 선택했다. 처음에 적응할 때는 조금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우리 아이는 또래의 다른 아이에 비해 더 어른스럽게 잘 적응했고, 칭찬도 많이 받았다. 아이가 ‘농촌 유학’을 간지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아이는 예전의 모습과는 다르게 많이 좋아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리센터에서 치료받지 않아도, 병원을 다니지 않아도, 엄마와 멀리 떨어져 있었어도 아이는 좋아졌다.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날 아이와 내가 한 ‘농촌 유학’이라는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나는 이제 그 누구의 조언도 듣지 않는다. 다만 참고는 한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상처 받거나 휘둘리지 않는다. 내가 아는 내 아이의 성향을 인정하고, 늘 지켜본다. 아이에게 맞는 육아를 하고자 잘못된 것은 그때그때 수정해가며 내 아이에게 맞게 육아 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나는 내 아이를 위해 진심으로 걱정하고, 가장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내 아이 육아 방법을 가장 잘 아는 엄마이다.     

이전 13화 부모에게서 받은 아픔, 대물림하긴 싫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