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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소담유리 Jul 07. 2020

또 화를 낸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참을성이 부족한 엄마

아이를 키우면서 ‘난 정말 참을성 없는 사람이구나.’를 절실히 느꼈다. 아픈 것을 참는 거라면 정말 자신 있었는데 육아에서는 도통 참을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육아가 이렇게 많은 참을성을 요구하는 지도 미처 몰랐다. 육아의 기본 바탕은 ‘봤지만 못 본 척, 들었지만 못 들은 척, 최대한 참고 또 참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를 머릿속에 새기고, 생활 속에서 무한 반복해야 했다. 참 단순하고, 쉬운 것 같지만 해보면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오죽하면 아이 둘만 되어도 “아이고, 보살님!”이라고 친구들끼리 농담을 할 정도였다. 그만큼 ‘많이 참고, 마음을 비워내는 것을 수도 없이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첫째 아이는 다른 아이에 비해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특히 물이나 음료를 잘 쏟았다. 집에서뿐만 아니라, 밖에 나가서도 참 많이도 쏟았다. 하루에 보통 4번 이상은 무언가를 쏟아서 혼나곤 했다. 분명 엄마는 물을 줄 때 이야기를 한다. “물이야. 쏟지 않게 조심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는 쏟아버린다. 욱 할 때도 있지만 한 두 번 정도는 ‘실수할 수 있어’라고 달래며 그냥 닦아 준다. 아이니까 그럴 수 있는 거니까... 그런데 3번 이상을 넘어가게 되면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한다. 왠지 내 말이 무시당한 느낌이 들어서이다. 분명 말귀를 알아들을 줄 아는 아이인데 어째서 내 말을 듣고도 자꾸만 쏟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아이의 부주의가 결국 화를 불러오곤 한다. 안 그래도 피곤함이 쌓이고 쌓여 하루에도 몇 번씩 몸이 축축 쳐지고, 아픈데 늘 두 배의 일거리를 만들어 주니 정말 화가 나고 싫었다. 그렇게 육아는 늘 내 인내심의 한계를 불러왔다. 아무리 아이라도 똑같은 상황이 3번 이상 반복되면 나에게는 실수로 인정이 되지 않았다. 아이의 실수는 도전이었고, 반항이었다. 그때부터는 쏟은 것을 닦아주면서 ‘육두문자’를 쓰고, 인상을 찌푸리며 큰 소리로 화를 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나에게 일거리를 안겨주는 아이가 너무나 미웠다. 30년 이상을 살아온 어른인 나는 아이처럼 화가 나기 시작하면 감정 조절이 안되었다. 화가 난 상태의 나는 남보다 못했다. 엄마라고 하지 못할 만큼 아이를 심하게 다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니까 그럴 수 있지...’, ‘좀 더 아이의 입장에서 바라봐 줬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참았으면 되는데 그 순간을 못 참고 아이를 혼내고 닦달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부끄럽다. 하지만 그때의 상황에서는 갑자기 욱하는 내 감정을 컨트롤 하기란 너무나 힘들었다. 그렇게 나는 감정이 격해지기 시작하면 언제나처럼 어김없이 ‘내 안의 헐크’를 끄집어내 보였다. 아이에게 무서운 헐크의 강인함을 과시했다. 엄마의 힘으로 아이를 제압하려 했던 것이다.     


 어느 날 ‘어벤저스’라는 영화를 보면서 그 속에서 나의 모습을 보았다. 헐크를 보는 순간 나와의 닮은 점을 금세 찾아낼 수 있었다. 그날 낯에 있었던 일들이 생각났다. 아이의 작은 실수에도 쉽게 분노하고, 미친 듯 화를 내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육아를 하면서 종종 헐크로 변하고 있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헐크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등장하는 슈퍼히어로이다. 하나의 몸에 2개의 인격이 공존하는 캐릭터인데, 헐크는 분노를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녹색 괴물로 변하게 된다. 매우 높은 지적 능력을 가진 브루스 배너일 때에는 침착하고 점잖은 성격이지만, 녹색의 거대한 헐크로 변하면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내뿜는 다혈질의 모습을 보인다. 마치 엄마인 내가 평상시에는 남들과 다르지 않은 육아를 하며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이다가, 화가 나면 얼굴이 붉어지고, 정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육두문자와 함께 목소리가 커지는 것처럼 말이다.    


  

 문득 어린 시절 엄마에게 혼났을 때의 기억이 난다. 엄마의 그 무서운 표정과 싸늘한 눈초리, 화난 듯 조용하면서 묵직하게 들리던 음성, 여느 때와는 전혀 다른 엄마의 모습까지도 생생하다. 훈육할 때마다 들었던 어른 손보다도 훨씬 더 컸던 ‘공포의 엄마 머리빗’도 기억난다. 어린아이였던 나는 그 순간이 너무 싫었다. 엄마와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도 너무 무서웠다. 엄마의 물음이 시작되면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순간 당황해서는 ‘횡설수설’ 하기도 하고, 할 말도 까먹어 더듬거리는 말투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가끔은 억울할 때도 있었다. 큰 산처럼 부풀어져 보이는 엄마 앞에서 나는 그저 작고 작은 개미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시 떠올려 봐도 참 싫고, 두려운 순간이다. 그런데 그런 무서움의 순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아이의 실수나 잘못을 보면 화를 내게 된다. 10번 참아야 할 것을 두 번만 참아주고는 이내 욱하고 만다. 그렇게 싫어하던 우리 엄마의 화난 모습을 내가 똑같이 재연해 낸다. 그렇게 8년 차 육아를 하고 보니 천사 같던 우리 엄마가 왜 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된다.       



 또 화를 낸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아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반복하고 되새기면서도, 순간 또 화를 내고 만다. 미친 듯 화를 내고 난 후 아이를 바라보면 마음이 짠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이는 아이의 눈, 아직 의사 표현을 말로 다 못 하는 아이는 얼마나 답답할까?’ 아이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오늘도 잠들어 있는 아이를 보며 화를 내지 말자고 다짐한다. 육아라는 게 늘 반성의 시간을 거치며 미안함이 밀려와 눈물이 난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다짐도 수없이 한다. 그러나 욱하는 건 순간의 찰나와도 같아서 그 순간을 참는다는 건 너무 어렵다. 그 어려운 육아를 엄마인 나는 오늘도 해내고 있다. 비록 ‘보살님’의 경지에 올라서진 못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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