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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소담유리 Apr 09. 2020

농촌 유학! 비로소 희망이 보인다

이제 겨우 엄마가 되어 갑니다

 첫째 아이의 7살, 육아만 해오던 내게 가장 큰 고민의 벽이 생겼다. 다름 아닌 아이의 학교 입학이었다. 곧 있을 초등학교 입학은 걱정덩어리였다. 늘 산만함을 지적받던 아이, 사회성의 부족으로 또래의 아이들과 융합이 어려웠던 아이, 차고 넘치는 에너지를 난폭하게 분출하던 아이, 자기주장이 강하고 뭐든 남들보다 먼저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이가 초등학교를 가야 했다. 나는 너무 두렵고, 걱정이 되었다. 어린이집, 유치원을 거치면서 아이의 성향을 문제 삼아 많은 상담을 했었다. 그 속에서 내 아이는 이미 문제아가 되어있었다. 요즘의 엄마들이 바라고 원하는 아이상과는 너무나 동 떨어지는 우리 아이의 성향이 문제를 만들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아이의 학교 입학에 대한 두려움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오랫동안 다니던 유치원을 옮겨 보기도 했고, 안산에서 부산까지 삶의 터전을 바꿔보기도 했다. 또한 여러 가지 상담을 받았다. 아이에게 도움이 될 만한 모든 것들에 귀를 기울이고 찾아 나섰다. 여러 가지 변화에 아이는 더 힘들어했고,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변변한 해결책은 찾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농촌 유학’을 알게 되었고, 유학센터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일주일간 캠프에 참여시켰다. 캠프는 아이의 학교 선택에 가장 큰 열쇠가 되었다.



캠프를 통해 농촌 학교와 농촌 생활을 경험하고 온 아이는 “엄마! 농촌 학교는 스트레스 안 받아.”라며 행복한 미소를 띠며 말을 했다. 나는 그 한마디가 가슴에 꽂혀 아이를 ‘농촌 유학’을 보내게 되었다. 아이의 농촌 유학은 내게 한줄기 희망이었다. 아직 어린아이를 멀리 혼자 보낸다는 것은 가슴 아팠지만 아이의 여러 가지 좋은 변화들은 정말이지 기뻤다. 가장 좋았던 건 아이의 틱이 완화가 되었다는 것과 아무 문제없이 학교에 적응을 했다는 것이다. 도시와는 다른 학교 분위기와 농촌의 생활들이 아이에게는 하나의 숨 쉴 공간을 만들어 주었고, 그것이 아이의 정서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늘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던 아이는 마음껏 뛰어놀면서 자신의 역량만큼의 모든 에너지를 분출하였고, 조용해졌다. 유학센터에서의 생활은 독립심과 협동심을 기르기에 좋았다. 위로 많은 형, 누나들과 생활을 하면서 함께 청소도 하고, 빨래도 했다. 함께 시장도 보고 여행도 다니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그리고 매달 기차를 타고 형, 누나들과 집으로 왔던 것은 아이에게 하나의 좋은 경험이 되었다. 아마 농촌 유학에 대한 기억은 평생 좋은 추억이 되리라 생각된다.


농촌 유학을 통해 아이와 떨어져 지내면서 나 또한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도시에서의 생활이 아이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아니라고 하면서 여느 도시 엄마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생각들을 가지고 아이를 키웠다. 아이가 없는 시간 엄마들과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고, 누군가의 자랑은 늘 부러웠다. 아이의 작은 것 하나,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남의 시선을 의식했다. 요즘 엄마들이 만들어 놓은 좋은 아이의 기준 틀을 머릿속에 각인시키고,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해서 야단치고 타일렀다. 아이의 다름을 인정해 주지 않았고, 이해보다는 강압으로 아이를 훈육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영재인 것만 같아 조바심이 났고, 그래서 아이를 닦달했다. 늘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이 불안했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항상 불편했다.      


 그렇게 모든 것들이 힘들었던 아이와 나의 생활은 아이가 농촌으로 가서 생활을 함으로써 하나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내 눈앞에 안 보이니 더 이상 아이를 닦달할 수 없었고, 조바심을 낼 필요조차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아이와 떨어져 있으면서 하나씩 깨닫게 되었으니 ‘농촌 유학’이 얼마나 고마 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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