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어

도리스 레싱, '19호실로 가다' * 양귀자, '모순'

by 그럼에도

p. 277


이제 두 사람은 40대였다. 위의 두 아이는 각각 열 살과 여덟 살로 학교에 다니고 있다. 아래의 쌍둥이는 여섯 살이라 아직 집에 있었다. 수전은 아이들을 돌봐줄 보모나 베이비시터를 고용하지 않았다. 유년기는 짧았으므로 그녀는 혼자 힘들게 아이들을 돌보는 것에 아무런 유감이 없었다. 자주 지루해지기는 했었다. 어린아이들은 때론 지루한 존재가 되기도 하니까. 피곤한 때도 많았다. 그래도 그녀는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이제 10년만 더 지나면, 그녀는 자기만의 삶이 있는 여성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 (중략)


수전은 자신에게 엄격하게 말했다.

이건 모두 자연스러운 일이야. 처음에 나는 어른이 된 뒤 12년 동안 일을 하면서 나만의 인생을 살았어. 그리고 결혼했지. 처음 임신한 순간부터 나는, 말하자면 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겼어. 아이들에게. 그 후 12년 동안 나는 단 한순간도 혼자였던 적이 없어. 나만의 시간이 없었어. 그러니까 이제 다시 나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해. 그뿐이야.


+


수전은 기차를 타고 빅토리아로 가서, 열심히 찾아 헤맨 끝에 작고 조용한 호텔을 발견했다. 그리고 낮에만 방을 빌리겠다고 말했다. 호텔 측에서는 낮에만 잠깐 방을 빌려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


수전은 몸이 좋지 않아서, 자주 어딘가에 누워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장을 볼 수 없다고 길게 설명했다. 마침내 지배인은 수전이 하룻밤 숙박료를 모두 지불하는 조건으로 방을 빌려주겠다고 말했다.


+


호텔 방은 평범한 익명의 장소였다. + 그녀는 혼자였다. 자신을 짓누르던 압박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

이 방에서 수전은 뭘 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충분히 쉬고 나면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서 양팔을 쭉 뻗고 미소를 지으며 밖을 내다보았다. 익명의 존재가 된 이 순간이 귀중했다. 여기서 그녀는 네 아이의 어머니, 매슈의 아내, 파크스 부인과 소피 트라우브의 고용주인 수전 롤링스가 아니었다.


+


악마들은 여기에 없었다. 그녀가 그들에게서 자유를 살 생각이니까. 그녀는 벌써 비옥한 열매를 맺을 어두운 꿈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p. 283


나도 그렇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어. 무덤 속처럼 평온하지 말고.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차마 할 말이 없구나. 그것이 나의 불행인가 봐. 나는 정말 힘들었는데, 그 힘들었던 내 인생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것 말이야. 어려서도 평탄했고, 자라서도 평탄했으며,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 이후에는 더욱 평탄해서 도무지 결핍이라곤 경험하지 못하게 철저히 가로막힌 이 지리멸렬한 삶.



가지 않은 길. 가보지 않은 길을 책에서 우연히 만났다.


평범하고 안정적인 중산층 가정의 주부이고, 다양한 관계 속의 일원인 두 소설의 인물은 모두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모두 갖고 있는 정반대 편에 선 사람의 마음을 내가 얼마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어림잡아 헤아려 보았다. 마음에 울림이 컸던 한 마디는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어. 무덤 속처럼 평온하지 말고'


귓가에 자꾸만 맴돌았다. 이상하게도 오래 마음이 아팠다.


양귀자의 ‘모순’은 처음 읽었을 때는 주인공 진진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두 번째 읽었을 때는 소설 속에 조연으로 잠깐 등장하는 진진 이모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두 사람을 통해 다만 내가, 내 인생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덤 속처럼 평온하지 말고, 조금의 새로움이라도 일상에 더해야 한다는 그 무엇. 새로운 소스를 끼얹은 샐러드처럼, 생동감을 더하는 일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어떤 다짐을 남겼다. 나의 이런 마음은 진진의 이모가 남긴 마지막 장면에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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