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a arena에서의 깨달음
수영장 안에 자쿠지가 있어야 하는 이유
잠시 한국에서의 수영 일상에서 벗어나 헝가리에서 살며 새롭게 수영 루틴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다른 건 안 해도 꼭 수영장만큼은 미리 여러 군데 알아두는 편이다. 특히, 이번 헝가리살이는 장기간이기 때문에 수영장을 알아두는 건 권장이 아닌 필수였다. 다행히도 수영장 유목민 생활을 길게 하지 않고, 가장 마음에 드는 수영장을 찾아 지금까지 매주 꼬박꼬박 출석 도장을 찍고 있다.
이 수영장은 다른 건 둘째치고 수영장 입장료를 내고 들어오면 무료로 자쿠지도 이용할 수 있다. 처음이었다. 호텔도 아닌, 공공 수영장 안에 자쿠지 시설이 있는 수영장을 이용하는 것 말이다. 늘 50분에서 1시간 수영을 격렬하게 끝내고, 대충 물기 닦은 다음 바로 자쿠지로 향한다. 그리 오래 있는 편은 아니다. 짧게는 오 분, 길게는 십오 분 정도 자쿠지에서 몸을 이완시키는 편이다.
하루는 특별한 생각 없이 습관이 되어 수영을 다 하고, 자쿠지에서 몸을 녹이며 사람들이 수영하고 있는 레인을 그냥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아, 수영장 안에 자쿠지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따뜻한 물이 흐르는 자쿠지에서 달콤한 십 분을 보내는 건 달콤한 여유에 그치지 않는다. 각자의 속도대로, 자신만의 영법 스타일로, 수영하고 있는 수영인들을 바라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재미와 행복을 느낀다. 진정 수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수영을 나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남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물속에서 한 발짝 벗어나 주위를 둘러보고, 다른 수영인들은 어떻게 호흡하는지, 평영 할 때 언제 머리를 숙이는지, 몇 바퀴를 돌고 쉬는 시간을 갖는지 등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학습이 된다. 하루는 마치 뿅망치로 머리를 한 대 푹 때리기 전에, 물속으로 머리를 빠르게 집어넣으며 평영을 하는 사람을 보았다. 한국에서 우리 선생님이 항상 평영 할 때마다, 내게 하시는 말씀이 있다. “머리!!” 상체를 위로 많이 올리기까지는 어찌어찌해서 성공해도, 머리를 빠르게 푹 숙여 물속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아무리 선생님께서 머리를 숙이라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야기해도, 체감상 잘 느껴지지 않았다. ‘나 아주 빠르게 머리 숙인 거 같은데..’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자쿠지에서 ‘뿅망치 평영’ 그 자체인 수영인을 보고 나서 단번에 선생님의 말씀과 답답함을 깨우쳤다. ‘아…. 머리를 저렇게 빠르게 숙여야 하는 거구나.’ 이후로, 혼자 연습할 때마다 뿅망치 수영인을 떠올리며 평영 하게 되었다. 자쿠지에서의 간접 학습의 효과랄까.
자쿠지를 좋아하는 또 다른 개인적인 이유는 개인 성향이 담긴 거 같다. 평소 사람들을 멀리서 유심히 관찰하고, 혼자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걸 좋아한다. 한국에 있을 때, 동네 수영장에서는 평소 한 레인 안에서 햄스터처럼 쳇바퀴 대신 수영 바퀴를 쉴 새 없이 돌리느라, 내 수영을 하고 샤워실로 가기 바빴다. 하지만 지금 여기, 부다페스트에 살면서 다니고 있는 ‘duna arena’ 수영장에서는 사람들을 원 없이 관찰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가끔은 어딘가 익숙한 영법 자세가 눈에 띈다. 유심히 그 사람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아! 평영 좋아하는 사람!’하고 반가운 사람을 다시 만난다. 항상 볼 때마다 평영만 하는 남자가 있는데 늘 수영 모자가 위로 솟아 있고, 항상 상체를 꼿꼿이 세우며 수영해서 인상 깊었다. 처음 봤을 때 참 독특하게 수영한다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그 독특한 자세 덕분에 다시금 그 사람을 알아보고 속으로 내적 친밀감을 쌓을 수 있었다. 수영하는 자세만으로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는 것, 나름 짜릿하고 재미있다.
거의 매일 보는 코치들도 있다. 항상 동시간대에 레슨을 하는 두 코치분이 계시는데 정말이지, 가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다가 그들을 바라보면 너무 흥미진진하다. 우선, 여기 수영 레슨 시스템은 한국과 정말 다르다. 여기서 코치들은 물속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타이머를 재고 알려주거나 자세를 알려준다, 물 밖에서. 하루는 남자 코치분을 쳐다봤는데 샤워가운을 걸치고 발레 하듯 다리를 앞으로 쭉 내밀고, 팔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도 물속에서의 스트림 라인을 강조하려고 하는 거 같았는데 제3자의 입장에서 그 모습을 바라볼 때, 죄송하지만 ‘저 코치는 배우를 해도 잘하셨겠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여자 코치분은 몇 번 말도 트고, 인사도 주고받았다. 그만큼 자주 만났고, 서로를 알고 있다. 남자 코치분에 비해서 제스처가 활발하시지는 않지만 ‘GO’라고 외치는 그녀의 목소리는 잊히지 않는다. 하도 많이 들어서일까, 코치가 “GO”라고 외치면 괜히 옆에 있던 나도 출발해야 할 것만 같아서 선수들이 출발하고 나서 곧바로 벽을 차고 나간다. 자쿠지 안에서 그녀의 외침이 들려올 때, 쉴 새 없이 수영하는 선수들의 모습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보는 내가 진이 빠질 때도 있다. 정말이지, 자쿠지 안에서 바라보는 넓은 수영장은 나에게 일종의 스크린 화면이나 다름없다. 화면 속에는 수영 채널이 실시간으로 보이니 정말 달달한 시간이다.
수영 후 몸에게 주는 이완의 시간, 간접 학습, 실시간 수영 채널이 운영되는 스크린. 이들이 바로, '수영장 안에 자쿠지가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