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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Sep 20. 2023

바다 수영의 매력

포르투갈, 행복의 조각들을 선물해 준 친구

Intro. 매일이 행복하다는 그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그리고 지우던 꿈이 현실이 되었다. 포르투갈에 간 이유는 단 하나, ‘바다 수영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수영을 배우고 나서부터 발이 안 닿는 곳, 끝을 알 수 없는 넓은 품에서 수영하는 느낌이 어떨지 궁금했다. 일 년 전, 우연히 SNS 알고리즘으로 포르투갈에서 사람들과 바다 수영을 즐기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고, 그때부터 나의 새로운 버킷리스트가 가슴속에 각인되었다. ‘포르투갈에 가게 된다면, 그를 꼭 만나서 함께 첫 바다 수영을 배워보자.’라고. 다소 먼 미래처럼 느껴졌지만, 꿈이 이뤄지기 1년가량 동안 이 설렘을 마음 한편에 잘 간직한 덕분에 포르투갈 남부에서 보낸 7일은 꿈속의 주인공이 되어 첫 바다 친구를 만났다.


하루는 안드레와 ‘Arrábida natural park’ 근처에 있는 바다로 향했다. 그리고 그때 나눈 대화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근데 너는 하루에 최소 2번, 그리고 매일매일을 사람들과 수영하러 다니는 거잖아, 지치지는 않아?”

“물론 수영하기 전에는 피곤함을 느끼지만, 물속에 우선 들어가면… 너도 알지? 그냥 에너지가 생겨. 그래서 난 이 일이 정말 마음에 들고, 수영하며 보내는 매일이 행복해.”

“매일이 행복한 거면, 매 계절, 365일이 행복하겠다.”

“그렇지, 봐봐 이따 너도 바다를 보면 그렇게 생각할 거야.”라고 답해주었다.

진솔함과 자신감이 묻어진 목소리와 표정으로.


솔직히 말하여, 그땐 그에게 콩깍지가 씌어있어서 그가 뭘 말하든 멋있었고,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가능한 삶일까, 매일이 행복한 삶 말이야.’라는 의심도 어렴풋이 품었다. 왜냐하면 그는 삶이 ‘수영’과 관련된 ‘일’로 가득할 정도로 수영을 일로서 대하는 순간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일’과 ‘취미’가 어우러짐으로써, 매일이 행복할 수 있는 삶을 그려보지 못했다. 일은 경제적 수단으로써 해야만 하는 존재이고, 취미는 일하는 시간 외에 따로 만들어서 즐겨야만 하는 존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좋아하는 수영을 일로 승화시켜 또 멋지게 해낸 그의 삶이 내겐 너무나도 새롭게 가닿았다. 무척 궁금해졌다. 매일이 행복하다는 그의 삶과 그 삶을 공유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후, 몇 개월이 지났을 때 나는 물과 하루하루를 함께하고 있었다, 물과 사랑에 빠져있던 안드레처럼. 어느 날, 평소처럼 바다를 헤엄치다가 안드레와 나눈 대화가 문득 떠올랐다. 꽤 흐른 시간 덕분에, 이번에는 콩깍지를 벗고, 안드레가 했던 말에 진심으로 공감하게 되었다. ‘맞아, 나도 바다와 관련된 일을 하며 하루를 수영으로 시작한다면 매 계절, 매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사람인 거 같아.’


포르투갈 바다는 매일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선물해 준 친구이다.  

나를 바다의 길로 인도해 준 2023년 4월부터 몇 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조각을 일상에서도 쉽게 꺼내어 볼 수 있게,  행복을 잃지 않게 만들어 준 존재이다.


지금부터, 이장에서는 포르투갈 남부 'Lisboa, Oeiras, Cascais, Arrábida Island, Sesimbra'에서 맺은 우정을 하나씩 꺼내어 보려고 한다.


바다수영의 매력 (빛, 파도, 자유와 해방)

-바다에서만 볼 수 있는 ‘빛’

물속에서 파도와 함께 리듬을 맞추며 춤을 추다 보면, 뒤돌아보지 않아도 등 뒤로 햇살이 쨍하게 물과 날 비추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잠시, 춤을 멈추고 조금 집중해서 시선을 두 손으로 빠르게 가져가 본다. 잔잔하게, 때로는 거칠게 요동치는 바닷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나의 손. 손을 멍하니 바라보면 바다에서만 볼 수 있는, 그 순간을 공유하는 바다생명체와 물속 이방인에게만 보이는 가장 황홀한 빛을 만끽할 수 있다.


햇살이 어떠한 장애물도 만나지 않고 바로 내게로 다가온다. 높은 건물, 유리창, 이런저런 구조물 등의 방해를 받지 않고 직진해 온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빛이 바로 바닷속으로 입수해, 바다에 있던 생명체에게 생생한 빛이 전해지는 것이다. 단순히 물속에 있는 날 환하게만 비쳐주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선물을 건네준다. 꿀벌들이 벌집을 짓는 것처럼, 수많은 빛들은 벌집이 아닌 빛집을 만든다. 물의 표면, 나의 손바닥과 몸에서 빛나는 빛집을 만났을 때, 바삐 물을 젓던 두 팔과 발을 곧바로 멈추고, 팔을 앞으로 쭉 뻗은 뒤 살펴본다. 아니, 감상한다. 유일하게 두 손을 뚫어져라 닳도록 쳐다보는 순간이자, 나의 손이 가장 예뻐 보일 때이다. 이 황홀한 광경을 아주 달콤하게 살짝 맛볼 수 있다. 아쉽게도 오랫동안 음미하는 건 허락해주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빛집의 희소성 덕분에 햇살 가득한 점심쯤, 바닷속에 들어가는 시간이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그렇게 오늘도 햇살이 허락해 주는 찰나의 빛집을 맛보러 바닷속으로 또, 다시 한번 첨벙 들어간다.


2년 전, 홀로 헝가리 여행을 했을 때 길거리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다가 친해진 두 친구가 있다.


최근 부다페스트에서 이들로부터 큰 감동을 받았다. 두 친구 중 Sofi는 ‘남자친구에게 날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하다가 떠오른 단어가 'sunshine'이었다고 말해주었다. 덧붙여, 그녀는 늘 긍정적이고 햇살처럼 밝은 에너지를 널리 널리 전해주는 친구라고 표현해 주었다, 나를. 소중한 친구가 날 모르는 다른 이에게 소개해주는 그 찰나에 ‘햇살’로 비유했다는 사실이 지금까지도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동시에, ‘친구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일방적으로 얻는 게 아니라 이들도 나를 통해 건강한 에너지를 얻고 있구나, 나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갖고 있구나.’를 깨닫고 진심으로 기뻤다.


평소처럼 해변에서 머릿속의 생각들을 출력하며 일기장을 정리하고 있던 중, 우연히 헝가리에서 쓴 그날의 일기를 발견해 지금 글로 옮겨 써보았다. 일기장을 들춰보기 전에 ‘바다에서만 볼 수 있는 빛’을 막 작성한 찰나였기에 다시 한번 sofi의 비유가 크게 와닿았고, 그 근원지를 깨우쳤다. 지금도 오른쪽 뺨과 팔을 강하게 비추고 있는, 해변에서 만나는, 곧바로 내게 직진해 주는 그 햇살 덕분이었다. 친구들에게 햇살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건, 그동안 바다에서 받던 햇살이 날 햇살로 가득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춤추는 ‘파도’

‘파도는 나의 동반자다. 나는 바다에 몸을 전적으로 맡기고 무중력에 도전한다. 푸르른 바다에서 나는 무중력 상태다. 물 위에 떠 있는데, 마치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117p)
<모든 삶은 흐른다, 로랑스 드빌레르>

바다가  매일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이미 잘 알고 있다. 실제로 바다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변하며 공작새 날개처럼 화려하고,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하루는 포르투갈의 남부, 'Sessimbra' 지역으로 수영 원정을 떠났다. 그때 처음 맛본 파도는 굉장히 놀라운 세계였다. 평소라면 거칠게 넘실거리는 파도 속으로 몸을 맡길 생각을 하지 못했을 텐데, 든든한 가이드와 버디와 함께한 덕분에 처음으로 자연 파도풀을 경험했다. 파도풀에 두둥실 떠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춤추는 바다를 만나고 나니 바다 취향이 새로 생겼다.


Sessimbra에서 수영하기 전까지 만난 바다는 잔잔한 물결, 잠깐 밀려오는 파도가 전부였다. 이들은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끼게 해 주었고, 그 덕분에 평온하게 수영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Sessimbra에서 수영하던 그날처럼, 파도가 나를 앞, 뒤, 양 옆으로 정신없이 힘껏 밀어줄 때는 몸의 구석구석에서 아드레날린이 삐쭉삐쭉 나오기 시작했다. 팔을 조금 저었을 뿐인데 순식간에 파도에 떠밀려 앞으로 쭉 밀려나갈  때, 파도의 리듬에 맞추어 팔을 저을 때, 괜스레 파도와 합이 잘 맞는다는 만족감이 드는 그 순간이 참 좋았다. 그 후로부터 파도가 격렬하게 춤추는 바다를 찾게 되었다. 다만, ‘호흡하지 않을 때 들어오는 파도랄까.’ 호흡하다가 파도가 밀려와서 한 번 크게 물을 마시는 건 썩 좋지 않기에. 아무튼, 호흡하지 않을 때 파도가 밀려와 물속에 둥둥 떠있는 나를 위로 더욱 붕 떠올려줄 때의 그 순간이 가장 좋아하는 바다 모습이다.


앞으로, 누군가가 ‘그동안 다닌 바다 중, 어느 바다가 제일 좋았어요?’라고 묻는다면, ‘Sessibra의 춤추는 바다요.’라고 주저 없이 대답할 것이다.


-‘자유’와 ‘해방’

'바다에 가면 우리의 상태는 달라진다. 육지에서는 서서 걷고, 바다에서는 수평으로 떠다닌다. 바다에 있으면 더 이상 서서 주변 세상을 내려다볼 수 없는데, 그래서 오히려 우리가 세상의 조각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118p)

'바다 한가운데에 있으면 주변은 그저 바다뿐이다. 그것만으로도 평소에 있던 곳에서 해방된 기분이 든다. 육지에 있을 때면 우리는 마치 핀으로 고정된 나비처럼 항상 어긴가에 매여 있다.' (119p)

'우리는 어디에 갇히거나 무엇에 방해받지 않을 때 자유롭다고 한다. 이처럼 바다는 우리에게 삶에서 억지로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해준다.' (200p)

 <모든 삶은 흐른다, 로랑스 드빌레르>의 일부

비슷한 의미이지만 조금은 더 거친 표현인 해방은 ‘구속이나 억압, 부담 따위에서 벗어나게 함’이다. 


‘자유와 해방’, 바다수영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가벼워진 몸과 무거운 마음을 들고 , 해변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며 파란 바다를 향해 툭툭 발걸음을 옮긴다. 세찬 파도가 밀려오면 자유형으로, 잔잔한 물결이라면 머리를 빼꼼 내밀고 평영을 하며 멀리, 저 멀리 해변으로부터 떨어져 본다. 그러다 잠시, 중간에 멈춰 서서 왔던 길을 향해 뒤돌아보면, 두발을 딛던 땅덩어리가 굉장히 없어 보인다. ‘없어 보인다.’는 표현은 다소 직설적인 숨김없는 감정이고, 조금 다듬어보자면 이렇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땅을 바라보면, 정말 작은 존재로 보이는 저 땅에서 불필요한 생각 덩어리와 들려오는 세상의 가십거리를 짊어진 채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었구나.’라고 깨닫는다. 가끔은 다소 충격적이다. 좋은 것만 바라보고, 좋은 사람만 곁에 두고, 좋은 것만 듣고 느끼기에도 바쁜 저 땅에서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하면서 살고 있는 나, 우리이기에. 바다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렇게 속이 좁은 사회처럼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바다의 면적이 육지의 면적보다 큰 것도 사실이지만, 바다의 마음과 생각도 육지의 것보다 넓고 깊고 지혜롭다. 바다에서는 불필요한 에너지가 득실거리는 땅에서 벗어난 것에 대한 자유, 물속으로 들어올 때부터 가벼웠던 몸과 가벼워지는 마음으로부터 생기는 자유, 맞지 않는 한국 사회로부터 해방되는 느낌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 자유가 허락되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수영까지 더해지는 바다수영이 참 좋다.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바다라, 그 바다에서 좋아하는 수영을 할 수 있기에, 나는 바다수영이 참 좋다.  


빛, 파도, (E하나 빼먹을)자유와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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