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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Sep 28. 2023

이상형을 찾았다

아쉽게도, 포르투갈에서

이상형을 찾았다

사실, 포르투갈 여행을 하면서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스스로 신기할 정도로 다른 이성한테 좋아하는 감정을 잘 갖지도, 관심을 두지도 않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빼앗아간 사람이었다. 오랜만에 호감과 설렘을 느끼게 된 사람이었는데, 아쉽게도 그는 같은 대륙도, 나라도 아닌 저 멀리 포르투갈에 있었다. 내게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감정을 확인시켜 준 그와는 포르투갈에서 함께한 시간으로, 서로의 존재를 알고 연락이 닿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끝내는 사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여행 떠나기 일 년 전쯤이었다. 우연히 SNS를 통해 수영에 진심인 한 사람의 게시물을 발견한 후로, 서서히 빠져들었고, 동경에 이르기까지 했다. 잠이 들기 전 때때로, 그와 함께 바다 수영을 즐기고 있는 순간을 머릿속에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잠들었다. 이 꿈이 잊히기 전, 세계여행을 가기로 결심을 맺게 되었고, 그동안 그림만 그리던 그 순간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와 연락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연예인과 대화 나눈 듯 들떠있었는데,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아침 일찍 그를 직접 만난다니. 게다가 수영을 같이 즐기러 간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황홀했다. 대망의 그날, 새벽 6시쯤 일어나서 바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Oerias’ 기차역에서 설레는 마음과 함께 ‘Lisboa’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평소였으면 아침 일찍 사람 많은 출근길을 피하기 위해 이런저런 궁리를 짜내었겠지만, 4월 29일은 초능력이 발휘되어 기존의 나는 흰 거품이 되어있었다. 출근길을 뚫고, 그를 얼른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지하철 출구로 나왔을 때, 그는 이미 차 안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저 차 안에 그가 있는 거 같아.’ 슬슬 올라가는 입꼬리와 함께 드디어 그를 만나기 딱 10초 전.


활짝 열려 있는 창 안으로 그가 활짝 웃으며 아침 인사를 건네었다, 그동안 멀리서 봐왔던 미소 그대로. “안녕 혜미, 오늘 어때? 만나서 반가워”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그에게 호감이 있다는 게 너무 드러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할 겨를 없이 만나자마자 오래된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편안했다. 하도 그의 피드를 닳도록 봐서였을까. 처음 만난 그는 상상하던 대로였고, 그래서 좋았다. SNS 피드에 올라와 있는 것처럼 해맑게 웃을 때 보이는 건치와 길쭉한 팔다리, 누가 봐도 수영 잘할 것처럼 다져진 슬림한 몸, 들을 때마다 에너지가 생기는 그의 특유한 목소리와 억양까지 같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도 날 알고, 내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꿈이야, 생시야.’하는 마음과 그의 차를 타고 ‘Arrábida island’로 이동할 때, 대화를 통해 보이는 그의 매력에 점점 더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서로 추구하는 가치관과 생각, 일을 대하는 자세, 사람을 대하는 모습, 성격 등이 내게 비칠수록 그와 더 가깝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커져갔다.


무엇보다도, 그날의 수영 장소였던 ‘Arrábida island’ 바다에서 그와 거의 1.8km를 수영하며 느꼈다. 바다로 향할 때, 바다에 도착해서 수영복과 수트를 입고 함께 입수할 때, 바다에 둥둥 떠다니며 눈을 마주칠 때, 함께 환호성을 지를 때, 그가 수영하는 나의 모습을 열심히 찍어줄 때, 수영 후에 에그타르트 하나를 나눠 먹을 때, 물속에서 느낀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할 때 등의 모든 순간은 처음 느껴보는 든든함과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아,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은 마음으로 대하는 타인과 함께 공유하는 행복이 이런 거구나.’ 지금껏 수영 생활을 하면서, 수영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곁에 없었다. 보통 다들 수영을 운동으로 대하거나 힘든 것으로 인식했다. 그럴 때마다, 한 번도 수영을 힘들다고 느껴본 적이 없던 나는 속으로 ‘수영이 얼마나 재밌는 건데..’라고 생각만 하고 겉으론 공감하는 척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지금까지 보아온 사람 중, 수영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사랑하고 있었고, 좋아하는 것을 더 오래, 잘 즐기기 위해 자신의 마음과 몸을 챙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를 보면서 어떤 면에서는 나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도 했다. 덕분에 그동안 사람들이 해줬던 말들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도 했다. 오래 봐 왔던 친구들도, 별로 안 지 얼마 안 된 사람들도 “혜미, 너는 네가 좋아하는 걸 잘 알고, 또 잘 실천하고, 해내는 모습이 너무 멋져.”라고 말해줄 때가 많았다. 사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쉽게 공감할 수 없었다. 그저 좋아하는 걸 꾸준히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좋아하는 걸 계속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그를 만나고 나니, 어떤 면에서 그러한 생각이 들었는지 이해되었다. 그를 보면 볼수록, 그는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고, 그것들로 자신의 삶을 다양한 사람들과 채워나가고 있었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나와 닮은 면이 많은 사람을 바라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막상 스스로와 비슷한 이상형을 만났음에도 적극적이지 못했다. 내가 나의 모습을 잘 알기에 닮은 그에게 더 다가가기 어려웠다.


그때 함께한 사진들을 꺼내보며, 느낀 감정들을 글로 쓰고 보니 조금 놀랐다. 그는 숨겨진 베일 속의 첫 이상형이었고, 생각한 것 이상으로 큰 마음이 그를 향하고 있었고, 많이 좋아했다는 점을 보고 말이다. 아직은 그의 일과 꾸리고 있는 삶이 더 중요해 보이던 그, 그를 통해 비치던 내 모습 때문에 더더욱 다가가기 어려웠고 솔직해지기 힘들었다. 하지만 덕분에 잠자고 있던 사랑에 대한 감정을 확인시켜 준 계기가 되었고, 함께한 순간이 있다는 점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그렇지만, 다시 바다에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그의 마음을 생각하기 전에 나의 솔직한 마음을 더 들여다보고, 표현하고 싶다. 그를 향한 마음이 변치 않고, 더 커져간다면.


“다음에 우리 또, 바다에서 만나자, Andre.”


여러모로, 잊을 수 없는 arrabida island 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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