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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Oct 14. 2023

앞으로의 우정이 더 궁금해지는 친구

크로아티아, 'dance beach'와 쌓은 우정

크로아티아, 앞으로의 우정이 더 궁금해지는 친구

크로아티아 여행을 반추하여 보면 딱 3가지가 선명히 떠오른다. ‘뜻밖의 수경, 거친 바다로 뛰어들던 나, 버스 안에서 여행하는 크로아티아 남부 바다.’


‘자다르’를 떠나 ‘스플리트’를 버스 안에서 만나며 두브로브니크로 향하던 해안도로는 마치 한 폭의 광활한 그림이었다. 오후 3시쯤, 버스 안에 있던 덕분에 바다에 비치는 윤슬 수제비와 청량한 빛깔의 지중해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었다. 이 모습을 두 눈뿐 아니라, 핸드폰에도 담고 싶어 한 손으로는 핸드폰을 들고 두 눈은 창밖으로 비치는 바다에 가 있었다. 그렇게 바다의 기운을 듬뿍 받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점점 아랫마을로 내려가고 또 내려갔다. 장시간 플릭스(Flixbus: 유럽 내 버스 여행할 때, 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버스) 버스를 타며 이동해야 했던 탓에 점점 몸에 축적되는 피로와 함께.


크로아티아 지형이 그리 길쭉한지도 모르고, 무지하게 세워두었던 여행 일정의 탓에 ‘두브로브니크’에서 주어진 시간은 어쩌다 보니 딱, 하루였다. 음, 정확하게는 5시간이었다. 전날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고, 그다음 날 국경을 넘는 큰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포르투갈 바다 이후로 떠난 두 번째 바다 여행지라서 바다가 나올 때만을 기다렸다. 오랜 친구와 재회했던 ‘자그레브’는 아쉽게도 바다가 없었고, 바다가 있던 ‘자다르’에서는 비가 온 다음 날이라 기온이 뚝 떨어져서 물에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수온이었다. 이대로 물 한 번 못 들어가고 크로아티아 여행이 끝나는 건가 하는 아쉬움을 홀짝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여유를 찾아볼 수 없는 일정이었다. 그리하여 크게 실망하지 말자며 스스로 위로하고 있을 찰나에, 바다 운이 좋았던 나는 두 번째 친구, ‘두브로브니크의 Dance beach’를 만났다.


새로운 곳에서 아침이 밝자마자 숙소에서 나와 바다를 찾아 나섰다. 지도에서 가장 가깝게 뜨는 바다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약간의 언덕을 올라서, 구불구불한 귀여운 산책로를 지나 내려가다 보면 큼지막한 바위 아래로 에메랄드빛의 물이 반겨주고 있었다. 좀 더 가까이 바다에 다가갔을 때는 벌써 약간의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그날은 시간도 많이 없었으며, 잔잔한 바다에 잠깐 들어가 머리를 삐쭉 빼놓고 평영만 할 생각으로 숙소에 수경을 두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바위에 맞부딪혀 세게 파도가 치는 ‘dance beach’의 바다를 보자마자 아뿔싸 싶었다. ‘아, 여긴 수경이 무조건 필요할 거 같은데..’ 날씨도 오랜만에 따뜻했고, 수영복도 미리 입고 있고, 바다도 만나서 행복했지만, 머리를 푹 담그고 수영을 제대로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안타까웠다. 그곳은 잔잔한 바다, 둥둥 떠다닐 수 있는 평화로운 바다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 친구는 밀려오는 물살이 바위에 부딪히며 더 큰 흰수염고래를 만들어 내는 성격을 가졌다. 도저히 머리만 내밀고 수영할 수 없을 거 같다는 결론을 내린 후, 편하게 수영하고 싶은 마음을 접고 바위 위에 누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한 여자분께서 말을 거셨다.


“나 수경 있는데, 수영하고 올래?”


쿨하게 질문을 던져주고, 바로 본인의 가방을 주섬주섬하시더니 수경을 찾아 건네주셨다. 아마, 파도 소리 사이로 친구와의 대화 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렸던 거 같다. 들렸다고 할지라도, 쉽게 자신의 수경을 건네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몇이 있을까. 아무튼 그날, 생각지도 못한 수경의 등장에 배가 된 행복을 만끽했다. 그간 바삐 움직이느라 몸 구석구석 쌓였던 피로를 풀어낼 수 있는 건 덤이었다. 정말 원 없이. 그분이 안 계셨다면, 아마 넘실거리는 파도가 반겨주는 파란 바다에 들어가 볼 용기조차 느끼지 못하고, 타올 위에 누워있는 것만으로 만족해했을 것이다. ‘다음에 다시 와서 꼭 크로아티아 바다에서 수영해야지!’라는 소망만이 가슴 한편에 고이 남아있지 않았을까.


운이 좋게도, 타인의 조건 없는 친절함 덕분에 ‘두브로브니크, dance beach’를 마지막으로 크로아티아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여행이 끝날 때쯤,  여행의 장식을 바다로 마무리해서인지 아쉬움도, 다시 오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도 딱히 없었다. 그러나 다음 나라로 이동하며 버스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내내 순식간에 생각이 바뀌었다. 계속해서 창밖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났던 바다는 바닷속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다가 점점 깊어질수록 진해지는 청옥 빛의 물색이었다. 그러나 기다란 지형을 따라 구불구불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청옥빛은 에메랄드빛으로 물들었고 곳곳에 작은 오두막집들이 줄줄이 놓인 마을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절로 나오는 감탄과 함께 다시 한번 꿈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나라는 정말, 다시 한번 와보고 싶어.’ 가는 길 내내, ‘여긴 다시 와야겠는데?’하는 곳을 발견할 때마다 상시 대기 중인 구글 지도에 별표 장소로 저장하는 재미로 다음 여정지로 떠났다. 이날 깨달았다. 여행은 한 나라 안에서 있었던 경험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국경을 넘기 전 길 위에서의 기억들이 채워져야 그 나라 여행의 기억이 완성된다는 것을. 그래서 더 와닿았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다음에 다시 크로아티아를 찾아간다면 어떤 우정을 쌓게 될지, 궁금하고 기대되는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덕분에 크로아티아를 떠올리면 참 설렌다.


Dance beach, Croa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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