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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Oct 14. 2023

두 고요함이 만들어 준 황홀한 10일

몬테네그로, 서서히 스며들던 / 다시 보고 싶은 친구

Intro. 몬테네그로, 서서히 스며들던 / 다시 보고 싶은 친구

이번 여정은 그저 바다를 따라 여행하고 싶었다. 한 번 바다와 친해지고 나니, 어느 여행지를 가더라도 유명한 관광명소의 도장 깨기로만은 성이 차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 왔으니까.’라는 마음으로 몇 번 그 나라에서 유명하다는 명소에 가보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카메라를 들고 있는 수많은 사람과 뿌옇게 블러처리된 몇 장면만이 기억에 남게 되었다. 몇 안 되는 기억조차도 점점 흐릿해졌으니, 관광지를 따라가는 여행은 더 이상 내키지 않았다. 반면에, 그 나라에 바다가 있다면 바다에서 보낸 시간은 삶을 살아갈 원동력이 되어주어 오래도록 몸속에 기억되었다. 자연스레, 후자의 여행 스타일이 점차 나의 여행 기준으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어딜 가려한다면 ‘바다의 유무’부터 확인하는 바다 여행자가 되었다.


크로아티아 여행을 마친 후, 떠난 곳도 당연히 바다가 있는 땅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스페인, 이탈리아 등 가보고 싶던 해변이 있는 나라에서 머물고 싶었지만 비자 없는 여행자로서 선택지는 한정적이었다. 국경 간 이동이 번거롭지 않고, 다음 여행지로 이동하기 쉬운 곳을 살펴보다가 발견한 곳은 바로, ‘몬테네그로’였다. ‘몬테네그로?’, 솔직히 말해서 떠오르는 건 부정적인 뉴스와 나의 무지함 뿐이었다. 실제로 이 나라로 발길을 옮길 때쯤, 사회적으로 안 좋은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그랬듯이 배경지식이 없는 여행자로서 그곳을 모르는 채 여행하기로 결심했다. 무지한 여행자의 결심과 함께 크로아티아를 떠나, 아드리아해가 펼쳐진 발칸반도로 첫 발걸음을 옮겼다.


‘검은 산’, 국가명이 검은 산을 뜻하는 만큼 몬테네그로의 수도 ‘코토르’에 도착했을 때 사방에서 검고 갈색빛의 돌산, 야자수들이 날 감싸주고 있었다. 그저 검은 산만 나를 빙 두르고 있었다면 신기함의 감정에서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코토르는 한쪽에 산이 있다면 다른 쪽에서는 산만큼이나 웅장한 물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때문에 이 낯선 땅에 스며들 수밖에 없는 매력 속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웠다. 눈앞에 펼쳐진 물과 산의 조화로운 두 만남이 뽐내는 매력 말이다. 며칠이 될지 모르겠지만 꽤 오래 머물다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나라, 이곳에서 만날 바다 친구들이 첫날부터 기대되었다. 숙소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부터, 뛰어 들어가 만나볼 아드리아해의 코토르만을 기대하며, 첫날의 들뜬 마음을 잠시 잠재웠다. 이후, 몬테네그로에서의 나날들은 물 흐르는 대로 큰 욕심 없이, 시간과 나의 욕구가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서 보낸 10일이라는 시간이 참 단순히 흘러갔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간단히 요가하고 배를 채운 후, 바로 바다로 향하던 일

매일 낮, 시원한 커피 한 잔 혹은 제로 콜라 하나 마시면서 햇살 아래에 누워 몸을, 구석구석을 말리던 일

매일 저녁, 그날 먹을 저녁 재료를 사러 근처 슈퍼마켓에 들려 장을 보던 일

매일 밤, 두둑한 배 두드리며 테라스에 나가서 맥주 한 잔 홀짝이며 잔잔히 하루를 마무리하던 일


언제 한 번은 물 흐르는 대로 보냈던 나날들이 보고 싶어, 충동적으로 다시 떠날 것만 같다. 위의 네 가지에만 집중하며 보냈던 코토르, 부드바로 말이다. 지금부터, 이장에서는 다시 보고 싶은 몬테네그로 코토르만의 Bokabay, 부드바의 Slovenska, Vapore, Sveti stefan, Miloer beach에서 맺은 우정을 하나씩 꺼내어 보려고 한다.


Kotor, 물과 산의 조화로운 두 만남이 뽐내는 매력을 보유한 곳

두 고요함이 만들어 준 황홀한 10일

코토르가 ‘잔잔한 고요함’을 풍긴다면, 부드바는 ‘경쾌한 고요함’을 풍겨주었다. 그리고 나는 낯선 땅에서 처음 느껴본 이 두 고요함을 전부 사랑하게 되었다.


[코토르, Kotor]

검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던 숙소에서 보내는 아침은 테라스 문을 활짝 열고, 눈부신 하늘 아래 물수제비가 일렁이는 코토르만을 보는 것으로 하루가 열린다. 오전에는 아침에 창밖으로 바라보던 물속에서 수영을 즐기고, 숙소로 돌아온다. 바로, 테라스에 수영복과 수모, 수건을 널어두고 손에 잡히는 간식을 배에 두둑이 채워 넣는다. 그리고 잔잔한 노래와 함께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바다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버스 시간이 되면 가끔 코토르 도심으로 나가 버스 여행을 다녀온다. 숙소에서 도심까지는 대략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코토르 관광 명소인 올드타운에 도착하자마자 직원이 바로 퍼주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신 후 올드타운 구석구석을 미로 찾기 하듯 다녀본다. 흔하지 않던 도심으로 나가던 날, 유독 좋아하는 ‘Despacito’ 노래가 흘러나왔을 때 길거리에서 느끼는 그 희열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다. 노래 속 자유로이 연주하는 연주자, 그 앞에서 자유를 느끼던 체크무늬 옷의 꼬마, 이 모습을 눈으로 담던 나의 모습까지, 이 모든 환경이 나를 위한 선물 같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2~3시간 정도의 시내 구경을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평화로운 한적한 동네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해가 더 지기 전에 발걸음을 재촉하며 유일하게 동네에 하나 있는 슈퍼마켓으로 향해서 치즈, 빵, 과자 등 눈에 보이는 것 하나씩 장바구니에 실어 담는다. 항상 같은 시간대에 산책 나도는 사람들과 스쳐 지나가며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 두서없이 눈에 보이는 것대로 사 온 가지각색의 재료들을 짬뽕하여 이름하여, 짬뽕 저녁을 차려 먹고 테라스로 나간다. 아침과 달리, 바다를 바라보는 밤의 테라스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적당히 서로 거리를 두고 있는 주황빛의 가로등과 저 멀리 보이는 등대들이 내는 빛이 참 좋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 빛들이 물에 반영되어 어두움 속 주황빛이 일렁이는 물을 바라보는 그 순간이 좋다. 혼자 낯선 나라, 도시에 와서 어두운 밤에 테라스에 나와 있었지만 무서움보다는 평화롭고 편안한 느낌이다. 두 배낭을 메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들었던 생각, ‘아, 여기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면서 다음 모험을 잘 준비할 수 있겠구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지루하지 않고 행복할 것만 같았던 곳이었다. 그리고 코토르를 떠날 때 인정했다. ‘정말 푹 쉬고 간다, 코토르 덕분에.’


코토르에서의 아침, 낮, 밤
숙소에서 나오면 늘 만나던 검은 돌산과 코토르만

[부드바, Budva]

그동안 이곳에서 충전한 따듯한 에너지 몇 보따리와 무거운 두 배낭을 앞뒤로 짊어진 채 3~4시간을 달려 비치 천국 ‘부드바’로 내려갔다. 코토르에서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분위기를 강렬하게 풍기고 있는 부드바의 구석구석을 지나 숙소로 향했다. 오래된 세월이 묻어져 있던 코토르와 달리 현대적으로 갖춰진 방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내려놓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채 숙소 호스트가 말해준 바닷가로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혹여나 해가 빨리 져서 금방 어두워질까, 종종걸음으로. 해변에 가까이 갈수록, 많은 나무와 숲이 만들어 주는 액자 프레임 속 보이는 바다 풍경을 보며 진심으로 육성이 흘러나왔다. ‘와, 미쳤다.’


부드바 해변가에 도착했을 때는 ‘와, 여기서 정말 제대로 수영하고 놀다 갈 수 있겠다.’라고 확신했다. 이곳에는 넓게 펼쳐진 아드리아해 곳곳에 수영할 수 있는 부표들이 줄줄이 줄을 서고 있다. 바다의 맞은편에 누워있는 사람들을 위해 통일성 있지만 개성 있는 파라솔과 선베드가 쭉 깔려있다. 여러 해변이 줄지어 있는 곳에 가보는 건 처음이었다. 같은 물을 공유하고 있는 바다였지만, 자세히 보면 경계선이 있어 여러 비치로 나뉘어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나의 취향, 그날의 기분에 맞는 비치를 선택하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흥겹게 하루를 보내고 싶다면 ‘Vapore beach’로, 잔잔히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다면 ‘Slovenska beach,’ 근교 여행을 떠나고 싶은 날이면 'Sveti stefan, Miloer beach'로 향하곤 했다.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정말이지 물 흐르듯 하루하루  보냈다.


다만, 바다와 가까이 지내면서 유일하게 신경을 썼던 부분이 있다면, ‘나의 현재 감정’이다. 오늘의 감정은 어떤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등을 살펴보는 것이 ‘0순위’였다. 그래서였을까, 처음 들어보는 도시에서 보내는 10일이 낯섦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편안했고, 행복했다. 나를 잘 살펴주었던 시간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매 순간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나갔던 그 삶이 정말이지, 만족스러웠다. 만족스러움에서 더 나아가 과분하기까지도 했다. 이와 같은 행복한 삶을 보내고 있는 현재의 내가 말이다. 그렇게 나는 코토르와 부드바가 풍기는 두 고요함에 서서히 스며들며 낯선 땅에서 황홀한 10일을 보냈다. 


부드바, 경쾌한 고요함을 풍기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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