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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Sep 30. 2023

포르투갈에서 쓴 일기장 모음 zip

포르투갈에서 쓴 일기장 모음 zip

#. 내 삶은 수영이 들어오고 나서 단순해졌어 In Portugal

포르투갈에서 하는 것들은 참 단순하고 명료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대충 밥을 먹고 (사실, 밥이라기보다는 수영할 수 있는 에너지 충전 정도의 나에겐 가벼운 음식), 수영 갈 준비를 한다. 리스본 근처의 'Cascais', 'Oerias' 해변, 리스본에서 다리 건너 이동하는 'Arrabida'와 'Sessimbra' 섬 등 다양한 바다를 누비러 짐을 바리바리 싸 넣은 큰 가방을 메고 문밖을 나선다. 해변에 도착해 바다내음을 맡으며 몸을 풀고, 물속에 들어갈 준비를 마치면 자유로이, 새로운 물의 세계를 경험한다. 수영이 끝나면 해변에 눕거나, 지금처럼 늘 글을 쓰고 (보통은 동시에), 아무 곳이나 들어가 일단 최대한 많이 먹는다. 커피를 마시든 아이스크림을 먹든 후식으로 배를 빵빵하게 채운 후, 그날의 감정에 따라 하고 싶은 걸 하다 보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된다. 집에 도착해 모든 수영용품을 세척하고, 발코니에 널어두고, 나 또한 침대에 널어놓고 있다 보면 저녁 먹을 시간이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저녁 먹고 씻고 그날 찍은 사진과 영상들을 보며 스르륵 잠이 든다.


하루하루를 물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에 맞추어 움직인다면 일주일이 훌쩍 지나가 있다. 딱히 하는 게 없으면서도 말이다. 한국에서 지내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나열하고 있고, 머릿속에서 목표들이 둥둥 흩어져 떠다니고 있다. 둥둥 떠다니는 목표들을 하나씩 해내고 다 끝냈을 때 한 주가 지나가 있다면, 나름 만족해하곤 했다. 무언가 눈에 보이는 것을 해내야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포르투갈에서 보내는 하루들을 돌이켜 봤을 때, ‘나는 그저 바다에 몸을 맡기고 둥둥 떠다닌 거 같은데, 시간이 왜 이렇게 금방 가는 걸까?’ 하며 의아해했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며 생각이 바뀌었다. 포르투갈에서 보낸 일주일처럼, 온전히 좋아하는 것을 쫓아, 기분 좋은 에너지들로만 가득 채운 하루하루를 꾸준히 보내는 삶이 단순해 보이나, ‘어쩌면 가장 경험하기 어려운 쉽지 않은 삶이지 않았을까?’라고. 만약, 이번 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평생 모르고 지나쳤을 삶이지 않을까라고 잠시 씁쓸한 생각을 해본다.


일어나면 수영하고, 끝나면 밥먹고, 아이스크림 먹고 잠들던 나날

#. 바다에서 울려 퍼지는 콧노래 In Praia de torre beach

이날은 오전 7시 30분에 수영 코치 Mariana와 그룹을 만나 ‘Praia de Torre beach’에서 오픈워터 수영을 함께했다. 전날 밤, 오전 6시부터 알람을 맞추는 스스로를 보면서 약간 흠칫했다. ‘안 그래도 잠이 많은 나인데, 새벽부터 일어나 바다 수영을 하러 간다니.’ 내겐  이른 시간이었던 7시 30분, 잠도 깨기 전에 해변에서 옷을 훌러덩 벗고, 입고 온 수영복 위에 수트에 몸을 꾸역꾸역 집어넣으며 아침을 시작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물살이 너무 세서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물살이 센 것보다는 일렁이는 모래 파도 탓에 물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바싹 겁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도, 다행히 그날 수업 전 몇 번 바다 수영을 경험한 덕분이었는지, 이 그룹에서 흐르는 신뢰감 덕분인지 긴장을 금세 풀고 순간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넘실거리는 파도 속의 순간들을 온전히.


이점이 바다 수영을 하며,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싶다. ‘처음 경험하는 것에 당황했을지라도 쉽게 안정을 취하는 것.’ 그날은 포르투갈에 와서 다섯 번째로 바다에 들어간 날이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닷속에 있으면서도 콧노래가 흘러나온 날이었다. 긴장을 풀기 위한 나의 무의식적인 전략이었을까, 아니면 긴장이 완전히 풀리니까 안락해진 몸에서 저절로 흘러나온 소리였을까. 이유가 무엇이었던 정신을 차려보니, 나의 코에서부터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음을 깨닫고 매우 놀라웠다. 그때 깨달았다. 오픈워터 수영이 나랑 정말 잘 맞는다는 걸 말이다.

바다에서 처음으로 콧노래가 흘러나오던 그날

#. 미래가 더 궁금해졌어 in a padaria portuguesa cafe

가뜩이나 평소에 미래를 얼른 알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끼는 편인데 바다 수영을 배우고 난 후로부터, 이 충동이 사그라들기보다 더욱 요동치고 있었다. ‘난 3년 뒤, 5년… 15년 뒤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고 말이다. 최근 친한 언니가 ‘혜미는 참 기대가 많은 친구 같아.’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기 전에는 기대가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언니의 말이 크게 와닿았다. 시간이 좀 흘러, 언니가 날 정확하게 잘 파악해 주었구나 싶었다.


그렇다, 나는 나의 하루가, 내일이, 몇 년이 훌쩍 흐른 먼 훗날들이 굉장히 궁금하다. 한편으로는 미래를 다 엿보고 싶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기대감을 잃지 않고 살며 매일매일을 궁금해하며 살고 싶기도 하다. 학생 때까지는 당연히 교사 생활을 하며 (평생 꿈이 교사였다), 지내지 않을까 싶었지만, 성인이 되어 점점 많은 경험치가 쌓이며 투명하게 보였던 미래가 완전히 불투명한 유리구슬로 변했다. 그래서 더 그 구슬이 궁금해진 탓에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 미래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마치, 스노우불을 보는 것처럼. 유리구슬 안에 중심축이 되는 다양한 캐릭터 하나만 보이고 그 주변으로는 별, 동그라미, 하트 모양 등 여러 무늬로 섞여 있기에, 스노우볼을 볼 때마다 그것이 주는 몽롱함에 계속 흔들어 보고, 쳐다보듯 말이다.


찾았다. 나의 삶과 미래에 대한 비유를, 스노우볼이다. 앞으로도 세상에 하나뿐인 스노우볼을 갖가지 무늬로 채워보고 싶다. 꿈이 주는 몽롱함에 빠져 계속 내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꿈을 꿀 수 있도록 말이다.

앞으로 더 궁금한 이 아이의 스노우볼

#. 우물 안에 갇히기 쉬운 사람 In Sessimbra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 너무 빨리 확신하고 답을 정해버린다~욕구가 커지는 것이다.(156p)
[모든 삶은 흐른다, 로랑스 드빌레르]

나라는 사람은 뭐 하나 꽂히면, 가끔은 애석하게도 그것만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다. 만나는 사람도, 취미도, 장소도, 음식도 무언가 하나를 특정하게 좋아하게 되면 그것만 더 즐기려 하고, 다른 것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다 간혹 새로운 걸 맞이해야 할 때면 기존에 좋아하던 사람에서, 공간에서, 무언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에 대해 크게 아쉬움을 쉽게 느낀다. 이런 성향은 가끔 끈기라는 장점으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대게는 단점으로 이어지기도 해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아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각종 부정적인 감정을 안고 새로운 경험을 할 때면 오히려 또 다양한 사람을 만나 행복해하고, 알지 못했던 세계에 눈을 뜨며 차츰 또 성장하는 자기 모습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성장할 내 모습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감만으로 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날도 그러했다. 그날은 아쉽게도 마음속으로 좋아했던 안드레와 수영을 가지 못한 날이었다. 대신, 새로운 수영 버디 Catarina와 브라질에서 온 Augusto와 함께했다. 역시나 좋아하던 사람과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굉장히 아쉬워했으나 처음 미팅 장소에서 C와 만나 인사를 나누고 몇 마디를 나누자마자, 또 ‘Sessimbra’에 도착하자마자 기존의 편협한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생에 처음 보는 비현실적으로 맑고 푸른 바다 색깔과 그곳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30분가량의 등산로, 프라이빗한 비치에 가는 모든 순간, 바다를 즐기러 다 같이 준비할 때, 입수해 수영할 때 등 하나부터 열까지 경이로웠다. 동시에 깨우쳤다. ‘아, 나는 생각보다 더 우물 안에 갇히기 쉬운 사람이고, 마음이 바다처럼 넓어지려면 아주, 한참 멀었구나.’


물론 우물 안에서 무조건 벗어나고 싶어서 정신없이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하는 행위가 좋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다만, 조금 더 마음을 열고, 기존에 고집했던 좋아하는 존재들을 조금씩 내려놓고 다른 새로운 것들을 마주하는 기대감으로 반갑게 환영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또한, 그 사람을 만나보기도 전에, 새로운 곳에 가보기도 전에, 새로운 음식을 먹어 보기도 전에 섣불리 무언가를 기존의 경험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다짐하게 되었다. 그날부로, 나의 마음과 생각의 장이 바다처럼 넓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오늘 수박을 이웃에게 나눠준 나의 미담이 떠오른다. 하하, 잘하는 거라고 믿으련다!).


가끔 새 환경에 나가려 하지 않을 때, 머뭇거릴 때 스스로 물어볼 질문이 생겼다. ‘지금 주저하고 있는 게 정말 나와 안 맞기 때문에 망설이는 건지, 아니면 그저 지금 좋아하는 것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고집부리는 건지.’ 말이다. 객관적인 모습을 보려고 노력하게 된 건 함께한 Sessimbra, C, A 버디들 덕분이었다.

나의 부끄러움을 만나게 해준 Sessimbra 바다이자 인생 바다

# 포르투갈 에필로그

아는 맛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다. 포르투갈에서 바다와 함께 흐른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나의 삶 속에 스며들었다. 원래도 스펀지의 성격을 갖고 있다. 어느 곳을 가든, 무엇을 하든, 어떤 말을 듣든 적응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바로 이질감없이 깊이 스며든다. 일주일 동안 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여서 수영하고, 그들이 모여있는 해변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해변가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바다에서 노을을 만나고 숙소로 돌아가 요리를 해 먹고, 좋아하는 간식을 먹고 서서히 잠이 드는 그 7일의 삶이 내게 푹 녹아들었다. 빠져드는 건 순식간, 빠져나오는 건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특히, 자유로웠던 바다에서의 삶은 더더욱.


포르투갈을 떠난 이후로도, 무언가 정해져 있지 않은 넓은 바다의 품이 보고 싶었다. 결국, 이후 여행 일정을 하나씩 수정하기 시작했다. ‘물을 따라 여행하자, 이제 나의 여행지는 전 세계의 바다야.’


앞으로 포르투갈행 티켓과 나의 수트, 수영용품이 준비된다면 그건 나의 휴가가 시작되었다고 봐야겠다.

오늘부로 나의 휴양지는 포르투갈이다.


보고 싶은 포르투갈 바다 친구, 또 보자
가장 좋아하는 바다요? 춤추는 Sessimbra 바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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