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학기가 끝날 무렵 첫째의 반에 비라는 학생이 전학을 왔다. 알고 보니 비의 엄마는 일본인이고 활발한 성격이어서 우리는 금방 친해지게 되었고 신기하게도 비역시 첫째가 친하게 지내는 그룹 친구들과 금방 가까워지게 되었다.
이미 비의 집에 한차례 초대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우리 집에서 플레이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비가 나에게 물었다.
비: What's your name?
여덞살 친구에게 나의 이름을 천천히 알려주면서 한국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나왔다.
비가 주방일을 하고 있는 나에게 한번 더 물었다.
비: 영국에 와서 영어를 배웠어요?
나: 아니 나는 영국에 오기 전에 배웠어.
비: 그래서 피(첫째)보다 영어를 잘하시는군요
아직은 내가 영어를 더 잘하는구나 ㅎ 조금 으쓱하면서도 첫째가 영어가 서툴다는 것을 아이들이 잘 알고 있고 그럼에도 잘 어울려준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아이들이 집에 오자마자 한 것은 축구.
작은 마당이지만 셋이서 공놀이를 하다가 공이 옆집으로 넘어갔다.
공을 찾으러 옆집을 찾아가는 것은 나의 몫...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잘 노니 난 엄마들과의 수다타임을 준비했다.
조금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한국술과 안주를 준비했을 텐데 갑자기 하게 된 플레이 데이트라 얼추 검색한 사진을 보고 구색만 맞춰본다
손님이 올 때마다 그릇을 다시 사야지 하다가도 자꾸 미루게 된다. 이유는 결혼 때 산 십 년도 넘은 구닥다리 접시이지만 아직 멀쩡하고, 짐을 늘리기가 싫다. 지금 있는 그릇이 모자란 적이 없기 때문에 접시를 새로 산다면 성격상 오래된 그릇을 못버릴테고 그냥 공간만 차지하게 될 것이니 이런저런 생각에 그릇 구매를 비루게 된다.
친구들의 엄마인 T와 V가 왔다.
와인 한 병과 함께 수다를 떨기 시작함.
영국인도 술을 좋아한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영국인의 술사랑은 한국 이상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일례로 하교 시간 전에 도서관에 가려고 한 시간 반 일찍 학교 근처 도서관을 가는 길에 둘째 반 엄마를 만났다.
나: 안녕. 도서관 가는 길인데 넌 어디가?
친구 엄마: 응 우리 지금 펍에 가서 맥주 한잔하고 애 데리러 가려고
이 말에 혼자 빵 터지고 말았다. 맥주 후 하교라니, 너희들의 술 사랑도 정말 대단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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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트의 역할은 술잔이 비지 않게 계속 술을 채워주는 것이라는 것도 대학원 유학 시절이 아닌 이번에 주재원 와이프로 와서 알게 된 사실이다.
나는 T와 V 두 언니들의 술잔이 비지 않게 와인을 채워주며 대화에 참여했다.
일본인인 T는 워낙 영국에 오래 살기도 했지만 남편이 영국인이라 영국에 대한 경험이 많고 문화적 지식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을 정도로 한국에도 관심이 많은 친구이다. 그런 친구가 함께 있으니 대화가 더 풍성해지고 내가 몰랐지만 영국인인 V는 내가 모르는지를 알 수 없는 사소한 것들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 스코틀랜드의 클랜(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원래는 잘 몰랐던 클랜이 어떤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또 아일랜드의 세탁소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는데 이것은 작년에 내가 읽었던 클레이케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라는 책에서 알게 되었던 내용이라 대화를 금방 따라갈 수 있었다.
물론 나의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간간히 리스닝을 놓지는 부분이 있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문화적 배경 지식이 많아야 풍성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영국인과의 대화는 더욱 그렇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으면 아예 그런 주제로 이야기를 안 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