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베터리검사 - 그날의 기억

by 늘봄맘

준이의 풀 배터리 검사는 8세 6월경, 지금으로부터 약 1년 반 전에 이루어졌다.

7살 무렵, 오르다 선생님께서 준이가 산만하고 눈맞춤이 잘 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었다.

나는 어디선가 ‘8세 정도는 되어야 검사가 더 정확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정확한 정보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8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담임선생님께 아이의 산만함에 대해 여쭈었더니, 선생님께서는 “산만한 편이긴 하지만 수업에 큰 방해가 되는 정도는 아니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한동안 검사를 망설이기도 했지만, 9세 초에 해외로 나갈 계획이 있었기에 그 전에 받아두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대학병원은 대기 기간이 워낙 길었기 때문에, 주변 엄마들에게 추천받은 개인 병원에서 검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간 날.

준이는 ADHD 진단을 받았고, 특히 청각적 주의력 지표가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많이 놀랐지만, 다행히도 약을 복용할 정도는 아니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선생님께서는 “5학년이 되어서도 같은 점수라면 그땐 약을 고려해야 할 수 있다”고도 하셨다.)

2학기가 되었을 무렵 담임선생님은 준이의 수업 태도가 이전과는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수업 시간엔 선생님을 잘 바라보는 게 중요해”라고 말했던 걸 성실한 준이는 마음속에 간직했고, 그 말을 기억해 집중하려는 노력을 진심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변화가 청각 ADHD가 실제로 개선되어서였는지 아니면 단지 노력의 결과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믿었고, 학교에서도 다른 친구들에게 딱히 방해되는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ADHD에 대해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내가 유독 선생님의 말씀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웩슬러 검사 결과 때문이었다.

다행히 결과지를 사진으로 남겨두었는데, 그 검사가 주었던 혼란스러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말로 표현하는 것이 서툰 아이였기에 언어 이해 지표가 높게 나온 것에 깜짝 놀랐고, 반면 다른 영역들 간의 점수 차이가 커서 더더욱 혼란스러웠다.

특히 처리 속도가 낮게 나온 부분을 보며 “그래서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하는구나” 싶었다. (물론 청각 ADHD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머님, 이 아이의 결과는 제 아들과도 비슷해요. 이 아이는 클수록 인지가 계속 올라가고, 공부는 잘할 겁니다. 하지만 반에서 인싸가 되긴 어려울 거예요.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상징적인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 수 있고, 관계 속 미묘한 뉘앙스를 잘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어요.

여자 아이였다면 더 어려웠겠지만, 남자 아이니까 조금 낫죠. 목표는 학급에서 한두 명 친구를 만들어서 무난하게 졸업하는 거예요. 어른이 되면 아무도 신경 안 쓰잖아요.

저희 집은 주말에 아무도 밖에 안 나가요.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지장이 없어요. 어머님 댁에도 비슷한 분 계시죠?”

(속으로 생각했다. ‘네, 우리 신랑입니다.’)

“학교를 다니며 힘든 친구도 만나보고, 그런 경험을 통해 어떤 친구를 가까이해야 할지 스스로 배우는 것도 중요해요.

학기 초마다 아이에게 이야기해요. ‘너 예전에 A랑 친해졌다가 힘들었잖아. 이번엔 어떤 친구가 너와 잘 맞을지 잘 살펴보자.’

사회성 훈련과 언어치료를 병행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저희 아이도 몇 년째 사회성 훈련 받고 있어요.”


그 당시 나는 워킹맘으로 육아와 일을 병행하느라 늘 허덕이고 있었다.

짬을 내는 것조차 힘들었고, 사회성 훈련이라는 말이 솔직히 와닿지 않았다. 준이는 이미 한두 명 친구와 잘 어울리고 있었고, 나는 ‘그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잦은 이사 등으로 준이가 6살 때부터 매년 기관이 바뀌었는데 늘 누군가와는 늘 친해졌고, 종종 무시당하기도 했지만, 결국엔 그 친구들이 준이를 진심으로 좋아해주었다. 그리고 몇 달 후 해외 이사를 앞두고 있었기에 언어치료도 몇 달 받고 중단하게 되었다.


조금 더 진지한 시선으로 아이의 현재를 바라보는 지금, 나는 웩슬러 결과지를 다시 들여다보며 아쉬움을 느낀다.

그때 내가 알았더라면 좋았을 정보들이 있다.

예를 들어 언어적 강점, 하위 검사 간 큰 편차, 처리 속도의 저하가 고기능 자폐에서 자주 나타나는 특성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안 사실이다. 자폐 여부를 단정하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치료와 개입을 시도했을 것 같다.


돌이켜보면, 선생님은 준이의 ‘진단명’보다는 당장의 ‘현실 문제’에 집중하여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셨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 그 말씀이 틀린 건 하나도 없었다.

초조해진 나는 아이의 특성을 하나하나 나열하며, 이게 ADHD 때문인지 고기능 자폐 때문인지를 ChatGPT에 수도 없이 묻는다.

왜냐하면 준이는 고기능 자폐의 전형적인 특성과는 살짝 거리가 있지만, 완전히 배제하기도 어려운, 애매한 경계선 어딘가에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결국 중요한 건 ‘이 아이가 자폐인지 아닌지’보다, “이 아이가 지금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그 방향에 맞춰가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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