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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사람의 마음속 풍경

by 박수종 Mar 05. 2025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잘 될지, 어떤 그림이 될지 아직도 잘 상상되지 않는다. 흰 종이에 처음 연필을 그을 때의 막막함과 두려움은 늘 같다. 그 마음을 달래며 연필 끝만 집중하며 하나하나 그려 나가기 시작하면 어느새 두려움은 사라지고 무아지경 속에서 그림 그리는 행위만 남는다.


두려움에 갇혀 그릴지 말지, 망칠 거 같으니 그냥 지금 그만둘까라는 생각들을 달래 가며 그리는 행위에만 집중하는 일을 매일 하다 보니 평상시에도 그런 사고의 회로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걱정하고 생각만 많이 하기보다는 그냥 일단 시작해 보자 그러다 보면 어느새 두려움은 사라지고 그 일을 잘 해나가고 있었다.


그림을 그린 후 매번 뒤늦게 발견하는 잘못된 점이나 부족함 점도 그냥 귀엽게만 보인다. 내 그림이 나에겐 귀여운 자식 같다. 조금 밉게 그려져도 미워하기 힘들다. 내 정성과 애정을 쏟아 그려서 그런가 보다. 그냥 조금 웃기고 ‘에구 또 잘못 그렸구나’ 하며 ‘다음엔 조금 더 신경 쓰고 천천히 그려야겠다.’라든가 ‘하루에 다 완성하려 하지 말고 힘들 때 좀 쉬었다 하자, 하루 묵혔다 다음날 마무리할 때 확실히 완성도가 올라가니까 참고 내일 완성하자’라는 생각을 한다. 그림을 그린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많은 깨달음을 준다. 나의 성격이나 일하는 방식 등을 다시금 알게 됐다.


그림이 나의 생활과 주변을 바라보는 방식들을 엄청나게 바꾸었다. 원래도 도심을 어슬렁거리며 걷는 걸 좋아했는데 더 많이 좋아하게 됐다. 특별한 곳이 아니라도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됐다. 모든 걸 그림으로 변화되면 어떨까라는 마음으로 보게 되고 더 예뻐 보인다. 실제로 내 그림과 사진을 같이 본 주변 사람들이 그림이 훨씬 예쁘다고 해줄 때 기분이 좋다.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던 그 사물의 아름다움을 내 눈과 손으로 끄집어냈다는 것이 기쁘다. 내 삶이 두 배는 더 풍요로워졌다.

남들은 미처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내 눈으로 먼저 찾아내는 일 같다. 예술 비평가인 제리 살츠의 책에서 “오스카 와일드는 예술가들이 런던의 안개를 주제로 다룬 후에야 안개가 런던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했다”라는 글이 나온다.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움이 영국의 암울한 날씨에서 살던 데이비드 호크니에 의해 재발견되었듯이 평상시 그냥 지나쳐버리던 것들의 아름다움을 찾는 새로운 눈이 자라나고 있는 기분이다.


자연과 널리 알려진 문화유산들의 부정할 수 없는 아름다움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 알아볼 수 있지만 잘 보이지 않던 구석진 곳에 있던 것들, 낡고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것들에 생경한 시선을 보내 그림으로 표현해 낼 때 새로운 아름다움의 옷이 입혀지는 그 일이 난 특별히 재밌다.


잘 보면 나에게 와닿는 포인트들이 있다. 저 색들이 그림으로 다시 표현되면 예쁘겠다.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부분에 나의 애정을 듬뿍 담아 그리면 원래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것들이 나에게는 특별해진다. 그 과정과 결과물을 보는 게 재밌다.


낡은 집, 구석의 가구, 트럭, 꽃, 자판기 등등 사람들 눈에 낡고 별거 아닌 것들만의 귀여운 포인트를 찾아내는 일이 재밌고 경이롭다. 자기 자랑하지 않는 수수하지만 내면이 단단한 사람 같은 그런 물건들을 찾아 빨리 그림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고 싶어 마음이 설렌다.


그림을 그리면서 나의 취향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하게 됐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뭘까? 어떤 이미지가 좋았지?’ 이런 생각을 자주 하고 열중하게 된다. 그럴수록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하루 종일 좋은 기분 속에 있을 수 있다.


최근에는 실제로 본 것만 그리는 것에서 벗어나 나만의 창작물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늘 꿈꾸는 이미지들을 생각해 봤다. 내가 좋아하는 이미지는 오래된 주택과 그 집에 있는 작은 마당의 나무와 꽃들, 애완동물들, 도서관, 옛날 카세트 플레이어와 전축, 잡지책, 영화들, 19세기 유럽풍의 모든 것 등등을 생각하고 이미지를 찾고 구상해보고 있다.

상상 속 꿈의 도서관을 스케치 해보았다


저번 주 경동시장에 있는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이라는 곳에 가서 봤던 80년대 우리 집에 있던 거 같던 카세트 플레이어가 반가워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집에 와 그 사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중학생 때 겨울방학이 되면 이불속에서 귤을 까먹으며 잡지책 볼 때 늘 틀어놓았던 팝송들이 흘러나오는 카세트플레이어가 있는 장면이었다.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에서 본 카세트플레이어



일방적으로 나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의 내면을 탐구하고 기억 속을 뒤지고, 오래된 사진첩을 찾아보고 좋아했던 책과 영화들을 다시 보며 적극적으로 나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꿈꾸던 이미지들을 찾고 있다.


그림이 나의 생활을 완전히 바꾸었다. 아주 적극적으로 아름답게 바꾸고 있다.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풍성해지고 멋져졌다. 하루 종일 내가 좋아하던 이미지를 스케치해 보고 그 그림에 들어갈 옷의 무늬, 벽지 무늬, 가구들을 검색해서 맘에 드는 것을 찾아 그려보는 연습을 한다.


아마 돈을 버는 일이라면 이렇게까지 깊이 빠져 몰입하지 못했을 거 같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다니는 일이라 이렇게 할 수 있다. 오늘도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고 싶었지만 너무 집에서 그림만 그리다 보니 어깨가 아프고 눈도 침침해서 산책 겸 나와서 글을 쓰고 있다.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는 건 그냥 어떤 사물의 형태만 그리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직접 그려보니 그리는 사람의 마음속에 간직한 아름다움의 엑기스를 표현하는 일인 거 같다. 그리는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장면, 이미지, 마음속에 몽글몽글하게 연기처럼 떠다니던 어떤 것에 형태를 부여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기술적으로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것에 크게 연연할 필요가 없는 거 같다. 물론 기술적으로 잘 그려서 보기 편하고 어설픈 보다 낫겠지만 그게 먼저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술이 먼저였다면 이런 행복감이 생기다 꺼져버렸을 거 같다.  


이런 마음이 우선이고 누군가에게 평가받을 일도 없다 보니 내 마음을 따라다니며 평생 간직하고 있던 꿈의 정체, 나의 환상, 몽상을 구현해 줄 마법 지팡이쯤으로 생각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렇게 나와 그림의 관계가 자리를 잘 잡아가면 언젠간 기술적으로도  나은 그림을 그릴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영원히 나아지지 않아도 괜찮다. 난 내 속에 있던 꿈의 모습을 표현한다는 것만으로도 들뜨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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