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인가? 꽃샘추위에 떨고 있다면 그대는 꽃이다. 꽃이 된 날은 꽃을 피워야지. 메뉴가 따뜻한 곳을 찾아들었다. 가까운 곳에 입소문 자자한 유명 맛집이다. 모리 국수 맛이 궁금해서 몇 번 찾아간 집, 점심특선으로만 가능한 메뉴라 자칫 시간을 놓치면 먹을 수 없다.
모리국수에는 뱃사람들의 서사가 담겨있다. 처음 포항 구룡포에서 어부들이 끓여 먹기 시작했단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집성촌이 즐비했던 구룡포항, 겨우내 매서운 칼바람을 정면으로 맞서며 생업에 매달리던 어부들과 종일 숨비를 토해내던 해녀들의 추위와 허기를 달래던 음식이 모리국수였다. 서슬 퍼런 일제강점기 피눈물의 시절, 매꼬롬하게 품질 좋은 생선들은 모두 수탈당했겠지.
목 잘리고 날개 꺾이고, 꼬리 끊어져나간 우리네 모습과 닮은 생선만이 어부의 몫이고 그의 가족들 몫이었을 게다. 반은 찌그러지고 반은 검게 그을린 양은 냄비에 펄펄 끓어오르는 모리국수. 얇은 사 하얀 고깔 마냥 모리국수에 김이 오르는 미명 너머 푸르딩딩 시퍼렇게 질린 얼굴 하나 보인다. 어퍼컷 한방 날려보지 못한 그 한겨울 한파가 서럽다. 엉거주춤 모여들어 양푼이째 호호 불며 얼음장 같은 몸을 녹이는 모습이 눈물겹다.
음식 이름이 뭐냐고 묻는데 별 이름이 없어 "나도 모린다"에서 유래됐다는 모리국수. 땅을 빼앗기고, 이름을 뺏겼던 흡사 이들과 닮은 얄궂은 무명. 흥나게 웃던 사람들은 몸속 구석구석 똬리를 틀고 앉은 울분으로 더 이상 웃지 않았고, 설움이 침전하여 국수 몇 가락에도 눈물지었으리라. 가슴이 있되 없는 척, 마음은 애초에 가지지 않은 듯 점점 흐린 눈이 되어갔으리라.
오래전 구룡포의 유명한 모리 국숫집을 찾은 적이 있었다. 건지지 않은 국수 면발이 걸쭉하게 퍼져서 생선과 진한 양념이 서로를 탐닉해낸 맛은 감탄보다는 연민이었다. 이제는 저항하지 않아도 되는 봄, 하나 모리국수에는 여전히 거꾸러진 매운 계절의 서릿발이 양념되어있다.
주로 껍질만 탐하는 나는 서둘러 양푼이를 뒤적인다. 쫄깃쫄깃한 콜라겐 껍질이 품고 있는 뽀얀 속살이 사르르 녹는다. 무서운 이름 뒤에 이렇게 달콤한 속살이라니. 아귀야 너의 정체성이 뭐냐? 제국주의 패망이 너의 이름 덕분이더냐? 꽃샘추위 속의 달콤한 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