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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영화를 봅니다

목표가 사라진 삶에 대하여

by honest

벌써 사흘째다. 사흘 연속으로 집에 7시쯤 들어왔다. 특별한 계획이 없는, 이후의 나의 일상은 다음과 같다. 씻고 TV를 본다. 드라마도 보고 영화도 본다. 그러다가 다음 날 출근 준비를 하고 11시 반에서 12시 정도엔 잠자리에 든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싫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 불편하진 않다. 쉰다고 해 봤자 특별히 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엔 오랜만에 이틀 연속을 집에서 보냈다. 토요일엔 아는 형이 하는 병원에 잠시 다녀와야 했기에 외출도 안 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봤자 그 시간이 몇 시간이나 되었을까. 한 서너 시간? 그리고 일요일엔 종일 집에 있었다. 이틀 연속 집에서 혼자 쉬는 게 소원이라는 사람들도 있던데 나는 아니다. 그 정도로 체력 소모를 하는 일이 없고, 할 일도 없다.




"만나면 좋은 친구"라는 멘트답게 호젓한 나에게 텔레비전은 거의 유일한 낙이다. 한 OTT를 구독하면서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등록해 놓는데, 한 번은 세어 보니 그게 100편 가까이 되었다. '100편은 넘기지 않아야지' 생각하면서 마치 숙제하듯이 하나씩하나씩 그걸 보아 나갔. 몰랐는데, 며칠 전에 다시 셈을 해 보니 그게 불과 70여 편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동안 30편을 보았느냐 하면 그렇지 않은 것이, 그 사이에 새로 등록한 프로그램도 무척이나 많기 때문이다. 실은 주말 같은 날에는 특별히 할 것이 없을 때는 영화를 하루에 세 편씩 보는 경우도 있었다. 드라마는 더 말할 나위도 없고.


'좋아하는 게 뭐에요?'라고 물어보면 '사람 만나는 거요'라고 대답할 만큼 나와 집돌이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아마 개인적으로는 그냥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과 조금씩 멀어지게 되었을 거고, 사회적으로는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코로나19 이전에 나는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약속이 서너 개 이상씩 있었다.(결혼 전에는 여덟 개씩 있는 편이었으니 그나마 줄어든 것이다.) 갑작스레 찾아온 코로나와 함께 집도 전에 살던 집보다 훨씬 외곽으로 이사했다. 확실히 예전처럼 사람 만나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지금은 직전에 살던 집보다는 그래도 시내 쪽으로 좀 더 들어왔다고 할 수 있는데(교통 측면에서) 그래도 여전히 외곽은 외곽이라 이전과 같은 에너지는 생기지 않는다. 특히 평일의 경우에는 출퇴근에만 왕복 2시간 반을 쓰게 되는 셈이라 별다른 에너지가 생기지도 않는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만나고 들어오라고 하면 난 좋아하겠지만.


운동을 하고 책을 보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일주일에 운동을 두세 번 정도 가는데 정말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그게 어찌 보면 나의 유일한 일정이 된다. 책? 책 보는 것 좋아하지. 다만 나는 일을 빨리 처리하는 편이라 회사에서도 자투리 시간에 책을 펴놓고 읽는다. 출퇴근시간에도 전철 타는 시간만 왕복 2시간 정도 되기 때문에 회사의 자투리 시간과 출퇴근시간을 더하면 하루에 책 한 권을 족히 볼 때도 많다. 당장 이번 주에도 그렇게 몇 권을 보았다. 그리고 역시 문자가 영상만 못하다. 나는 휴대전화로 영상을 찾아보는 사람은 아니지만, 집에는 큰 텔레비전이 있기 때문에 역시 책을 읽기보다는 텔레비전을 켜게 된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영화를 많이 보다 보니 영화 보는 눈도 조금은 생겼다. 아무래도 시간이 넉넉하니 신작도 보지만 오랜 명작들까지 다 찾아보게 되는데 예전 명작들의 대사를 듣고 있노라면 '아, 이래서 이 영화가 명작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사람들이 그 영화를 가지고 했던 이야기들도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실제로 나는 정말 영화를 별로 보지 않은 편이다.) 하려는 이야기의 의도나 구성 등도 조금씩은 깨달아 가고 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마치 무슨 평론가가 된 것 같지만 그 정도는 아니고, 이제 조금씩 안 보이던 게 보이게 되었다고 해야 맞겠다. 그렇게 시간을 때우다가 잘 시간이 되면 잔다.




대학교를 다닐 때 어떤 모임에서 한 형이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대학생 때는 시간이 많으니까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 형의 요지는 허송세월하지 말고 세상도 넓게 보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그러면서 많은 것을 배우라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주된 조언은 생각나지 않는데 그다음 말은 확실히 기억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지 못하면 사람들과 술이나 마시고 희희낙락하면서 떠들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거였는데 그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것보단 더 의미 있게 보내란 말을 했었다. 그러면서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단 차라리 사람들을 만나서 술이라도 마시며 시간 보내는 게 조금 더 낫다고 말을 했었다. 이건 확실히 기억한다.


나의 대학생활을 돌아보면 많은 것을 배우고 의미 있게 보냈던가 반성하게 된다. 물론 객관적으로 아주 엉망인 대학생활은 아니었다. 이것저것 많이 배우러 다니기도 했고, 보러 다닌 것도 많았다. 나는 사람들이 아직 간송미술관의 진가를 알아보기 전에 한가하던 시절부터 간송미술관을 다녔다. 고작 그거 하나 가지고 으스대는 게 아니라 미술, 유물, 사진전을 비롯해서 지금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이게 된 많은 문화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실제로 연극도 엄청 보았고, 지금은 아니지만 20대 때는 유명한 희곡작가들의 이름과 작품 정도는 대략 알 정도였다. 학림다방 50주년 때 대학로에 그 다방을 찾았던 것도 떠오른다. 그러나 나에겐 뭔가 명확한 목표와 취미가 없었다. 좋아하는 것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난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것이 나의 직업이자 취미가 되길 바랐다. 수님들을 보면 늘 그것이 부러웠다.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는데 월급도 주네. 게다가 제자들이 은퇴한 뒤에도 계속 찾아온다.(다만 이건 내가 나이가 들어서 은퇴한 선생님을 뵈오니, 역시 다른 사람들보다 늦긴 해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찾아오는 제자는 줄어든다.) 은퇴가 없는 삶.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삶. 그게 너무 부러웠고 나도 그렇게 살길 바랐다. 결과적으로 지금 나는 그렇게 되지 못했지만.


한 형이 했던 이야기를 꺼낸 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뭔가 많은 걸 배우지 못했고, 좋아하는 것도 찾지 못한 것 아닐까.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은 삶이었다. 술은 많이 마시지 않았지만 정말 나는 사람은 넓게 사귀었고, 그것은 지금도 나의 큰 재산이며 배움의 큰 원천이 된다. 그러나 그게 스스로 무언가를 배운 것만큼은 역시 못하다는 생각이다. 집에서 늘어져서 매일매일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있다 보면 이게 그냥 살아지는 것이지, 과연 살아가는 것인가 하는 큰 회의가 든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같고, 내일의 나도 오늘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결코 이런 삶은 살고 싶지 않았는데. 뭔가 활동을 하고 있긴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거의 숨만 쉬는 삶이나 다름없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나도 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더 심하게 말하면 오히려 이런 여유도 찾지 못해서 헥헥대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그러나 내 또래의 많은 아이들은 그들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그냥 숨만 쉬고 있는 것 같지만 그동안에도 그들의 아이들은 자라난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큰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 경우엔 어떤가. 나도 그렇게 하고 있나.


헤어지기 전에 아내는 이렇게 어제와 오늘이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지겨워 못 견뎠던 것 같다. 아내는 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고 했고, 무언가에 목마른 사람이었다. 반면에 돌아보면 난 어땠나. 그때는 지금은 일주일에 두 번 하는 운동조차 한 번밖에 하지 않았을 때였다. 가끔씩 사람들을 만나고 그 외에는 특별히 다를 것 없는 지루한 일상을 난 보내고 있지 않았었나 싶다. 그래도 그때는 아내가 있었기에 가족행사도 더 많았고, 동생네 조카와 처남네 조카도 가끔씩은 보러 가고 챙겨야 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지금보다는 좀 더 삶에 의미가 있고 이벤트가 있는 것처럼 느꼈고, 그래서 아내의 권태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요즘 일상을 보내고 있는 나를 관찰하다 보면, 그때 당시 아내의 마음이 이해가 갈 것 같다. 물론 지금 나는 아내도 처남도 처조카도 없어서 인생의 많은 이벤트가 줄어든 까닭에 더 지루하고, 더 매일이 그날그날 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크게 보면 얼마나 달라졌을까 싶다. 그래서 아내는 나로부터 탈출하고 싶었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아내와 결혼했을 때 나는 MBA에 다니고 있었다. MBA를 마치자 마자는 혹시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을까 싶어서 법학과 학사편입을 해서 다시 2년을 더 다녔다. 물론 속으로는 알았다. 이게 내 삶에 무슨 큰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을까. 그래도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였고, 그게 비록 내 삶의 목표는 아니었을지라도 작은 동력원은 되지 않았나 싶다. 1989년에 유치원에 입학한 이래 2020년 2월까지 나는 한 해도 학습기관에 소속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심지어 군대조차도 대학원을 휴학하고 다녀왔으니. 그때는 코로나19가 올지도 몰랐지만, 그래서 2020년에도 무언가 배움을 이어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다만 명확한 목표가 없었기에 한 번 쉬어 가자고 했던 게 이렇게 영영 쉬게 된 셈이다. 결혼생활 중에 한 번은 아내가 자기가 돈은 벌테니 박사과정에 진학하라고 한 적도 있었다. 아내는 내가 교수자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나는 현실성이 없다고 보았다. 그리고 MBA에 이어 학사편입까지 하는 동안 직장생활과 배움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뭔가를 이루어내지도 못하는데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나 하는 회의도 많이 늘었고.


그러나 고작 집에서 리모콘이나 돌리며 하루의 남은 시간 대부분을 보내다 보니 그래도 그때는 힘들어도 삶의 작은 희망이나 꿈, 게다가 생기 같은 게 있지 않았나 싶다. 지금의 내게는 그 가운데 무엇이 남아 있나. 아마 작은 그 무엇이라도 남아 있다면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겠지. 나는 이동진이 아니다. 심지어는 오동진조차도 못된다. 그런데 매일 영화를 보고 있다. 이것보다는 좀 더 목표가 있고, 좀 더 바람직하며, 좀 더 보람 있고 계획 있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다시 TV를 켜고 있다. 정말 시간이 아깝다. 누군가에게 나누어 주고 싶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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