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구나?" 상담 선생님 첫 마디에 눈물이 차올랐다. 내 말을 들어주시는구나 싶어 천천히 입을 뗐다. 친구와 관계로 인해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몸과 마음이 아픈 이유. 막상 말을 하다 보니 화가 났다. 이 상황에 놓여 있다는 거 자체가 분해서 울먹이며 말했다.
얘기가 끝나고,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에 선생님께서 내가 착각하는 걸 수 있다고 하셨다. 억울했다. 내가 경험한 게 착각이라고 단정 지은 거 같아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열심히 말했지만, 이 이상 뭘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나도 안다. 자기 입장에서만 해석하다 보면 오해가 있기도 할 거고, 과장된 해석이 있을 수도 있다는걸. 그래서 주변 반응을 살피고, 객관적인 판단이 들 때까지 참아 왔다. 정확한 사실만 전달하려고 노력했는데 눌러왔던 감정이 제어되지 않아서 그랬는지 거짓으로 전해졌나 보다.
시시비비를 가려주길 바란 건 아니었다. 해결책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들어주는 걸 바랐다. 누굴 미워하는 것도 꽤 힘이 들어가고, 끝에 시원함보단 죄책감이 남아서 괴로웠다. 그렇기에 온전히 들어주는 것만을 바랐다. 상담 선생님의 말에 다음엔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표정을 숨기지 못하니까 알아채셨을 수도 있다.
다음 날, 담임 선생님께서 교무실로 부르셨다. 상담 주간도 아니었고, 심부름인가 싶었다. 담임 선생님께선 학교생활이 어떤지 물었고, 힘든 일이 있으면 도움을 주겠다는 얘길 하셨다. 엄마한테 연락하는 게 좋겠냐고도 했고. 긴 얘기가 오갔지만 사실 기억이 안 난다. 화가 나서 자세히 듣지 않았다. 여태껏 묻지 않았던 일을 인제 와서 얘기하는 게, 마치 상담 선생님이 나와 나눈 대화를 전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담임 선생님한테 얘기할 거면 직접 했을 건데 이렇게 전해졌다는 게 참을 수 없었다.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었겠지만, 배려받는 기분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사가 되고 나서 수시로 아동을 관찰하고, 상담하는 게 일이 됐다. 관찰일지를 쓸 때도 정확한 사실만 적고, 되도록 주관적 판단은 적게 쓰려고 애쓴다. 아동 개개인의 이름, 외모, 기질, 환경이 달라서 똑같은 행동일지라도 마음은 다를 테니 센터장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아동의 언행을 여러 방면으로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 선생님의 확신이 때론 학생에게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
양육자(가족 형태가 다양하니 부모가 될 수도 있고, 조부모가 될 수도 있고, 후견인이 될 수도 있다.) 다음으로 보호자인 사회복지사는 아동과 상담한 내용을 전해야만 할 때가 있다. 생명이 위험이 있거나, 사회복지 서비스를 연계하거나, 조심해줘야 할 게 있든지 어떤 때에는 완전한 비밀을 유지하기 어려운 때가 생긴다. 비밀 유지의 원칙을 지키지 않은 선생님을 원망했던 청소년기의 내 모습이 떠오르며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직업인으로서의 태도이자 아이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으려고 했지만 앞선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상담하는 상황에선 특히나 아이 표정이나 머뭇거림이 무척 신경 쓰인다. 나이가 적고, 체구가 작다고 고민의 크기도 작겠냐. 앞에 있는 아이가 선생님 앞에서 신경 쓰이는 일을 말하기로 마음먹는 게 그리 쉽지 않았을 거다. 앞으로도 믿고 말할 수 있는 선생님으로 남고 싶다. 용기 내어 전한 마음에 실망을 주고 싶지 않다.
상담 선생님도 담임선생님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게 된 채. '그 당시 선생님이 뭐라고 얘기 해줬으면 덜 아팠을까?' 스스로 물었고, 이대로 시간을 돌려 고등학생이 된다면 '솔직하게 이 말은 어떤 이유로 전할 필요가 있었다고 양해를 구했다면 나았겠다''라고 답했다. 나이도 어리고, 전문 지식을 갖춘 자도 아니었지만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받고 싶었다. 어떤 태도를 갖추면 좋을지 확신이 섰다. 나이와 상관없이 다른 크기와 무게를 지닌 아이들과 상담을 시작하기 전 혹은 끝맺을 때면 꼭 묻는다. "이 얘기는 (이유)로 (대상)에게 전해야 할 거 같아. 오늘 나눈 대화 중에 이것만큼은 꼭 비밀로 지켜줬으면 하는 게 있니?" 자살 충동이나 가출 등 가족이나 전문가에게 반드시 전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아이가 원치 않을 때는 충분히 설명해주고, 이해시켜야지 별수 있나. 존중하는 태도를 갖추는 건 쉬운 듯 어렵다. 긴 호흡으로 일관된 태도를 가져가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