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모양이 되는 것의 어려움
작은 원에 큰 원이 들어간다. 작은 원은 큰 원을 감싸지 못한다. 내용물이 쏟아져 나온다. 당근, 오이 등의 채소 따위가 원 밖으로 분출된다. 혼날 새라 얼른 주워 먹는다. 한껏 인상 쓴 표정으로 오물오물 쩝쩝 씹는다. 목이 멘다. 둥그렇게 허리를 만 엄마가 발을 힘껏 둥글게 싼다.
차곡차곡 살아내며, 둥근 모양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한다. 내 목을 매게 했던 둥근 김밥처럼 타인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고, 긴 터널 같은 피로한 미래도 둥글게 감내하는 것이 얼마나 지긋한 노력이 필요한 일인지. 그 시절 엄마의 굳은 얼굴과 외로워 보이던 뒷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은 참 많이 닮아있다.
유년시절 30대의 엄마는 뒷모습으로 기억된다. 엄마는 항상 분주했다. 집에선 치매 걸린 증조모를 모시느라 쓸고, 닦고, 만들고, 치우고, 지쳐 뒤로 누웠다. 식당에서는 썰고 자르고 담느라 좀체 가만히 서있는 정면을 보기가 힘들었다. 어린아이다운 과장으로, 그녀를 웃기고도 싶었고 가끔은 날조해서라도 음흉한 현실을 까맣게 잊게 하고 싶기도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 뒷모습이 꽤나 야속해 보였다. 그녀가 어떤 표정으로 그 분주함 들을 넘어서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저 가끔씩 게슴츠레하게 훔쳐본, 돌이킬 수 없는 서글픔을 모른 척할 뿐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로 여러 기회들이 자취를 감추고 내 마음은 말라갔다. 어쩌면 기회가 오더라도 너덜 해진 마음을 감추느라 사색이 될지도 모르는 부진한 상태였다. 마치 사 차선 도로에서 차들은 앞다퉈 달려가는데 나는 택시비도 심지어 버스비도 없어 발 둘 곳 없이 도로 한 복판에서 불안하게 서성이는 느낌이었다. 기회를 기다린다는 명목으로, 오지 않은 기회에 누가 되지 않을 일들을 찾았다. 전공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아집으로, 하루씩 일하는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그중에서도 주방 아르바이트는 아주 고된 일이었다. 10시간 꼬박 서서 김밥을 만 적이 있다. 그 전까지는 김밥을 제대로 말아본 일이 없었다. 밥을 까는 일부터 마는 일까지 배워야 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소풍날이면 층층이 쌓여 꽤나 높다란 빨간 도시락 통에 누드김밥, 계란말이 김밥, 소고기 김밥 등의 색색 김밥과 사과, 참외 등을 큼직하게 깎아 가득 채운 도시락을 들고 가야 했다. 그것이 퍽 귀찮기도 하고 선생님께 전해드리는 것도 괜히 낯간지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무 무거웠다. 우리 엄마는 늘 그렇게나 큰 도시락 통을 들려줬다.
김밥을 마는 일은 예상보다 퍽 어려웠다. 잘 붙으라고 꽉꽉 누르면 김이 찢어졌고, 잘 누르지 않으면 붙지 않았다. 밥을 너무 많이 넣으면 터졌고 너무 적게 넣으면 좀체 모양이 나지 않았다. 집중해서 만다고 허리가 구부러지고 어깨가 자꾸만 말려들어갔다. 반면 옆에 아주머니는 수려하게 말아냈다. 밥을 쫙, 재료를 탁, 쓱 돌려서 끝. 아주 쉬워 보였는데 내 손만 닿으면 터지고, 각지고, 찢어지고, 볼품없었다.
어린 나이부터 일을 하다가, 주부가 되어서도 채 쉬지를 못하고 식당에 나가 눈치 보며 일을 배웠을 어머니가 된 듯 그 심정을 세어봤다. 그 마음을 내가 어찌 온전히 안을 수 있겠냐마는 다리가 지끈 아파오고 험한 소리 들으며 김밥을 마는데 자꾸 정체 모를 풍경들이 물결치듯 뒤덮어, 무력하게 말고 있는 나를 둥글게 둥글게 어딘가로 자꾸만 굴러가게 했다.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엄마는 어찌 이 맵살스러운 시간들을 견뎌왔는지 자꾸만 복기되는 상념들이 나를 세모로, 네모로, 또는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김밥을 마는 엄마는 생기 가득해 보였다. 어린 눈에도 그것이 좋아 보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꽤나 자주 김밥을 싸줬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너덜 해진 마음이 김밥처럼 펴지고 모아지고 둥그러지는 듯 환해 보였다. 연신 맛있냐고 물어봤다. 나는 요령 좋게 거짓말을 했다. 응 맛있어. 맛이 없었다. 너무 컸다. 오물오물 씹는 게 고되게 느껴질 정도로 컸다. 밥도 많이 넣고 재료도 많이 넣고. 그렇지만 엄마가 실망할 까 그저 맛있다고만 했다. 선생님들도 도시락 통을 돌려줄 때 환히 웃으며 너무 맛있게 먹었다,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전해드려라라고 하는데 나는 선생님도 요령이 좋다고 생각했다. 맛이 없으셨을 텐데.
김밥을 마는데 점차 속도가 붙었다. 김의 맨 밑 부분의 공간을 약간 남기고 중간 부분에 밥을 꽉 누르지 말고 피듯이 얹고, 남긴 김의 밑 부분이 재료의 끝부분과 닿게 해서 꽉 눌러줘야 하고, 재료들은 중간에 소복하게 넣어야, 잘랐을 때 가운데 재료가 몰린 소담한 김밥이 된다. 포인트인 김밥 말기는 너무 힘주지 않고 미끄러지듯 말아야 한다. 어쩌면 김밥 마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사람의 기분을 맞추는 일이다. 둥글게 말다 가도, 뾰족한 지시에 대답도 개운하게 해야 하고, 한 번씩 마음을 때리는 말이 날아올 때도 꾹 누를 줄도 알아야 하고, 다리가 아파도 티 내지 않아야 하고, 김밥을 말다 엄마 생각이 너무 나더라도 김이 찢어지면 안 된다.
어린 나의 여린 마음을 살펴주지 못했던 엄마가 야속했었다. 엄마가 식당에 갈 시간이 되면 내 마음은 벌써부터 공포로 얼룩졌고 엄마가 기어이 신발을 신으면 무르팍, 종아리를 될 수 있는 대로 부여잡고 처연하게 울어댔다. 어머니는 한껏 구겨진 표정으로 나를 떼어놓고 어김없이 나갔다. 더 크게, 더 괴롭게 울면 대문이 열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때의 그녀의 나이 언저리에 다다라서야 마치 그녀를 학습하듯, 그녀의 심정을 분석한다. 구겨진 표정으로 빠르게 떼어야 나갈 수 있었음을, 김밥을 말며 울던 나를 떠올렸었음을. 그리하여 이제서야 궁금하다. 나는 그녀를 향해 천진하게 울어 제낄 수라도 있었는데, 울부짖음을 떼어놓고 뛰쳐나와야 했던 그녀의 마음은 누가 헤아려줬을까.
집에 돌아오니 종아리에 상처와 퉁퉁 부은 발목이 아릿하다. 통증이 아픔이 되고 아픔이 굴러가 슬픔이 된다. 슬픔이 굴러 공감이 된다. 감정이 김밥 굴러가듯 구르고 굴러 내 마음이 커다란 원이 된다.
왜 그녀가 그렇게 크게 김밥을 쌌는지. 그리고 5단 도시락의 무게가 그녀의 사랑의 무게였음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구르고 굴러와 내게 얹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