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라디, 모리슨, 부샤케비츠 <Echoes>
“소장할 만한 귀한 듀엣 리사이틀로, 1992년 BIS에서 나온 듀엣 음반과 나란히 놓을 만하다.” – 그라모폰
(여기서 언급된 음반은 1992년 BIS에서 발매된 듀엣 음반으로, 소프라노 엘리자베트 죄더스트룀, 메조소프라노 커스틴 마이어, 피아니스트 얀 에이론이 함께한 작품집이다.)
ECHOES는 소프라노 카타리나 콘라디, 메조소프라노 카트리오나 모리슨, 피아니스트 아미엘 부샤케비츠가 함께 연주한 음반이다. 슈만·브람스·쇼송·포레 등의 낭만주의 작곡가들이 남긴 듀엣 작품을 모았다. 두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결은 너무 귀하다. BBC New Generation Artists 시절부터 쌓아온 콘라디와 모리슨의 음악적 호흡은 놀랍도록 리얼하게 전달된다. 피아노로 참여한 부샤케비츠도 대단하다. 목소리는 살려주고 음악의 핵심을 짚어내는 탁월한 연주를 펼친다. 다양한 성악 표현과 감정이 빚어내는 조화로움이 끝도 없이 현대적으로 생생하게 펼쳐지는 것이 이 음반의 힘이다.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의 역사는 의외로 짧은 편이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까지 여성은 무대에 설 수 없었다. 높은 음역은 소년이나 카스트라토의 차지였다. 바로크 오페라가 시작되면서 여성 가수가 본격적으로 무대에 서게 되었고, 가장 높은 성부인 소프라노가 자리를 잡았다. 18세기 후반에는 소프라노와 알토 사이의 빈틈을 메우는 새로운 음역이 필요해졌고, 그 틈을 메운 것이 메조소프라노였다. 카르멘 같은 관능적인 여주인공이나 남장을 한 청년 역할은 메조소프라노의 대표적인 무대였고, 이 성부는 곧 독자적인 매력을 지닌 영역으로 인정받았다.
흥미로운 점은 테너, 바리톤, 베이스 같은 남성 성부는 비교적 일찍 안정된 반면, 여성 성부의 세분화는 훨씬 늦게 정착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오늘날 당연하게 여기는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의 구분은 길게 잡아도 200~300년 남짓의 근대적 발명품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짧은 역사가 오히려 오페라 무대의 상상력을 폭발적으로 자극했다. 지금은 두 성부가 극적 긴장과 감정의 무게를 나누어 맡으며 각자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이 음반에 담긴 슈만과 브람스 등의 이중창은 특별하다. 마치 모차르트가 새로운 악기인 클라리넷을 위해 곡을 썼던 것처럼, 신선한 감각들이 느껴진다. 성악의 표현 영역이 넓어지던 흐름 속에서 두 목소리가 교차하며 빚어내는 색채는 작곡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단순한 두 성부의 결합을 넘어, 낭만주의 작곡가들이 인간의 목소리를 얼마나 깊이 탐구했는지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화가가 두 색을 섞어 새로운 빛깔을 발견하듯, 두 여성 성부는 함께 미묘한 감정의 층위를 쌓아 올린다. 오페라의 장대한 무대도 좋고, 다채로운 편성이 가득한 음반도 좋지만,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조합만 가득 담긴 음악을 듣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순간 나에게 완벽한 해답이 되어준 것이 바로 ECHOES라는 음반이다.
사실 이 음반도 모든 곡이 다 좋다. 화려함과 깊이를 겸비한 두 목소리와 사려 깊은 피아노 한 대의 조합만으로도 이미 황홀하다. 가장 좋은 감상법은 그저 음반 전체를 하염없이 틀어놓는 것이다. 곡마다 다른 매력이 있어 듣는 사람마다 마음에 와닿는 곡이 다를 것이다. 나에게는 마지막을 장식하는 포레의 듀엣곡들이 특히 좋았다. 젊은 시절 빅토르 위고의 시에 곡을 붙인 작품번호 10은 청춘의 신선함이 빛나고, 후기 양식의 세련됨이 드러나는 작품번호 72 "황금빛 눈물"이라는 곡은 성숙한 깊이가 돋보인다. 조금 더 익숙한 아름다움을 찾는다면 슈만과 브람스의 음악이 좋다. 하나같이 밝고 따뜻한 사랑의 정서가 흐른다. 이 외에도 쇼송, 보니스, 생상스, 구노의 곡들이 실려 있는데, 독특한 화성 속에서 두 목소리가 꿀처럼 흐른다.
이 음반의 주역인 소프라노 카타리나 콘라디, 메조소프라노 카트리오나 모리슨, 피아니스트 아미엘 부샤케비츠는 세계적인 스타로 손꼽히는 이름은 아니다. 그러나 세 사람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이 ECHOES는 그 어떤 명반 못지않게 아름답고 빛난다. 그래서 음반의 제목이 메아리(echoes) 같다. 서로를 살려주고 존중하는 앙상블 속에서 음악은 더욱 깊어지고, 그 울림은 듣는 이들에게 오래도록 행복을 선물한다. 어쩌면 이런 순간이야말로 연주자의 가장 큰 행복이자, 음악이 지닌 가장 소중한 가치가 아닐까.
Essential Track | 4번 트랙 (Schumann: Mädchenlieder, Op. 103: No. 2, Frühlingslied)
"양떼와 소들은 서둘러 푸른 초원으로 달려가고, 노인은 평온 속에서 아이들의 놀이를 지켜본다." (마지막 절의 가사)
불과 1분 남짓한 러닝타임에 3절의 가사와 슈만이 포착한 감정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단순한 선율과 목소리에서 동화 속 이야기와 봄날의 따뜻한 풍경이 그려지는 마법 같은 곡이다.
https://youtu.be/9CYhEMseL2I?si=d6fHFfLH9xgK4tRT
글 안일구, 사진 김신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