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하기 싫다니까?

겸손이 아니라 진짜 하기 싫다고

by 달하

누군가 회사에서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지속되는 프로젝트와 쌓여가는 업무에 너무나 지쳐 보인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몰래 이직 준비를 하고 있노라면 어떻게 또 귀신같이 눈치채고 작업을 시작한다. 최상위 결정권자는 그렇게 작업을 마치고 이야기한다. 팀장이라도 달아줘야겠다고.


팀장이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줄 아나? 아니 막말로 벼슬은 막대한 부와 여유라도 느리지, 이건 뭐 팀장 되면 바로 어떻게 구워삶아 부려먹을지부터 생각하는데 솔직히 그거, 하고 싶겠나?


팀장 하기 싫어요.


이 말을 듣는 사람들 중 꽤 많은 비율은 '거짓말'이라는 생각을 할 거다. 사실은 좋으면서 겸손한 척하는 것이 아니냐고, 괜히 낯간지러우니 팀장 하기 싫다고 징징거리는 거라고. 성장욕구가 있는 인간이라면 리더가 되는 게 싫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팀장이 되면 연봉도 더 주고 권한도 생기는데 싫을 이유가 있겠냐고.


그리고 일부는 가볍게 건넨다. 그렇게 하기 싫으면 관두면 되지 않냐고 묻는다. 차라리 회사를 때려치우는 게 쉽지, 그렇게 당장 때려치울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하고 있다고 대답하면 "거봐~ 그럼 그냥 하고 싶은 거야"라고 한다. 이 무슨... 이쯤 되면 그냥 대화를 관두는 것이 현명하다. 더 이상 말이 통할 리가 없다.






그렇게 팀장 하기 싫은 사람이 바로 여기 있다. "저는 아직 팀장을 할만한 역량이 없어요."가 아니라, 하기 싫다는 거다. 왜냐고 묻는다면 아래 정도 이유를 들을 수 있겠다.



이유 1. 부담

팀장 즉, 리더가 되면 일단 '부담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위로 아래로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뭐든 다 알고 있어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 가족도 아닌데 가족만큼이나 신경 써야 되는 부담감 등.. 생각만으로도 힘든 부담감이 밀려들어온다. 부담감이 독이 되는 사람의 성향, 그게 안타깝게도 나다.


이유 2. 책임

실무를 할 때는 나만 일을 잘 해내면 됐다. 협업을 하면서도 내 능력껏 일을 해내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팀장이 되는 순간, 실무와는 다른 사명을 갖고 일해야 한다. '팀'을 대표해서 움직여야 한다. 뭘 하든 개인의 성과보다 '팀'을 위해 성과를 내야 한다. 아니, 나 하나 먹고사는 것도 힘든데 이 사람들까지 나보고 책임지라고?


이유 3. 과업

회사는 이익 추구의 단체다. 사람이 들어오면 일도 들어오는 게 당연한 이치다. 팀장은 그동안의 나의 일을 내려놓고 새로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생긴 팀원만큼 일이 더 주어지는 것이다. 안 그래도 죽기 직전까지 겨우 일을 해내 왔는데 더 많은 일이 내 손에 쥐어진다. 내 일도 버거웠는데, 다른 사람들 일까지 해내야 한다면 내 삶이 있긴 할까? 싶다.


이유 4. 코스프레

나를 신뢰하는 상사와 나를 믿고 따라와 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엄청난 가면을 벗었다 끼웠다 해야 한다. 꼭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겠지만 '팀'을 위해 할 말을 꾹 참아내야 하는 순간들이 안 봐도 비디오다. 코너 속의 코너 같은 느낌으로 사회생활 속의 더 깊은 사회생활이 있는 기분이랄까. 아, 굉장히 피곤하다.






이 밖에도 많은 이유들이 있다. 그럼에도 납득이 안된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그러나 팀장이 하기 싫은 이유는 내게 매우 충분했고 실제로 여러 번의 거절이 있었다. 왜, 내가 내 회사도 아닌데 팀장까지 해가면서 나의 소중한 젊음을 소진해야 하는가. 그저 주어진 바 일 열심히 해서 돈 잘 버는 사원이 되는 것이 꿈인데 말이다.


그렇게 여러 번의 거절 끝에, 결국 받아들이게 된 이유는 두 가지 이유였다. (믿지 말았어야 했어..)



1. 신뢰

뻔하고 진부하고 재미없겠지만, 나의 상사를 신뢰했다. 회사생활 12년간 처음으로 믿을만한 리더와 일을 하고 있다. 보통 나의 팀장들은 불통의 아이콘이었는데 지금의 상사는 건강한 충돌이 가능한 리더였다. 그런 리더가 내게 팀장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제안한 것은 그만큼 내가 어느 위치에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 호의를 무시하고 싶지 않았다.


무튼 그와 함께라면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에게 지금처럼 하던 대로 하면 된다고, 당신은 나를 믿는다는 진심에 마음이 움직였다. - 이 말은 꼬시기 위한 거짓이었던 게 아닐까 - 마음의 결정을 한 뒤 집에 공유했더니 동네방네 잔치가 열렸다. 팀장이라는 게 그렇게 좋은 거였나 싶을 만큼 가족들의 미소는 떠나지 않았다. 그래, 이렇게 된 거 정말 잘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2. 발언권

회사를 다니다 보면 뻔히 실패가 보이는 멍청이의 헛소리가 정답처럼 여겨지는 순간들을 맞이한다. 회사에서 힘이 센 부서일 수도 있고 낙하산 한 명의 의견일 수도 있다. 대표가 하는 말이야 회사가 대표 거니까 그렇다 쳐도, 얼굴도 뇌도 말라비틀어진 멸치 같은 꼰대 나으리가 두 손을 모아 비벼가며 대표를 설득하는 역겨운 모습을 보면 그렇게 화딱지 나는 순간이 없다.


상사가 내게 팀장을 제안했을 때 내가 팀장을 잘 해내면 목소리에 힘이 생길 것이라는 이야기가 솔깃했다. 그동안 힘이 없어서, 발언권이 없어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팀장이 되어서 마음껏 펼치라 했다. - 이것도 거짓 - 그간 불합리하고 답답했던 일들을 시원하게 하나씩 풀어가보자 했다. 위계 조직에 몸담고 있다면 팀장의 말이 꽤 힘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당시 그 말은 정말이지 내가 회사를 바꿀 수도 있겠다는 허상을 갖게 했다.






마음이야 어찌 됐든 사회생활 12년 차, 예상보다 빠른 나이에 팀장이 되어버렸다. 팀장 된 첫날부터 '팀장님'이라 부르며 반짝이는 눈으로 결정을 기다리는 팀원들이 생겼고 팀장이 이것도 모르나 하는 타 부서의 한심한 눈빛들이 발사됐다. 그렇게 무작정 집히는 대로 리더십 책을 읽어나갔지만 너무 광활한 리더십 세계를 전부 이해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렇게 처음 팀장이 된 나는 지난 시간 수없이 길을 잃고 방황했다. 많은 팀장들이 그렇게 길을 잃고 아까운 시간을 낭비한다. 나와 같은 처지(?)가 된 팀장들에게 너무 완전한 리더십을 갖추려 애쓰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회사는 생각보다 그렇게 대단하고 멋진 리더십을 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끔은 촌스럽고 멍청한 팀장이 멋진 리더십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나는 회사에 어울리는 이 리더십을 '생존 리더십'이라 칭한다.


팀장이 정말 하기 싫은 사람은 분명 있다. 그리고 팀장이 되기 싫은 것은 이상한 게 아니다. 누군가는 꼭 하고 싶은 위치일 수 있지만 누군가는 그 역할이 삶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 실제로 주변에는 이런 부담감으로 인해 우울증까지 가서야 팀장을 포기한 사람이 있다. 그만큼 팀장은 충분히 하기 싫을 수 있는 일이다.


하기 싫든 좋든 회사에서 팀장이 됐다면 리더십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공부로 될 것이 아니다. 개인의 성장을 위한 리더십이라면 자기 계발서나 이론을 익혀도 좋겠지만 회사의 리더십은 얘기가 다르다. 카리스마 넘치고 진중하고 진지한 리더십 이야기는 내게 없다. 그런 것을 기대하려거든 이 글을 그만 읽는 것이 좋겠다. 때로는 멍청하게 느껴질 만큼 철없고 저래도 되나 싶을 만큼 권위가 없다. 이 사람은 진짜 팀장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걱정은 내려두어도 좋다. 리더십 몰라도 팀장 역할을 충분히 '잘'해낼 수 있고 실제로 나는 회사에서 가장 큰 팀을 이끌고 있으며 어쩌면 나는 팀장이 체질인가 싶을 정도로 평가가 좋다. 그리고 올해, 커리어 12년 역사상 가장 높은 연봉 인상률을 기록했다. 팀장이 하기 싫은 마음이 드는 것, 전혀 이상하지 않다. 당연하다. 그러나 이왕 맡은 바 함께 잘 해내 보자. 생존 리더십은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오로지 당신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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