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의 필요성을 느끼다.
지금까지 리더가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했다면 이제 내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볼까 한다. 나는 일잘러도 그렇다고 일못러도 아니다. '어쩌다 보니 팀장'이 된 케이스다. 일을 딱히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 살지는 않았지만 일을 꽤 잘한다고 소문난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어쩌다 상사의 눈에 띄어 팀장이 됐고 당시의 기억으로는 매우 당혹스럽고 버거웠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팀장까지 하라니... 앞이 캄캄했다.
그렇게 팀장이 된 첫날, 본래 내 팀장이었던 분께 상담을 요청했다. 뭐를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그냥 하던 대로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냐고. 그녀는 친절하게 별거 없다고 그냥 지금처럼 하다 보면 답이 보일 거라며 나를 다독여주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다독임은 참으로 따뜻한 엄마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팀장의 역할은 잠시 뒤로하고 내 할 일들을 해나가던 어느 날, 상사가 찾아와 팀에 사람을 더 뽑아야 하니 면접을 봐야 한다고 한다.
팀장이 된지도 얼마 안 됐는데 면접을 보라고? 내가 면접자가 된 적은 많았어도 면접관이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아무런 준비도 못하고 첫 면접을 들어갔다. 긴장하지 않은 척 프로답게 면접을 보고 싶었지만 면접자와 눈도 못 마주치고 손도 발도 덜덜 떨렸다. 그렇게 내가 함께 일해야 하는 사람을 내 손으로 뽑는 일을 해야 했다. 팀장 되고 한 달만의 일이었다.
그 밖에도 '팀장님'이라 부르는 어색한 회사의 동료들, '팀장 미팅'이라는 팀장들만 있는 수두룩한 자리에 참석자로 들어가 있는 너무도 낯선 상황들. 팀장이 됨과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회사생활이 열린 기분이었다. 무서웠다. 확실히 나에게는 '리더 깜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팀원 한 명이 고충을 털어놓는다.
팀장님, 면담 신청 가능할까요?
긴장하지 않는 척, 팀장답게 행동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면담을 하는데 이기주의로 가득한 개발자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얘기해도 먹히질 않는다고, 당장 다음 주에는 결정을 해서 일정을 잡아야 되는데 일의 진척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 개발자는 실력으로 인정받는 개발자였고, 개발팀장은 아니었지만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최상위 결정권자로부터 무한 신뢰를 받는 개발자였다.
팀원에게는 내가 일을 해결해보겠다고 하고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을 시켰다. 그렇게 돌려보내고 자리로 왔는데 너무 막막했다. '어떡하지.. 저 개발자를 건드렸다간 상사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일 텐데..' 실무를 했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돌진했을 것이다. 그러나 팀장이 되고 나니까 별개 다 거슬렸다. 혹시나 팀원이 일러바친 것 같은 결과가 될까 봐, 그로 인해 개발자가 상사에게 나와 팀원 모두를 싸잡아서 욕되게 할까 봐. 여러 고민 끝에, 손에 주먹을 불끈 쥐고 개발자를 찾아갔다.
나는 이 일이 되게 해야 하고 나의 팀원이 이 일을 해야 하는데 당신이 도와줘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개발자는 자신은 할 일이 많고 나의 논리 속에서는 자신이 나를 왜 도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콧방귀를 뀌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우선 그 자리에서 나와 화를 삭였다. '그냥 시원하게 지랄을 할까, 울어버릴까. 어떡하지?' 하던 찰나, 지나가던 상사에게 그 모습이 발각됐다.
상사는 나를 자신의 방으로 불렀고 내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이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며 개발자를 불러서 내 앞에서 혼줄을 냈다. 개발자는 나를 째려보고 나갔고, 나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상사는 내게 어려움에 직면하면 이야기하라고 자신이 하는 일이 그런 거라고, 나가보라고 하면서 한 마디를 추가로 건넸다.
앞으로 이런 일, 많을 거다. 리더답게 행동해
리더답게 행동하는 것.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정말 놀라울 만큼 유사한 상황들이 벌어졌다. 마치 다른 회사처럼 일하는 사업부, 뭐만 하면 프로세스와 R&R 따져가며 책임전가를 하려는 타 부서 등 수없이 싸우고 힘겹게 버텨야 했다. 그러다 해외 지사 출장까지 잡혔다. 아니, 지금 내부 챙기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해외까지 가라고? 실무를 했다면 멋지다 좋다 해외출장! 외쳤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미 버겁고 힘들기에 해외까지 가서 또 다른 낯선 환경을 얹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첫 해외 출장은 잡혔고 가서도 일은 멈출 생각을 안 했다. 애초에 물리적으로 먼 거리의 같은 회사 사람이라 그런지 내부인의 느낌도 덜하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프로세스를 잡고 업무를 정비해나갔다. 그렇게 출장 첫날, 해외지사 사람들과 회식을 거나하게 치렀다. 숙소로 들어와 상사와 한 잔을 더하자며 호기를 부렸다. 그리고는 지금 하는 모든 일들이 너무 힘들다고 울어버렸다. 그랬더니 상사는 내게 팀장이 그러면 되겠냐고 오히려 화를 내며 혼을 냈다. 그리고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게, 내가 팀장 안 한다고 했잖아요!
정말이지 너무도 팀장이 하기 싫었다. 당신이 나를 믿었기에, 나는 당신을 신뢰하기에 받아들였지만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더 잘해보려는 생각보다 버겁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주변에 있던 다른 팀장들은 나를 위로해주었고 그렇게 나의 첫 해외 출장은 지금도 '알콜쓰레기의 주정'으로 기억되고 있다.
본사로 돌아오고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이라도 그만두겠다고 할까. 나 하나 겨우겨우 살고 있다고, 이런 마음으로 팀원들도 좋을게 하나도 없다고 팀을 위해서 지금이라도 나를 팀장에서 내려오게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상사가 나를 불러 팀원을 하나 더 붙여준다. 아니, 지금 때려치우겠다고 하려는 마당에 팀원을 또 붙인다고? 엎친데 덮친 격, 회사 당장 관두겠다고 깽판을 쳤던 문제아를 붙여놨다.
문제아와 어색한 첫 대면식을 갖고 난 뒤 모든 상황이 버겁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그 문제아의 팀 합류 환영회식이 열렸다. 내 몸이 아작나기 직전이라 사실 크게 뭘 기대하고 회식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술이 들어가고 나니 저 녀석 처지도 좀 불쌍해 보였다. 스스로 원하지 않는 팀으로 발령 난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왜 그 깽판을 쳤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사람이 싫어져서요.
자세한 내막은 얘기하지 않았지만 들어보니 문제아는 나름대로 열심히 해보려고 노력한 것 같은데 그의 팀장은 말 그대로 왕 노릇을 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침없이 내려까고 제대로 된 근거나 논리 없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차라리 기계와 대화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그래서 자신은 더 이상 사람을 믿지 못하겠다고. 듣다 보니 이 녀석의 문제보다는 팀장의 문제가 더 커 보였다. 아차, 나도 얘 팀장이지?
그 회식이 있고 나서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나는 그 녀석에게 괜찮은 팀장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좋은 팀장이 될 수 있는 걸까. 그렇게 처음으로 진짜 '팀장'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불쌍한 녀석을 다시는 그런 생각으로 회사를 때려치우려 하지 않도록 지켜내 보겠다는 일말의 사명감 따위가 생겼다. 회사에서의 생존을 거부했던 문제아 덕분에 나는 회사에서 생존해보기로 결심하게 됐다.
그렇게 상사가 내게 바랐던 '진짜 리더답게 행동해보기'로 결심했다. 회사에서 진짜 팀장으로 살아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내가 좋게 기억되는 팀장들에게 있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래! 내게는 리더십이 필요했다. 백날 잘 쓰인 책 읽어봐야 손에 잡히지 않는 리더십 말고 진짜 지금 이 순간에 꼭 필요한, 회사의 생존을 위한 리더십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