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락교시대 03화

소녀의 기도

by 차쌤

3。소녀의 기도

- 바다르체프스카(Badarzewska)


동성상응 동기상구(동성상응 동기상구)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을 서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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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넘게 낳고 자라온 부산 기장을 떠나 한적하지만 사람 냄새 나는 풋풋한 시골을 찾아 2년을 헤맸다。전국에 안 가본 곳이 없다。하지만 여기나 저기나 다 같다는 생각에 정든 곳에서 말년을、 하며 귀촌을 포기하고 있을지 즈음이었다。아내와 늘 함께 다녔고 아내 역시 같은 생각이다。


“난 이제 지쳤어。”


동행하자며 손 내미는 봉길에게 아내 영임은 손사래를 를 쳤다。해서 이번엔 혼자 차를 몰고 낙동강을 따라 오르다 함양에서 서쪽으로 틀어 남원을지나 순창에 이르렀다。순창、 촌내나는 이름이 끌었다。왠지 오래 묵힌 신김치 같은 냄새가 풍겼다。냄새를 따라간 순창 읍내지만 부산의 여느 변두리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별로、하며 고개를 젓던 봉길은 '강천산과 구림' 이라 쓰인 이정표를 보았다。강천산은 여러 번 가 본 곳、구림? 순창과 구림、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차를 구림면으로 몰았다。예전엔 꽤 컸었을 동네、면소재지에 어엿한 사거리가 있고 동서남북 사방으로 나뉜 길은 짧지만 곧었다。면사무소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걸었다。거리엔 사람이 없다。빈 가게와 빈 사무실 뿐이다。그전에는 다 필요해서 생겼을 곳들이다。사람들이 다 빠져나가니 그 필요를 잃은 가게며 사무실들。면사무소로 돌아와 귀농귀촌 담당공무원을 만났다。귀농하면 얻을 혜택들을 늘어놓는다。시청、군청、면사무소마다 다 똑같은 말을 2년 넘게 들어왔다。


그건 말고 구림면만의? 산 좋고 물 맑고 공기 좋고 그래서 된장 고추장이 유명한。。。 새소리 물소리도 매일 듣다 보면 질릴 터、봉길은 한적하고 느긋하지만 사람소리가 나는 곳、사람 나눔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는 속마음을 내놓지 못하고、

“그래요? 감사합니다。” 하고 나왔다。

귀농귀촌 특혜란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금이나 정착보조금을 말한다。'내가 거지로 보였는갚네。' 그런 보조금 받아 귀농한 자들이 몇 년 안 돼 다 떠난다는 뉴스、또는 실제 경험자들의 말을 참으로 많이도 들었다。정말 시골이 좋아서。。。 그 좋아할 만한 시골은 없단 말인가? 배가 고팠고 사거리에 서서 둘러보니 치킨집이 보인다。허전한 마음、 대낮인데 맥주가 땡겼다。널널한 게 시간인데、하며 가보니 앉을 줄 곳이 없다。양념치킨과 맥주를 시켜 차로 갖고 왔다。보는 이 없고 차도 없는 한가한 거리에 앉아 치킨과 맥주를 펼쳤다。


“지나는 객인 듯 싶은디 어쩌자고 길바닥에서 이러컴 있다냐?”


커피 세 잔을 들고 있던 양순 씨가 봉길 옆에 덥석 앉자 봉길은 잔을 내밀었고 。。。 든 나이만큼 순순해진 두 사람은 금세 마음을 열 만큼 친해졌다。봉길이 여기 온 사정을 듣는다。


“여기 잘 온 것 같은디。아내를 위해서라면 더욱。”


양수는 봉길을 <브람스의 짝사랑>으로 안내했다。


“어데 가고 없다냐? 그림 그려 주러 갔는감?”


봉길을 평상에 주저앉히며、

“마저 드시고 계셔。내가 후떡커니 다녀올 데가 있응게.”


식당에서 나와 유나를 만난 양순이 호들갑이다。


“다 먹었으면 데이트 고만혀고 어여 따라와 봐。”


양순 씨는 브람스로 가는 길에 치킨 한 마리와 맥주 1.5리터도 샀다。


“오늘、뭔 일 있데요?”


커피만 사 가더니 치킨에 맥주라니。


“그럴 만한 일이 있제。니도 좋고 우리도 좋고。니、좋지?”


“암만요。좋기만 헌답니까。돈도 벌고 사람이 꿰니 더 좋구먼요。”


평상에서 주거니 받거니 한 것은 술만이 아니다。


위암에 걸려 수술하고 항암 치료하며 5년、죽을 고비를 넘긴 영임、봉길의 아내는 완치됐으니 10년은 더 살 거란 의사의 말을 듣고 더 착잡했다。여든이나 살라나? 평균수명으로 가늠은 해 봤지만 죽을 일에 대해서 깊이 생각 않고 살다가 암에 걸렸고 완치는 됐다고는 하지만 10년이란 시한부 인생의 나날은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내야 하는 두려움의 연속이었다。완치가 마냥 기쁘지 않은 건、재발의 위험이 있으니 6개월마다 검사하러 병원을 드나들어야 했기 때문이다。시한부란 두려움에 갇힌 감옥이다。10년 후 그때 영임의 나이는 65살이다。열다섯 살이 많은 봉길과 재혼한 때도 10년 전이다。영임 나이 45살 때였다。암 치료 기간 퇴원하면 오직 <소녀의 기도 >만 쳤다。어려서 배웠던 피아노는 자전거가 그렇듯이 30년이 더 지나도 손가락이 기억하고 있었다。서툴지만 그럭저럭 칠 수 있었고 이 곡을 치는 동안 두려움과 무서움을 잠시나마 떨쳐 낼 수 있었다。봉길은 피아노를 마친 아내、 영임을 꼭 안았다。


“소녀의 기도가 내 짝을 살리고 있네。”


오로지 소녀의 기도만 치는 영임의 4분짜리 영상을 찍어 유튜브 <소녀의 기도 >를 개설해 올렸다。내일 똑같은 노래 <소녀의 기도>만。봉길은 생각했다。영상을 바꿔 보자。드레스를 사 줬고 목걸이도 샀고 귀걸이도。그리고 브로치도 사서 드레스들마다 달아줬다。내가 고작 해 줄 수 있는 건 이것뿐。매일 똑같은 곡을 치는、늘 똑같은 여인。그러나 드레스가 달랐고 바뀐 드레스로라도 아내가 두려움을 떨치길 바랐다。듣는 봉길의 귀부터 다르게 들려왔다。드레스 때문일 수 있고 치는 영임이나 듣는 봉길의 마음이 때론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그 하나、한결같은 마음 사랑이다。


교장이었던 봉길과 역사 선생이었던 영임이 다시 만난 건 봉길이 정년을 10년 앞두고 퇴직한 후 백수로 쉬고 있던 때였다。고등학교 재직 때와 달라진게 있었다。둘 다 혼자가 됐다는 것。사별하고 이혼하고。그러나 교장과 선생은 교사와 제자와 같은、더구나 나이 차도 많다。가까워질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이것도 우연인지、영임이 암에 걸렸고 이를 안 봉길이 그녀를 극진히 돌봐줬다。영임의 가족은 모두 부산에서 많이 떨어진 대전과 수원에 살았다。봉길의 눈에 영임은 마냥 소녀였다。항암 치료로 머리가 빠진 영임을 위해 산 예쁜 털모자를 씌워주며 <소녀의 기도 >를 틀어 줬다。털모자를 쓴、야윈 영임이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숙이는데 쑥스러워하는 소녀、꼭 그대로였다。퇴원하는 날、봉길이 청혼을 했고 “백년이 아니라 10년 해로인데도요?” 부부가 됐다。


“아시죠?”


유나가 물었지만 <소녀의 기도 >만 알뿐 다들 몰랐다。작곡가는 바다르체프스카다。이 곡 하나만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폴란드의 여류 작곡가는 이 곡 <소녀의 기도 >를 딸을 위해 그녀 나이 18살에 작곡했다。자식을 다섯 낳았고 서른 즈음 일찍 세상을 떠났다。모차르트의 누나나 멘델스존의 누나、그리고 슈만의 아내 클라라가 당시 유명한 여류음악가이지만 후대에 다 잊혀졌다。하지만 바다르체프스카는 운이 좋았다。 버려진 악보를 음악잡지 편집장이 발견했고 러시아 문호 안톤 체홉이 그의 희곡 <세 자매 >에서 <소녀의 기도>를 소개했다。


“예。힘든 현실을 피해 모스크바로 가고 싶어 했던 세 자매의 막내가 바로 바다르체프스카였다지요?”


내가 아는 체하며 유나의 말에 덧붙이니 양순 씨 왈、

“도대체 어떤 노랜디 그리들 야단이여? 어디 들어 보장께. 한 여자를 살려냈던 그 소녀의 기도、교회 노래여? 난 불교 신잔디 뭐 대순가。틀어보랑께 어서.”


틀자마자 양순 씨가 손바닥을 치며 야단을 떤다。


“이거、전주 사는 내 손녀가 치는 건디 참말로。일찌감치 알고 있었던 노래구먼。”

하며 봉길의 손을 잡는다。


“소녀 아내는 내팽개치고 왜 혼자 왔디야?”


백발의 봉길이 일어서더니 꾸벅 배꼽 인사를 한다。우리 중 가장 나이 많은 사내다。

“결정했다 아닙니꺼。여기서 살기로 했어예."


“예? 어디서?”


봐뒀단다。하지만 가능할까? 봉길의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토로한다。

“도와주신다면야 불가능할 것 같진 않은데。。。”


면사무소 앞 사거리 코너의 2층짜리 큰 건물。


“1층도 셔터가 내려져 있고 2층은 건축 사무실로 썼던 것 같은데 다 창문을 열어 놓고 빈 채로 오래된 듯한데예。”


그 건물 코너를 쓰고 싶다。월세를 낼 것이다。


“그리고예。선생님이 기도하는 소녀를 벽에 그려 주신다면。。。 그려 주셔야 합니데이。”

아니라 1、 2층 코너에 기도하는 소녀、소녀의 기도를 그려 달란다。

양순 씨가 일사천리로 밀어붙였다。


“어제도 놀리고 내일도 놀려 둘 건물、그리두면 더 폐허가 될 뿐이제。월세도 준다지 안혀。”


다 완성되면 영임을 부산에서 데려올 거라며 봉길은 그 큰 키의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꽃가게면 더 좋겠지예。소녀의 기도를 언제라도 들을 수 있는 꽃 가게 말입니뎌。”


“이 시골에서 누가 꽃을 산다고?”


“내 뭐、공짜로 주지예。연금도 두둑히 봤는데 이쯤이야。。。 실은 아내가 꽃을 무지 좋아한다 아닙니꺼。”


면사무소 앞 사거리엔 매일 등교、출근 시간 아침 9시와 정오 12시、그리고 눈이 감겨오는 지루해질만 오후 3시와 퇴근 시간 오후 6시에 <소녀의 기도 >가 어김없이 들린다。물론 영임이 하루 네 번 직접 치는 생음악、 소녀의 기도이다。소녀의 기도가 들리는 거리엔 이후 꽃길도 들어섰다。구림면에서 화단을 만들고 꽃은 봉길 영인 부부가 맡았다。심고 다듬고 가꾸는 일은 자발적 자원봉사로 주민들이 나섰다。당연히 거리가 깨끗해질 수밖에。소녀의 기도가 들려오면 구림면 사거리엔 그 피아노 소리를 귀로 더듬어 찾아든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오후 3시쯤엔 하굣길의 학생들도 가는 발길을 멈추고 소녀의 기도를 듣는다。


“하루 네 번、관객이 끊이지 않는 연주회。。。 여기 말고 다른 데 있으면 말해 보랑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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