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락교시대 04화

4분 33초

by 차쌤

4。 4분 33초ㅡ존 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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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지기고、 숙사지

(부자지기고、숙사지)

스스로 그 까닭을 모르니、이를 깊이 새겨야 한다。(허균)



면에서 3~4km 더 깊숙한 마을 율리에서 브람스만 들으러 오는 젊은 부부가 있다。광주에서 살다가 귀농한 30대 후반의 부부로 딸이 하나 있다。아내는 베트남인이다。생김이 약간 다른 딸은 그 하나만으로도 따돌림을 받아 왔다。날도 글도 공부도 외모도 남 못지 않은데도 불구하고。광주도 다르지 않았다。학살의 몸살을 앓았던 광주는 다를 줄 알았다。피해서 더 시골로 들어왔건만 여기 또한 다르지 않았다。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세상에서 결혼해서 애 낳고 살면 이 하나만으로도 칭찬 받아 마땅하지 않은가。하지만 딸을 볼 때마다 더 낳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다。사실 브람스를 들으러 오는 게 아니다。담을 다 채운 큰 그림의 서양 사람에게 딸이 호기심을 가졌고 그 브람스를 보고 따라서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딸이 브람스를 그리고 있는 동안 부부도 듣다 보니 브람스를 좋아하게 됐다。


슈퍼나 치킨카페에서 음료수를 사 와서 마시는 게 미안했던지 남편 강락은 자그마한 상자를 만들어 왔다。앙증맞은 나무 상자에는 '작은 마음、 큰 사랑'이라 적혀 있다。자발적인 카페이용료 통이다。강락 부부는 쇼팽에도 갔고 소녀의 기도에도 갔다。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예쁜 나무 상자도 만들어 선물했다。


“진작에 왜 이런 걸 생각 못 했을까이。”


양순 씨가、“공짜심보란 게 있어。그저 얻어먹기만 하는 거 말여。버릇되면 사람 완전 버려 뿌리지。사정 힘등께 거리로 나와 앉았겠지만。。。노숙자 말여。지난번 서울역에서 보니 멀쩡한 사람들이 왜 그러고 있는지 참말로。여기 시골엔 일할 사람이 모자라는디。일하면 하루 10만 원은 족히 벌거든。츳츳。한 번 사는 인생、왜 손 내밀고 빌어먹고 사는지 참말로。”


나는 취미로 끄적이던 그림이지만 강락의 딸、민주의 그림 선생이 돼 주고 있다。민주라는 이름도 광주에서 태어났기에 붙인 이름이다。어느 날、'나도 저렇게 피아노를 잘 칠 수 있으면 좋겠다。' 민주의 혼잣말을 엿듣고 <소녀의 기도 >로 달려갔다。민주는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지만 전혀 늘지않는다 했다。


“소질이 없는게 아니라。。。”


광주에서다。음악 시간에 하모니카를 배우다가 놀림을 받았다。누구든 처음부터 잘 할 수 없다。그러나 민주는 그 처음도 무시됐다。'니까짓 게 뭘 할 수 있겠어。'

강락의 아내 현주(한국 이름으로 바꿨다)는 말한다。


“어떤 악기를 보든 두려워해요。”


<쇼팽과 상드 >의 유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저녁을 일찍 먹고 구림초등학교 운동장을 자전거로 돌고 있을 때 유나를 만났다。자전거의 두 바퀴로 보조를 맞추며 이야기를 나눴다。


“쇼팽의 프렐류드를 다시 치기 시작했어요”


이 곡은 쇼팽이 상드와 함께 산 마요르카 섬에서 작곡했다。쇼팽은 그 섬을 '악마의 땅'이라고 부를만큼 그 섬을 저주했다。상드의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병이 더 악화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 쳤거든요。근데 민주를 볼 때마다 내 마음을 바꾸게 되더라고예。쇼팽에게는 그런 섬이었지만 그 아름다운 프렐류드를 후세에 남겼잖아요。곡들이 다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고 더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곡을 칠 때마다 쇼팽이 그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나아가 삶의 애착도 느낄 수 있었거든요。”


“축하합니다。”

유나가 이런 말을 하며 활짝 웃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인데예 。。。”

또 이장인 양순 씨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마을 한 끝에 창고 같은 건물이 비어 있었고 그곳을 활용할 수 있을지 상의했다。주인은 다 서울로 이사 갔고 십수 년 비운 채로 방치됐지만 가끔 물건들을 쌓아 두는 사람들이 있었다。일사천리로 일처리해내는 양순을 보면 똑순이어야 딱 맞을 그런 초로의 여인、그녀는 주민들을 소집했고 빈집의 재활용에 대해 열변을 토해냈다。“정치를 했어야 할 여자가 고작 이장을 하고 있으니。” 누군가의 이 말을 양순이 들었다。


“내가 어째서? 이장이 어때서? 해낸 일로 판단혀면 내가 대통령만 못 하남?”

유나의 요구는 관철됐다。긴 나무판을 구해왔고 철물점에서 철사줄도 사 왔다。

“악기를 만들어 보려고요。”

수학자이자 철학자로 알고 있는 피타고라스는 줄 하나를 반으로 줄여 튕기면 한 옥타브가 올라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음을 수로 나타낸 첫 철학자였다。이것을 만들자는 얘기였다。민주를 위해서였다。

“그럼 목공 선수인 민주 아빠가 해야겄네。”

“딸을 위해서、베리 굳!”


그 창고 안에 버려진 갖은 것들을 모았다。크기가 다양한 페인트통들과 보일러 등유를 넣어 썼던 큰 드럼통、나무 막대기들까지。지금은 안 쓰는 찌그러진 양은그릇 뚜껑이나 지금 보면 유치한、아마 요강으로 쓰였을 그림이 박힌 도자기 그릇、그리고 다 마시고 버려진 맥주캔 등등。이것들 한 데 모아 정리해 놓으니 오케스트라가 되었다。나는 솥뚜껑 두 개를 부딪히며 환호했다。심볼즈가 된 솥뚜껑에 맞춰 봉길이 한쪽이 터진 장고를 세워 두드리니 어엿한 팀파니가 된다。


“다 됐는데 여기를 뭐라고 부르지?”


양순 씨 남편 고달범은 늘 불평이 많다。그러자니 삐딱했다。


“잡동사니가 딱이네。안 그려? 잡동사니라는 작곡가는 없는가? 모짜렐라라는 치즈도 작곡가라며? 자네가 그렸잖은가?”


양순 씨가 최근 클래식에 대해 남편한테 아는 척을 하나 보다。


“내가 은제 모짜렐라라 했는감。모차르트! 어디가 모자라는 사람맨크럼 꼭 티를 낸당께。이 양반이 이제 귀까지 어떻게 된 거여?”


달범이 물러서지 않는다。


“모짜렐라나 모차르트나。거 알아? 쇼팽도 그려。집에서 해 먹던 빵을 쇼빵이라고 하지 않았는가。알지? 그 쇼빵!”


그래 놓고도 달범은、

“소녀의 기도는 참 마음에 들더구먼。바다。。。르、노래 만든 사람이지? 이름도 좋고、이 산속 마을에서 바다 보러 가기도 힘든디、들어도 들어도 좋당께。그 소녀의 기도 말여。자네도 좀 그 그림의 소녀처럼 하늘 같은 남편헌티 좀 고분고분 얌전혀면 더 예쁘겠구먼。”


한바탕 웃고 나서 짜장면과 짬뽕을 시켜 먹었다。유나가 불쑥 박수를 친다。

“4분 33초、이거 딱이네요!”


미국의 작곡가 존 케이지가 무대에 놓인 피아노 의자에 연주는 않고 앉아만 있던 시간、4분 33초。무엇을 치려고? 그러나 치진 않고。。。 관객은 웅성거리기 시작。기다림의 침묵 그리고 침묵의 반응하는 소음、그 사이를 매운 긴장감은 악보의 쉼표와도 같았다。우연 또는 불확정성도 음악이라 부르게 했던 그 4분 33초。


“별 게 다。。。”


그러나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그 창고를 만든 취지와 딱 맞아서 더 좋다。”


우리는 이름과 함께 이곳에서의 규칙 하나도 정했다。이곳을 들어서면 우선 '4분 33초 가만히 있기'

가장 반긴 건 늘 삐딱하기만 했던 달범이다。


“모래시계를 어디에서 봤는디。찾아보면 어딘가 있을겨。아마도 그 모래가 다 빠져 내려오려면 얼추 4분인가 5분인가 그럴껴。이건 내가 4분 33초 오케스트라에 기증합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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