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반드시 현실의 표상일 필요는 없다。
ㅡ 조르주 상드
사람에게도 물건에도 쓸모없다는 말을 붙인다。쓰임이 되지 않는 것일지인데、사람과 달리 물건에는 그 쓰임이 분명 있는데도 버려지는 경우가 있다。하기야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저녁을 일찍 해 먹고 안이슥해질 무렵 동네 마실 산책을 꼭 하는데、하다가 이장 아주머니를 만났다。“이장님”이라고 불리는 걸 싫어한다며、
“이장을 하고 싶어 하는 감。할 사람이 없응께 하는 수밖에。”
사람이 없다。쓰려 해도 쓸 사람이 없다。
“어어、저저。。。”
이리 부르려니 부르는 내가 더 민망하다。
“그러지 말고 내 이름으로 불러 줘。이름 잃고 산지 어언。。。”
손가락을 꼽는다。
“여기로 시집와서부턴 께。”
하루에 꼭 한 번은 <브람스의 짝사랑 >을 찾아왔다。매번 커피를 사 갖고 와서 내게 내밀곤 한다。
“카페가 별 건겨?”
카페 갔단다。커피 안 파는 카페로 세계에서 유일한 곳이 여기라며 엄지척으로 치켜세운다。
“똑순이한테 양순이가 뭐여? 아버지도 참。안 그려?”
제발 부탁한다며 '양순 씨'라고 불러 달란다。어엿한 카페를 드나드는데 이장님 뭐고 또 무슨 댁이 뭐냔다。이장 전엔 운봉 댁으로 불렸다。남원 운봉에서 시집 온 앳된 처녀는 초로의 노인이 돼 있다。
“남들이。。。”
또 남의 이목、 타인 의식을 하고 만다。
“서른 살 어린 외관 연하남하고 났다고 할 껴 봐서? 소문나라고 혀。내가 바라던 바니껜。을마나 영광이여。애인이 아닌 것은 내가 삭히면 되니께。슬프겄지만。”
구림엔 있을 건 다 있다。슈퍼、 구멍가게、 미장원、 중국집 그리고 카페까지。치킨을 같이 파는 카페에는 앉을 곳은 없지만。
“이렇게 손으로 먹는 걸 들고 다니는 걸 테이크아웃이라 한다며?”
양순 씨는 꼭 그 집 커피를 사 왔다。난 아메리카노로、그녀는 달달한 카페라테를 들고 브람스에로 왔다。
구림에 와서 짐 풀고 일주일쯤 지나 차를 몰고 서울로 올라갔다。
“시골이라 더 차가 필요할 것이다。”
고추장과 된장을 내놓았다。한참을 바라보던 아버지가、
“그 산골짝에 해 먹을 것 하나 없던 곳에도 이런 유명한 것이 생겼으니、살 땐 몰랐지만 떠나니 알게 되었구나。”
그날도 어머니는 집에 없었다。작은누나 집에서 산다。외손주들을 봐 주러 간 거라 했지만 아버지 곁을 떠나고자 함을 누나도 그리고 나도 잘한다。이혼은 할 수 없지만 더는 같이 못 살겠다고 했다。
“여기 서울에선 차가 필요 없다。”
다시 차를 내가 쓰라 했지만、
“시골에선 더 필요 없어요。”
차를 두고 구림으로 내려오기 전에 누나 집에 들려 역시 고추장과 된장을 내놨다。여동생 것까지。
“이건 파는 장이 아니야。직접 담으신 거래。”
왜 구림에 갔니? 물었지만 그저 웃기만 했다。나도 모르는데 대답할 수 없었다。이것도 우연이라고 해 두자。
양순 씨는 독서하러 작은 도서관과 운동하러 초등학교 운동장에 매일 가는 나에게 자전거를 하나 구해 줬다。
“다 쓸 만한 건디。”
쓸모 있어도 버려진 자전거를 쓰라고 주면서 혀를 츳츳찬다。
“이제야 제 몫을 하고 살겠구먼。”
자전거를 두고 하는 말이다。닦아주니 꽤 멀쩡한 자전거를 타고 작은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빌려 오는 길에 한 여성이 집 담벼락의 브람스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그녀 옆에도 자전거가 있다。그녀가 타고 왔을 자전거를 보며 목인사를 하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브람스 앞에서 사진을 찍자 가는 사람들을 몇 명 봤던 터라 、시골에 특이하니깐、기념으로 한 컷、그리고 잊혀질 기념들이려니。그 여자도 이럴 줄 알았다。다음 날 양순 씨가 어제 본 그녀와 함께 나를 찾아왔다。어떻게 이런 집에 와서 저런 그림을 그려 놓고。。。 나에 대해、아니 <브람스의 짝사랑 >에 대해 얼추 들었나 보다。
“저 면사무소 앞쪽 빈집 하나를 골라 줬당께。자네만치럼。”
나한테 그랬듯이 그녀에게도 빈집을 찾아 줬다는 얘기다。내가 되레 더 질문한다。왜? 이런 곳에? 그러나 속으로만이다。여자 나이를 난 전혀 가늠할 수는 없지만 30대 초반 여성의 가녀린 몸매가 곁에 끼고 있는 자전거 쪽으로 시선을 끌게 만든다。이 동네 사람은 아니다。그럼 순창읍내에서 왔나? 이장、아니 양순 씨는 눈치가 빠르다。벌써 나를 헤아린 듯、
“저 아래 진주에서 왔다는 거여. 이 자전거를 몰고 말여。가능해 보여?”
가능해 보여? 저 마른 몸매로 대단하단 칭찬이었다。
“예。 섬진강 따라왔어요。길이 아주 좋던데요。”
이러는 거 안 되는 줄 알면서 나는 그녀를 톺아봤다。나도 꼭 달려 보고 싶었던 섬진강 자전거길이지만 자전거는 뭐 그렇다 치고、왠 빈집?
“여기서 살겠다고요? 아님。。。”
석 달 전 양순 씨가 묻던 걸 이제 내가 먹고 있다。말이 안 돼、이거지 않은가。근데 너는 그 말이 안 되는 걸 지금 하고 살잖아。그러면서 남은 안 된다고 네가 묻는 거야? 너는 되고 남은 안 되다니。더 들어야 할게 마당으로 들어가 대문 한 짝 떼내어 눕혀 만든 평상에 셋이 걸터앉는다。그녀가 조심스럽게 브람스 한 국을 신청한다。들어가서 레코드 판을 올려놓고 볼륨을 높인다。
“브람스의 <대학 축전 서곡>이네요。”
그녀의 말에 놀란다。그녀만의 카페 <브람스의 짝사랑 >에 3개월째 개근하고 있는 양순 씨가 아는 척을 한다。
“이 곡은 졸립지 않군。잠을 확 깨는구먼。”
3년이 아니라 3개월 만에 풍월을 읊는다。
“브람스가 이 동네에 온 뒤로 나를 아주 우아한 여자로 만들고 있다니께。요 말투만 바꾸면 말여。”
제 입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치며、접해 보지 못해서지 듣다 보니 좋더라、커피는 별로 안 마셨는데 먹다 보니 커피도 맛있어지더라。。。
“저기 치킨 카페 있잖여? 요즘 매상 올려 준다고 을마나 고마워해 하는지 몰라。아마 그 소문은 저 치킨 카페 여편네가 퍼트렸을 거여。거 있잖여。우리가 애인이란 거。남편 귀에도 들어갔는가 본디 거들떠도 안 봐。그니께 맘껏 바람 피워 보는 거여、 까짓 것。”
너스레를 떤다。
“여긴 내짝잉게。。。 거기도 혼잔겨?”
거기가 고맙다고 인사하자 자리를 피해 준다。
“젊은 사람들끼리 잘해 보고。아무튼 나、 이러다가 공로상을 받을 것 같잖여? 인구、 뭐라냐? 소멸지역에서 인구 유입이 벌어지고 있으니께 말여。 참말로 경사며 영광이제。아무렴。”
피아노로 바로 편곡하여 브람스가 짝사랑하던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에게 그녀의 생일에 선물했다는 <대학 축전 서곡 >을 한 번 더 듣자고 한다。
“저는 윤아예요、 차윤아。”
'우리들은 훌륭한 학교를 세운다'라는 축전서곡의 앞부분이 다시 흘러 나온다。
16년 전인가、미대가 아닌 미술교육과로 진학했던 종희는、
“선생을 딱 20년 하고 작은 학교를 세울 거야。”
미술 학교일 거라고、그러나 그림만 가르치진 않을 거라고도 했다。
“도와줘야 해。철학은 나 정말 알아듣지 못했거든。”
대학졸업반 종희에게 쓴 나의 첫 편지에서 한 음악 평론가의 글을 인용했었다。
'삶이 실린 문화로서 음악이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우리의 미래를 그리는 나에게 생각의 부재、 철학의 부재를 바라보게 하는 우리 음악계의 시각은 아직도 참 무디디 무디다。'
---주성혜가 쓴 <음악 읽기 세상 읽기 >중에서
“음 동감이야。삶이 실린 문화로서 미술도 받아들여지는 사회。
오래 전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 이름、 정확히는 성이 성에 안 차요。고씨였으면 좋았을 텐데 하필 차씨라。차윤아와 고윤아、참 다르지 않나요?”
나를 과거에서 깨운다。
“선생님은요?”
내 이름요? 성만이 아니라 이름까지도 성에 차지 않는데요、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대로 알려 준다。숨겼다가 뒤에 알고 나면 더 우스울、아니 숨긴 사실로 더 웃음거리가 될 것이기에。
“오염수。오、염、수 입니다。40년 앞을 아버지께서 내다 보지 못한 거지요。”
아버지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다。염은 소금이고 수 대신 빛、 광 자를 넣고 싶었겠지만 수 자 돌림이라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오염수나 오염광이나。。。 어찌 알았겠는가。후쿠시마 핵 오염수나 오염광으로 연상되는 태양광이 이리 흔하게 회자될 줄 아버지가 그때 어떻게 알았겠는가。세상의 소금이 되라던 뜻은 세상의 오염。。。 어처구니 없어 황당했는지 반응은 배려로 돌아앉는다。
“밖 담에 그린 그림、선생님이 그리셨어요”
돌아와서 살 자기 집에도 그려 달란다。
“진짜로 살러 오신다고요?”
끝내 묻고 말았다。군살 하나 없이 마른 체형의 그녀는 말에도 군더더기가 없다。
“쇼팽으로요。조르주 상드하고요。”
피아노만 갖고 올 거라 한다。그 빈집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가깝다。피아노 학원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알아차린다。
“학원 같이 돈 버는 일은 당분간 안 할 거예요。”
그 당분간은 꽤 길어질 거라고도 했다。
“저 그림 그려 놓고나니 반대도 많았답니다。브람스를 알 리 없고 괴물로도 보일 외국인을 그것도 흑백으로 그려 놓았으니 요상한 종교 단체는 아닐까、이랬다네요。근데 이장님께서 나서서 오해는고 풀렸지만。。。 조르주 상드라、여자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이것 주민들이요。”
그녀는 이장님을 찾아뵙겠다고 했다。
“아까 봤잖아요。 그분이 이장님이세요。”
“예? 양순 씨라고 불러 달라던데요。”
우리는 웃었다。제 이름을 찾고 싶다는 60대 후반의 촌로나 차윤아나 오염수나 이름으로 웃을 수가 있었다。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생겨난 이름이 웃게 만든다。
“그런 분이라면 더 환영하실 듯합니다。여자라고 왜? 이럴 것 같은데요。여자라면 더!”
남장을 하고 다니며 수많은 남자들과 온갖 영문을 퍼트리고 다니던 자유주의자 조르주 상드가 쇼팽 에게는 달랐다。그녀에겐 꽤 긴 시간 일 10년을 폐결핵을 앓고 심약해 소심하기도 했던 쇼팽에게 바쳤다。헌신적이었다。쇼팽에 비해 훨씬 유명하고 잘 나가던 상드였다。마요르카 섬에서 상드와 함께 한 쇼팽은 많은 피아노 곡을 작곡했다。
'이런 여자가 어때서。。。'
양순 씨가 상드를 알게 되면 이 말부터 할 게 뻔하다。
윤아는 돌아갔고 혼자 있으려니 오랜만에 쇼팽이 듣고 싶다。들으며 든 생각、이것도 우연이구나、나도 윤아도 이곳에 깃들게 된 사연은 다 우연이로구나。굳이 이유를 붙인다면야 '브람스가 왜 그 벽에 있어' 필연이 될지 모른다。
“어떻게 이곳에?”
“계획대로 큰 도로 따라 전북 서해안 쪽으로 달렸다면 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겠죠。오른쪽 길에 초등학생들이 보였어요。하교 시간이었습니다。 두고 온 세 아들이 생각났고 그래서 오른쪽으로 틀었습니다。난 음악을 틀어 놓고 달리는데 마침 <학교 가는 길>이었어요。알지요? 김광민의。。。 어떻게 지나칠 수 있었겠어요。그러다 브람스 앞에까지。”
“왜 근데 쇼팽이죠?”
쇼팽도 우연일까。
“왜 브람스예요?”
그저 우연일 리 없다。
“1년은 길어? 그럼 6개월이라도 하자。이렇게 살면 우리보다 우리 아이가 더 문제가 돼。우리가 맨 싸우는 거、갓난아이라고 모르겠어? 6개월 부부! 내가 말기암 환자에 걸렸다고 쳐。우리에게 6개월이 주어졌다고 여기고 살아 보자고。”
퇴근해 들어오면 맞이해 주기는 커녕 이불을 뒤집어 쓰고 이제 한 살 갓 지난 아이는 혼자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었다。하루 종일 이랬니? 아이가 말을 못 하니 물어볼 수도 없고、아빠에게 달려든 아이는 내 품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내 품의 아들 너머로 식탁엔 먹이다만 이유식이 놓여있었다。난 카드가 없다。아내만 있다。그 카드로 신세계백화점에서 사 왔을 미제 이유식。이런 공산품보다、하며 지금 내가 만들어 먹였다。입이 짧은 아들이 잘 먹었다。아들에게 맞춘 이유식이니 당연하다。이러면 아내가 이렇게 해 주리라 믿었다。자기 아들 아닌가。그러나 바뀌지 않았고 도리어 잔소리해대는 쫌보 남자가 돼 버렸다。이미 1년 전에도 나와 전혀 상의 한 마디 없이 모유를 한 모금도、아니 엄마 젖을 한 번도 물어 보지 못한 아들。이 사실도 어느 날 장인의 전화가 와서 알았다。
“네가 왜 여자 일에 참견을 해!。”
모유는 포기했지만 엄마의 품이라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젖을 먹이는게 모유가 좋아서기도 하지만 엄마 품에서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듣는 건 아기의 정서에。。。”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또 저 잔소리、 지긋지긋해。”
한 달쯤 지나고 6개월 시한부 부부를 제안했던 것이다。6개월 살아보며 그 뒤 우리의 관계를。。。 어떤 대답도 듣지 못하고 아내에게도 아들에게도 나는 더 절절했다。6개월밖에 안 남았다는데、이 소중한 시간은 불평하고 불만을 털어놓고 하기엔 너무나 짧고 아까웠다。6개월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요 미래다。종희를 나에게서 떼어내기 위해 아버지가 서둘렀으니 연애 기간도 없이 결혼한 부부。그렇게 결혼은 했어도 연애하는 기분으로 한 여자에게 사랑받는 남자가 되고 싶었고 아들을 축복의 선물로 받았으니 아들에겐 정말 멋진 아빠이고 싶었다。그렇게 6개월이 지나는 동안 아내의 6개월은 어땠을까。변한 건 없었다。퇴근하고 돌아오면 집에는 늘 있었다。역시 아내는 이불 속에、이불 밖에는 내 아이가 따로、6개월 내내 이랬다。그러나 내가 집에 없는 동안은 달랐다。나는 포기하고 더 이상 부부로 살 수는 없을 것 같다며、그러나 이혼은 아이가 대학교 들어가는 20살이 될 때 하자고 했다。아이를 위해서 엄마가 키우고 난 집에서 나가겠다고 했다。이때 이불을 박차고 나오더니 하는 말、
“아들을 낳아줬는데 왜 당신 집에선 돈도 안 보내 줬느냐.”
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귀한 손자를 낳아줬으니 애는 가져가고 돈이나 내놔!”
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자식을 포기할 테니 돈을 내놓으라? 생활비는 넉넉하게、 아니 내 월급은 다 아내가 받아서 썼다。헤어져 살아도 이대로 그럴 거라고 했다。출근하려는 이른 아침에 장인에 전화를 받았다。
“왜 이혼 안 하느냐? 나도 남자인데 내 딸 같은 여자랑은 살지 못할 것이다。그러니 이혼하라。그리고。。。”
이혼은 당장 절대 할 수 없다고、이제 막 한 살 된 아이는 그래도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하니、
“너、그 집 내놓는게 아까워서 그래?”
그 집이라니? 결혼하며 내가 내 돈으로 산 반포의 작은 아파트였다。
“아이와 엄마가 지금 잘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혼은 아들을 위해서라도 절대 못 하겠다고 하자 당장 이혼하라며 전화를 끊었고 이후 친정으로 간 아내는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아내의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났다。친구의 도움이라도 받아 부부、아니 가정을 깨고 싶지 않았다。도와 달라는 내 말에 내내 소극적으로 “예예”만 하던 친구가 입을 열었다。
“혹시 그 집을 담보로 잡힌 거 아세요?”
그 집? 또 그 반포 아파트?
“왜요? 돈 쓸 일이 없는데요。”
친구가 혀를 찼다。
“그럴 줄 알았어요。오 기자님、 몰래 한 거네요。걔 아버지가 그 집을 담보로。。。 근데 그 집이 곧 넘어갈 건가 봅니다。걔 아버지 사업도。。。”
친구는 헤어지며、
“참 나쁘다。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걔、 그런 애가 아닌데。하기야 부모 말만 듣는 애이긴 했지。공부만 잘하면 뭐 해。”
하지만 내게 집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속인 것이 화가났다。든든한 직장 있겠다、아들은 잘 키워낼 수 있으리라 기대 하나는 확고했다。아내의 친정집을 찾아갔고 다 알고 있으면서도 집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아내의 친정 쪽에선 처제들까지 나서서 모두 이혼하라 야단이다。나는 '하는데 당장은 아니다。아이를 위해서。원하는 대로 하라。단 아이는 맡아 달라。우리의 갓난 아들에게서 엄마를 빼앗고 싶진 않다。'했으나、다른 방에서 계속 울어대던 아들을 막내 처제가 데리고 나오더니 、
“보내 버려。뭐 이 따위에 전전긍긍해?”
이 따위? 새벽 2시、 아들을 안고 돌아왔고 며칠 뒤 서초경찰서로부터 고소장이 날아왔다。존속상해、내가 장인의 목을 좋아 전치2주라는 진단서까지。그 의원을 찾아가 물으니、
장인이 두 번 왔었고 두 번째 방문 때 “사위도 자식인데 사위의 손버릇을 고쳐 주는 것도 이 장인의 사랑”이라 했고、상처는 처음 올 때와 달리 육안으로 봐도 좀 더 심해 보였고 “또 이랬냐?” 의사가 물었고 의사도 장인이 사위를 설마? 하며 진단서를 떼주었다 했다。
“자해 같은 것은 의사가 판단하지 않습니다。오로지 상처만으로。。。”
자해。。。 결국 나는 장인의 목을 상처냈다는 존속상해로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그때 감방으로 면회 온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다 주고 끝내자。아들은 오씨 성을 가지고 있는 한 돌아오게 돼 있다。이 애비가 참으로 너에게 미안하다。난들 그렇게까지 못된 집안인 줄 어찌 알았겠느냐。다 내 잘못이다。이 애비를 용서하고。。。 이 애비는 너만 걱정되는구나。잘 견뎌야 한다。그래야 네 아들을 볼 수가 있다。”
검찰은 나를 고소장 그대로 몰고 가려 했다。그러나 검찰도 '아닌 건 아니다'라는 양심은 있었나 보다。기자였던 내가 출소하면 어떻게든 엮어 넣으려 했던 게 다 들통 날지 몰라서인지 고소사건 일체의 서류를 다 없애 버렸다。기자직을 내 개인적인 일로 앞세울 일은 추호도 없던 나였지만 검찰은 이것까지 걱정했던 게 아닐까。
강남의 아파트를 주는 대신 아내가 키우기로 했지만 어린 아들은 우왕좌왕하며 정서불안의 시간을 몇 년째 보내고 있다。초등학교를 입학해서 더욱 심해진 듯했다。직장을 그만두면서 아들을 돌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편지를 전 아내에게 보냈다。구림으로 온지 두 달쯤 됐을 때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데리고 가라 해서 서둘러 데리고 왔다。돈이 드니 데려가라니? 하루라도 빨리 데려와야 했다。비쩍 마르고 자폐 증상까지 보이더라。똘망했던 애가 어쩌다가。。。 ”
어머니가 말을 잇지 못하자 이어 아버지가 전화를 건네받았다。
“당분간 우리가 손자를 보살피며 있을 테니 넌 걱정 말고。네가 네 아들을 보면。。。 애비 애미도 이렇게 가슴이 찢어지는데。。。 우리가 나아질 때까지 보고 있을 테니 오라 할 때 보러 오거라。이렇게 돌아오지 않았느냐。이것만으로도 감사해 하자。”
우연 같은 일들을 업보라고 한다。업보는 원죄가 되고 만다。내가 나를 어쩔 수 없게 하는 것、내 의지와 무관한 일들은 많이 벌어진다。다 상대가 있어서 일 것이다。상대가 나와 달라서 일 것이다。
나는 기껏 나와 유사할 거라는 고독한 사람의 곡을 듣고 들어왔다。
쇼팽을 다 그리고 상드를 그리고 있을 때였다。
“염수 씨。”
윤아가 나를 부르다 멈칫한다。염소 씨? 알아채고 내가 말한다。
“ '저기요'라고 불러 주세요。그게 난 더 좋아요。”
“저기요? 어떻게。。。”
하더니 이내 좋단다。'저기요'가 '자기야' 로 들릴 수도 있으니까 라며、
“그럼 나는 윤아 씨를 나보다 훨씬 어리니까 씨 빼고 발음대로 유나라고 부를게요.”
“씨 없는 수박이 됐네요。유나、 좋아요。유나。。。 영한글 혼용이네。유는 나? 붙이지 않기입니다요。”
유나도 우연인지 업보인지 원죄일지도 모를 그 어쩔 수 없음을 품고 살아왔다。쇼팽과 상드가 훤히 보이는 길 건너편 식당에서 “순창이니까” 하며 된장찌개를 시켜 놓고 듣는다。그녀의。。。
고3 때다。지금 으로부터 15년 전、하루 10시간 이상 피아노를 쳤다。그리고 나서도 학과 공부로 또 앉아 3시간。욕심이 많던 유나는 피아노로만 음대를 가고 싶지 않았다。학과시험에도 자신이 있었다。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상반신 마비가 왔고 1년 넘게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입시는 쳐 보지도 못 했고 그녀는 절망했다。양한방、민간요법 등 다 동원된 치료로 마비는 풀렸다。그러나 좌절된 마음은 전처럼 돌아오지 않았고 마비만 고쳤을 뿐 늘 힘없이、조심하며 살아야만 했다。전전긍긍이었다。무리하지 말라、전과 달리 욕심을 잃으니 늘 목표 없이 살아 내야 했다。죽은 거나 뭐가 달라?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은 했지만 자기가 못다한 꿈을 꼭 자식에게서 이뤄내고 싶었다。그래서 딸을 원했다。하지만 아들만 셋。아들들은 다행히 잘 커줘서 모두 건강한 초등학생이 됐다。쇠약하고 심약한 이대로 살기엔 너무 아깝단 생각이 들어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당연히 예전 같지 않은 손가락에 다시 과거로 돌아가 과거와 지금을 자주 비교하게 되었다。유나는 '이러다가 또?' 마비재발이라는 트라우마 를 겪게 된다。아파트 계단을 5로 내리던 운동에서 자전거 타기로 바꿨다。몸이든 맘이든 잃어가고 있는 균형을 잡기 위해서다。잠에서 깨어난 아침、이불 밖으로 나오기 전 손가락부터 확인하는 버릇도 생겼다。피아노는 포기할 수 없었다。피아노에 앉아 있을 때는 편했다。잘 치려고 하지 말자、과거를 덜어내야 했다。가요나 팝송 같은 가벼운 곡을 치지만 마지막엔 꼭 쇼팽의 녹턴을 지었다。매우 어려웠던 시절에 작곡했다는。。。 치다 보면 떠오르는 이런저런 것들、다 사라지고 말 것들이라는 생각에 피아노를 치며 든 여러 생각들을 일기로도 남겼다。유나의 음악 일기를 시작한지 2년쯤 되었을 때 다시 마비가 시작됐다。이번엔 다리다。하반신、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면 이상 없단다。불안이 만든 병、자가진단하고 동네에서만 타던 자전거를 지역을 넓혀 갔다。남해 바다 따라 진주에서 부산 쪽、또 진주에서 순천 목포 쪽으로。혼자서 해냈다。“혼자 괜찮겠어?” 남편과 아이들은 걱정했지만 이 말이 참 듣기 싫었다。사랑인 줄 알지만 나를 위축시키는 이런 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같이 하겠다는 남편을 떼어놓고 섬진강을 따라 북쪽으로 달려 보았고 그러다 도착한 구림이었다。당연히 진주 집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거리의 벽화가 유난을 붙잡았다。브람스。짝사랑? 이 말은 '나를 내가 사랑해주자' 로 들렸다。하루 더 있어 보기로 했다。폐허의 거리 구림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이장에 눈에 띄었다。
“저 집은 뭐 하는 곳이에요?”
저 집、<브람스의 짝사랑 >이다。양순 씨가 신나게 얘기했을 것이다。짝사랑이란 단어는 브람스만이 아닌 쇼팽과 조르주 상드가 나눈 사랑도 떠올리게 했다。약한 쇼팽과 유나가 유사하고 상드는 유나에게 헌신적인 남편이다。남성적이고 주관이 뚜렷한 상드는 남편과 닮았다。쇼팽과 상드는 10년 동거하며 살다가 헤어졌다。헤어진 뒤 쇼팽은 1년쯤 지나 병이 악화돼 사망하고 말았다。잘해주는 남편이 고맙지만 미안하고 또 언젠가는。。。 우리 부부도 얼추 10년을 넘어 13년째 살고 있고。。 고3 때 뜻밖의 상반신 마비는 남의 비슷한 처지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병으로 남아 있다。결코 그렇지 않은데도 남편의 사랑을 뮌하우젠 증후군으로 확대한다。더 사랑받고 더 관심 받고 싶어 하는 것은 나의 허약함을 감추는 일이다。그러자니 과장하게 되고 이것은 나를 결국 속이는 것이다。그리고 사랑해 주는 상대도 속이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내 삶을 살아 보자。그러자면 과거를 잊자。나도 이젠 이기주의자가 되자。이젠 혼자다。가족이라도 남이다。부처님이 하신 말씀이다。가족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사랑하니까 더。철저히。그러자니 끊어야 한다。'
“저기요!”
나를 부른다。
“브람스와 쇼팽의 거리、이 동네가 클래식 거리가 됐어요。”
재미없게 내가 대답한다。
“우연히도 그렇게 됐네요。”
양순 씨가 닥치듯 식당으로 들어선다。
“날 빼고 둘이서만?”
해죽 웃는 양순 씨 손엔 두 잔이 아닌 세 잔의 커피가 들려 있다。
“그림 그리다 말고 그 새 참지 못하고 데이트하는 거여? 다 식었겠구먼 자! 치킨 카페에서 방금 뭐라 하는 줄 알여? 요즘 매상 들고 있다며 다음엔 어느 작곡가가 와서 우리 집 매상을 올려 주려나、 하더랑께。참말로 야무지제? 근데 그럴 것 같긴 혀。아까 말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