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락교시대 01화

브람스의 짝사랑

by 차쌤


지금의 나를

결정한 건 우연이었다.

앞으로도

이 우연에 나를 맡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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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브람스의 짝사랑


"하늘이 보낸 사람!"

ㅡ슈만 부부가 브람스를 처음 보고 한 말



16년 동안의 기자를 그만두고 전국을 떠돌았다。백수가 된 나는 집과 짐부터 줄여야 했기에 이사 준비를 하다 말고 돌아와서 짐 정리를 하자고 했다。계획 하나 없는 여행은 계획으로 점철된 나의 20년 과거와는 사뭇 달랐다。

계획과 무계획의 사이에 여행이 있었다。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갔고 제주공항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서귀포로 더 내려갔다。한국땅 남쪽 끝에서부터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북쪽으로 향해 올라가 보기로 했다。바다 곁에 앉았다。눈앞에서 왔다 갔다를 거듭하는파도를 보고 있자니 우왕좌왕했던 나의 지난 날들이 그 파도 위에 얹혀 흐느적거린다。

남의 이목이 나를 우왕좌왕하게 했다。성적도 대학도 직장도 직업도, 다 남들의 평가가 그 기준이었으니 확고했다고 말해야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잘 풀렸다。 잘 나갔다。대학도 직장도。그런데 늘 불안했다。이렇게 산들?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면 남의 이목으로 결정된 삶은 잘 풀리고 잘 나가도 그저 우왕좌왕할 뿐이었다。때가 됐다。나이 40。공자에겐 불혹이지만 난 혹하여 과거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미래를 가려했지만 아버지께 말도 꺼내지 못했다. 내가 노력해서 본 시험, 그러나 아버지의 뜻대로 결정이 났다. 법대에 가라했더니? '성적이 안 돼서' 라고 말할 순 없어서 머뭇거리니, '그 학과를 나오면 뭐가 되는 거냐?' 아버지는 늘 나를 앞섰고 '기자나 피디요.' 나는 서둘러 대답해야 했다。사실 신문 방송학과 나온다고 다 기자가 되고 피디가 되는 건 아니다。그 좋은 대학도 졸업생 중 10%나 될까?

아버지는 끄덕였다. 기자가 판검사보다 날지도 모르지. TV의 힘이려니... 기자가 돼야 했고, 했다. 역시 아버지의 의지대로 결정됐다. 남들 부러워하는 대학에, 지방에선 '우리 동네 누구의 자녀, 어느 신문사 기자가 되다.' 현수밖까지 붙는 그런 신문사까지. 그렇게 나는 정작 나를 빠트린 알맹이 없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이혼을 하며 달라졌다. 이혼 역시 내의지는 없었다. 결혼이 그랬듯이 요구하니 따랐을 뿐이다.

좌절감은 기존의 나를 돌아켜보게 했다. 기존의 나? 내 의지와 상관이 없다면 그것은 우연일 뿐이다. 대학도 결혼도 아버지도, 이혼도 내 의지대로 된 건 없다. 이런 내가 재미있을 리 없었다. 재미는 아버지가 즐겼을 것이다.

이제 재미있는 일을 하고 살자. 이제 남이 좌우하는 우연에 나를 맡기지 말자. 서울을 떠나며 든 이 생각은 계획일 순 있다. 막연함, 내버려둠이 계획이라면 계획이랄까. 물흐르는 대로...... 막연함에 또 내 의지를 담는다.

서귀포를 떠나 버스나 기차 등 대중교통으로 두어 달 전국을 돌았다。춘천역에서 서울로 돌아가면 나는 이사갈 곳과。。。이런 생각 중에 불쑥 아버지의 고향이 떠올랐다。일부러 피했던 곳。단절을 하려면 철저히 하자。남김없이 끊어내자。전 아내와 그녀의 부모쪽으로부터 이혼을 당한 악질적인 이유를 알고난 아버지는 나에게 처음으로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았다。위자료와 양육비 등으로 다 내 주고 나니 돈이 없다。아버지가 이것까지 알고 있었다。


“이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고 돌아와서。。。。。。”


여비조로 천만 원을 내게 준 아버지의 고향으로 방향을 바꿨다。14살에 고향을 떠나셨다니 60년이 지난 지금의 아버지 고향을 보는 순간, 60여 년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을 폐허가 된 거리를 보며 난 울컥했다。아버지가 왜 나를 그토록 이런 데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는지를. 끊은 담배를 80대 노파가 지키는 구멍가게에서 샀다。담배도 유효 기간이 있나? 이 가게에 몇 년을 묵혔을 듯해 보이는 꾀죄죄한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물었다。거리에 주저앉았다。두 개비째 담배에 불을 붙이려니 담은 금이 가서 곧 허물어질듯한 집에서 한 노인이 삐꺽, 철문을 밀고 나왔다。그는 내 쪽을 흘끗 쳐다보곤 면사무소 쪽으로 걸어갔다。한참 앉아 있으려니 아버지 말이 들려온다。여기 아버지가 있을 리가 없다。환청이다。'저 집 아들이 판사가 돼서。。。' 그 다음은 당연히、'너는 더 똑똑하니 더 높은 자리에 올라야지.' 초등학생 때 이곳을 아버지와 왔었고 그때 그 말을 들었다。그 쓰러져 가는 집、1시간 전쯤 한 노인이 문 열고 나왔던 그 집이었다。판사로 출세했는데 집은 여지껏 저꼬라지냐、나는 웃었다。판사가 살고 있을 집은 강남의。。。。。배가 고프다。아버지가 쥐어 준 돈은 상당히 남아 있다。길을 따라 걷다 보니 짜장면집이 보인다。곱빼기로 시켜 배불리 먹었다。먹고 나오다 식당 앞에서 판사를 아들로 뒀을 그 노인과 마주쳤다。


“처음 보는 사람이구먼!”


우연이 두 번、알은 척을 한다。목 인사라도 해야 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젊은이、나 좀 도와주려나?”


젊은이、하기야 저 노인의 눈엔。허리를 굽혀야 드나들 수 있는 작은 문이 빠져 있다。


“늙어 쓸모없는 인간이 돼 버렸으니。。。”


쓸모 있는 인간들은 다 빠져나가서 처음 보는 내게까지 부탁한다。간단한 일이었다。60대 여자가 이 노인을 찾으며 대문 안으로 들어서다 나를 보고 "손님이 와 있었네。” 하며 반겨 웃어 보인다。얼마 만에 보는 웃음인가。어쩌면 내 울울한 마음이 타인의 미소마저 보지 않으려 했을지도 모른다。그래서인가。나는 선뜻 용기를 낸다。


“이 동네에 빈집 있을까요?”


'쉼표도 노래다' 라고 누가 그랬던가。한 달이라도 멈춰 머물고 싶었다。


“다들 빠져나가는 곳에 웬?”


그녀는 이장이라며 자신을 소개하더니 따라오라 했다。


“얼마나?”


살 기간이리라。대답을 늦췄다。그녀가 12년째 비어 있다는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냥 써。불만 내지 말고。”


이런 집이 많다고 했고 많아도 남에겐 내 주지 않는다고도 했다。그런데 이 집은?


“한 명이라도 인구가 는다는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다。처자식은? 죄 짓고 도망친 범죄자는? 이렇게 훑고 있었을 것이다。나는 비로소 대답으로 물었다。


“얼마 동안 쓸 수 있나요?”


“살 기간?”


풍만한 몸집이 마음도 넉넉할 것 같은 초로의 여자가 대답을 한다。


“싫증 날 때까지만。”


무한정으로 들렸다。살 만한 집이 못됐다。고쳐야 할 곳이 많았다。그러나 방 하나만 대충 치우면 그럭저럭 한 달은 지낼 수 있을 테지、하고 둘러보다 대문 안쪽 문간방을 열어 보려니、


“혼자 일 테지?”


이미 감을 잡은 그녀는、요령껏 써보란다。요량껏? 깜냥것으로 들린다。나를 안다는 것은 내 처지를 아는 것이다。어차피 모든 기회가 우연이라면 이 우연을 기적인 듯 받아들인다。

짐을 다 없애야 한다。조촐하게、단순하게! 내 등에 짊어질 만큼의 짐만으로 족할、그러자니 다 버려야 한다。가볍게、홀가분하게!

욕심을 내려놓는 것은 짐 정리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욕심을 내려놓는 것은 단순한 가벼움으로 포기나 체념과는 다르다。긍정적인、아니 바람직한 집착이다。집중이며 집념이다。

'단순하라。' 샤르트르가 그랬다。

하지만 하나의 물건에 머뭇、주저하고 만다。오디오와 LP판들이다。나를 버티게 해 줬던 클래식 음악들。도피처였던 클래식 음악이 나를 붙잡는다。버리기 아까워서가 아니다。도피는 나의 유일한 의지였다。도피처 하나 없었다면? 질문은 도피처를 안식처로 바꿔 놓는다。500여 장의 LP판 중에 손이 가는 대로 잡아 듣는 곡은 교향곡 제 1번이다。

고독은 의지일까? 브람스의 삶도、그의 곡들도 고독이 물씬하다。22세 때 처음 이 곡을 쓰기 시작하였으나 20여 년이 지난 43세 때 완성했다는 곡이다。'베토벤의 발소리를 내 등 뒤에서 듣는다。' 며 베토벤을 흠모하고 또한 두려워한 그는 20여 년에 벽을 스스로 세우고 말았다。베토벤만한 곡을 쓸 수가 없었다。1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교향곡 제1번은 제10번으로 극찬을 받았다。제10번이란 베토벤의 제9교향곡의 대를 이었다는 찬사다。한편 조롱도 받았다。


“교향곡은 베토벤에서 끝났는데 뒤늦게 무슨 교향곡을... 쯧쯧.”


바그너다。베토벤을 그대로 베꼈다는 것이다。이에、

“바보 같은 이들은 같은 곡으로 듣겠지。'

브람스는 바그너에 반응했다。그러나 내게 브람스는 음악보다도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기억된다。스승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사랑했으나 그 사랑은 우정에 그쳤다。사랑과 우정 사이、짝사랑이라고 해야 할지。

。。。。。。

3년 사귄 여자 친구를 소개하던 날、아버지는 나와 종희 앞에서 “너에겐 정해진 배필이 있다” 며 덧붙인 말。“너희 둘은 친구로 사귀거라。” 아버지 앞에서 그저 우유부단한 나를 더는 볼 수 없다며 종희는 프랑스로 떠났다。나는 이미 정해진 배필과 결혼해야만 했다。매우 부잣집 여자는 '너에겐 과분하다' 라는 아버지의 말 그대로 되었다。내가 감당하지 못할、내가 어찌 해보지 못할 미치지 않는 힘도 우연일 것이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환희>에서 '온 세계에 입맞춤하리라.' 가 그랬듯이、브람스는 '산 높고 골짜기 깊은 곳에 행복이 있어라。그대에게 천번의 인사를 보내며。' 은은한 호른에 담아 사랑을 노래했다。베토벤은 온세계에、브람스는 짝사랑 클라라에게。둘 다 평생 총각이었던 작곡가。

나는 이후 종희를 더 이상 보지 못했다。프랑스로 가서 화가로 사는지、결혼은 했는지。。。 미안하단 말 한마디도 건내지 못했다。잘 살겠지、매사 이랬다。여태 잊은 적이 없었음에도 내 일을 남 일처럼 얘기했다。굳어진 습관이고 버릇이다。아버지는 내게 거대한 힘이었고 감히 생각조차 먹을 수 없었다。아버지는 나를 조종만 한 게 아니다。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지원했다。사랑이었다。


“너희 둘은 친구로서 사귀거라。”


결코 거역해서는 안 되는 존재에게서 받는 사랑으로부터 감히 벗어날 수 없었다。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아들에 대한 그지없는 지고지순은、

'다 너를 위해서'

자식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무한 희생이었다。보답은 예의며 도리다。

'나를 주장하기에 앞서'

아버지에 대한 최소한의 통과의례였고、

'나로 인해'

아버지에 대한 마뜩했을 배려의 예의였다。

불만이 길어질 리 없다。그러자니 대체도 쉽다。뜻에 따르기、순정은 순탄했고 순조로웠다。따를 수 있는 것도 능력이었다。하지만 마땅하게만 보였던 순종은 좌절감해서 무너져 내렸다。순종은 내가 어찌 해 볼 수 없는 도리였고 좌절감 역시 내가 어찌 해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브람스 교향곡 1번은 이미 끝나 있었다。바늘이 긁어대는 지지직거리는 소음이 나를 깨웠다。소음은 엊그제 본 그 구림면의 시골집 담으로 나를 이끌었다。이곳저곳 금이 가고 곰팡이로 얼룩져 있어 버려진지 오래됐음을 알게 했던 담에 나를 방치했던 과거를 덧씌운다。지워내야 하고 씻어내야 한다는 깨우침이 불쑥 뜬금없는 생각과 계획으로 이어진다。

그래 이건 갖고 가자、오디오와 LP 판들이다。그리고 아직 버리지 못한 아크릴물감과 붓들이다。

아버지의 차를 빌렸다。어딜 다녀왔느냐、어딜 가려느냐、이제 무엇을 하려느냐。。。 이젠 묻지 않는다。순순해진 아버지가 내 어깨를 도닥여 주기만 한다。일흔 노인이 마흔 아들에게。아들의 좌절감이 아버지에겐 박탈감이었다。묻지 않은 아버지가 편치 않다。되레 대답한다。


“구림면으로 가요.”


아버지의 고향이라고 덧붙이면 사족이 된다。아버지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가난、그리고 아버지가 그토록 누리고 싶었을 명예를 다 담고 있는 고향에 왜 네가? 묻지 않는다。


“자식을 쥐 잡듯 하더니만。。。”


엄마는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따진다。


“내 자식 불쌍해서 어쩌나。”


나보다 더 아버지에게 순정적인 엄마가 오히려 내 가슴을 쥐 뜯는다。

여섯 살짜리 손자를 그쪽 집에 건네주고 돌아온 날이었다。그쪽、 내 입에서 아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아버지 차에 오디오와 레코드판을 싣고 얼마에 돌아온 구림면、그 시골집에 짐을 부리고 있는데 그 이장 아주머니가 달려온다。


“진짜 왔네。”


볼 줄 몰랐단다。


“반 년... 더 있어도 될까요?”


나를 올려다 보던 놀란듯한 표정이 이내 활짝 웃음으로 바뀐다。


“그러믄야 우리야 좋제。좋고 말고。사람 다 빠져나가기만 하는 썰물마을에 한 사람이라도 느니、괜찮고 말고。여북 허기만 하겠는가。반년이든 1년이든 우리야 대환영 잉께.”


레코드판을 다 옮겨 놓고 나서 중국 식당으로 이장을 모시고 함께 갔다。호들갑스럽게 나를 소개하는데、


“서울서 왔다고 하는구먼。”


뭐 하던 사람이래? 왜 이런 유치한 곳에 왔대? 당연히 식당 주인이 의심스럽게 묻자 있는 나를 대신해、


“죄 짓고 온 사람 같인 안 보이제? 그럼 됐어。어서 맛나게 짜장면 두 그릇 내 오시게。곱빼기 할랑가? 오늘은 내가 옴팡 맞게 살랑께。환영턱이 쬐께 거시기하지만 말여。”


철물점에서 10kg짜리 시멘트 한 부대와 수세미를 사서 돌아왔다。담벽에 그림을 그려 놓고자 하려니 금간벽을 메워야 했고 찌든 곰팡이 자욱들을 다 긁어내야 했다。


“더 부숴버리진 마。”


공짜로 사는 대신 조건은 이 하나였다。참으로 심심한 동네다。사람도 없지만 뭐라 할 일거리도 없다 보니 그리고 있는 벽화가 구경거리가 되는 동네다。'돈을 왜 저런 데에 쳐바른다냐、쓸데없는 짓 한다고 츳츳해댄다。나는 오랜만에 신명나다。담벼락 이 큰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 넣다니、자뻑이 분명한 만족에 절로 웃음이 난다。웃다 말고 '언제 웃어 봤지?'

150년 전 독일의 작곡가가 곧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한국 시골마을의 담벽에 벼락같이 살아 돌아온다。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브람스와 그의 초상화。평생 고독하게 살았던 한 인간을 내 손으로 부활시킨다。대문 한 짝은 작은 빼서 마당에 눕혀 평상으로 쓰고 그 대문을 잡아 주던 기둥에 <브람스의 짝사랑>이라 쓰고 나니 마치 클래식 음악 카페라도 된 듯 보인다。듣고 싶어 찾아오는 이 있으면 반갑게 맞아 들려주면 되지、그저 그리고 싶었던 그림을 그려 추한 벽을 가렸을 뿐인데 다 끝내고 보고 있으려니 뿌듯하다。내가 저 안에서 적어도 반년을 살리라。이장 아주머니가 커피 두 잔을 들고 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카페의 첫 손님이 대준다。한참을 듣더니 듣고 있으면 있을수록 졸리게 만드는 묘한 자장가라는 감상평까지 늘어놓는다。그 브람스 교향곡이다。


“예. 저 안에 평상도 마련해 뒀답니다。편히 낮잠이라도 주무시고 가세요。”


고독이 남을 편하게 할 수도 있다는 생뚱맞은 생각이 든다。슈만 부부로부터 '신이 보낸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던 브람스는 정작 자신은 신이 버린 고독한 존재로 평생 괴로워했고 이를 음악으로 자신을 치유했을지 모른다。작곡가 자신은 고독하나 이를 듣는 청중은 졸리울 정도로 평화롭게 만드는 음악은、체념의 시간、반년을 살겠다고 한、'어쩌면 나의 계획'을 생각대로 놔두지 않았다。또 나를 우연에 맡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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