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엘가ㅡ사랑의 인사
내가 죽은 후에 말번 언덕에서 누군가
이 노래를 휘파람으로 불고 있다면
놀라지 말게。그 사람이 바로 나일세。
-----엘가가 병상에 누워 친구에게
상희는 중학교 2학년생이다。서울에서 엄마와 함께 이곳 구림으로 이사 온지 1년쯤 됐다。어려서부터 배워온 바이올린도 끊은지 1년쯤 됐다。
<쇼팽과 상드>를 알게 된 때는 3개월 전이다。이후 줄곧 주말이면 와서 유나에게 꼭 말러의 5번 교향곡을 들려 달라고 했다。말이 없는 여학생을 보며 유나는 사춘기 그때의 자신을 돌아본다。'나도 그랬어。' 굳이 말을 붙이지 않아도 수없이 많은 대화를 자신과 나누고 있을 것이기에。그래서인지 상희는 우울해 보였다。더구나 말러라니。그의 5번 교향곡은 어느 음악 평론가가 말했듯이 '점점 꺼져 들어가는 등불'과 같이 계속되는 음을 1시간 동안 듣고 있으면 더 울적해지게 만드는 곡이다。사춘기 소녀 때는 누구나 나르시시스트가 된다지만。。。
<쇼팽과 상드>를 가끔 들르는 구림중학교 음악 선생님이 찾아와 고창으로 전근하게 됐다며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이때 상희도 있었으나 선생님을 보자마자 일어나 도망치듯 밖으로 빠져나갔다。
“자주 오나요?”
“주말엔 꼭 와요。”
말러의 5번 교향곡만 듣고 간다고 하니 “그래서。。。” 음악 선생은 혼잣말을 하다 말고 묻는다。
“언제부터요?”
“3개월쯤 됐을 거예요。”
마침 4악장이 흐르고 있었다。
유나는 오랜만에 진주로 가서 남편과 영화를 봤다。그 영화 <헤어질 결심 >에서 내내 흐르던、참으로 사람의 가슴을 울적하게 만드는 말러의 5번 교향곡 때문이라며 영화관을 나오며 관람 도중 먼저 일어난 남편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했던 이유'를 들었던 유나.
“슬픈 노래는 처음 들어。더구나 헤어질 결심이라니。。”
언제 돌아올 거야、이 말을 하는 남편에게 유나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아직。그리고 미안해。”
불과 몇 개월 전의 일을 떠올리게 하는 곡을 듣는데 음악 선생이 뜬금없는 말을 한다。
“ '나는 연인이 될 수 없기에 악인이 되기로 다짐했도다。'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 >에 나오는 대사지요?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작곡한 말러보다 말러의 아내를 생각하게 돼요。어떻게 그럴 수 있지? 뭐 이런 거지요。”
말러의 아내、알마 쉰들러는 수도 셀 수 없을 만큼 숱한 남성을 홀렸고 정식결혼을 세 번이나 했다는 여자다。아내를 위해 작곡해 아내에게 바치며 아내에게 연연했던 말러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그때 그의 마지막이 될 이 노래를 작곡했다。제자 브르노 발터에게 초고를 보이며 말러가 한 말은、“이 곡을 들으면 누구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사람들은 이 곡을 듣고나면 자살을 할 지도 모르지。” 바람둥이 아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까。그로부터 3년 뒤 말러는 죽고 아내는 유명한 건축가 그로피우스와 습관처럼 결혼했다。
“클림트의 <키스>란 그림의 모델도 그 여자라면서요?”
유나의 말에 또 의문을 제기하는 음악 선생。
“난 남자로서、그런 여자인 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는 그런 남자들을 더 이해할 수 없어요。”
'난 여자로서、그런 남자들이 어떻게 여러 남자들과 몸을 섞는 그런 여자에게。。。 그것이 사랑일까요?'
이런 말 대신 생각을 바꿔 유나는 상희 이야기로 옮겼다。
“ '아직 나의 시간은 오지 않았다。' 말러가 이 말도 했다지요。오지 않은 시간이 곡인지 여자인지 애매모호합니다만、아무튼 상희 말이에요。바이올린을 배웠다는데 지금도 연습하나요?”
처음 듣는 얘기라며、
“말이 통해야 말이죠。아버지는 서울에 계신다는 것만 소문으로 들었는데。아세요? 요즘 관심은 금물、우리 선생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말입니다。교육자는 관심이 우선이어야 하고 그래야 사랑。。。 몇 년 전 여기 전북에서 선생 한 분이 끝내 목숨을 끊어야 했던 불행한 사건、잘 아시죠? 안타깝지만 물어볼 수가 없었어요。아까 봤지요? 선생인 나를 보고 인사도 않고 뛰쳐나가 버리잖아요。그런 애들에게 잘못 접근했다간。”
음악 선생이 <쇼팽과 상드>를 나가고 이내 상희가 돌아왔다。말러의 그 곡은 이미 끝났고 유나는 첼로 협주곡을 듣고 있는 중이었다。
“다시 틀어줄까?”
상희가 나를 쳐다본다。이 또한 처음인 듯하다。그 얼굴을 얌전히 좌우로 흔든다。참 얌전하게 생긴 앳된 소녀다。
“엘가지요?”
우린 함께 첼로 협주곡을 다 들었다。허기 、배가 고프다。
“자장면 먹으러 갈까?”
상희가 방긋 웃는다。자장면 두 그릇을 시켜놓고 기다리는 동안 상희가 말을 걸어왔다。
“엘가는 사랑의 인사로 유명하잖아요。”
뜻밖이다。
“응。위풍당당 행진곡도 유명하지。”
15살 소녀에게 마흔 살의 엘가를 들려준다。무명 작곡가로 지내던 마흔 즈음에 엘가의 친구는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는 엘가의 악보를 들고 출판사로 달려갔고 그 곡이 세상에 알려졌다。엘가의 나이 마흔。대체로 음악가는 타고날 때부터 천재성을 발휘해 이미 10살도 되기 전에 제 이름을 알리곤 했다。작곡가에게 마흔의 나이는 은퇴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그 후 엘가의 곡은 꾸준히 알려지게 되었다。유명한 첼리스트 카잘스는 “드보르작 이래 가장 위대한 작곡가.” 라는 찬사를 보냈다。엘가는 영국의 음악영웅이 되었다。소녀를 보며 대기만성이 떠오른 건 엉뚱했지만、'다시 해 보면 어때?' 유나의 마음이 전해지면 좋겠다、 해서 였다。자장면은 사람 사이를 참 가깝게도 만든다。길쭉한 면을 소리내어 빨아대고 입가에 검은 자장을 묻히며 서로를 다 보여줘서일까。먹고 난 뒤 돌아와 유나는 피아노에 앉아 말 없이 <사랑의 인사>를 치기 시작했다。상희의 콧노래가 따라 들려온다。일주일이 지났고 <쇼팽과 상드>로 들어오는 상희의 손에 진밤색의 바이올린 케이스가 들려있었다。그 후 유나는 구림중학교로 가서 음악 선생을 찾았다。
“상희가 다시 바이올린을 시작했어요。”
“그래요? 저는 몰랐는데。。。 이거 헤어질 결심자에게 주는 선물인데요。”
음악 선생은 고창으로 전근 가기 전 철물점에 부탁했다。철물점 이씨가 나를 찾아왔다。학교 정문에 늘 비어있는 작은 공간이 있는데 그곳에 주크박스를 만들고 싶다며 음악 선생이 부탁했단다。
“주크박스가 뭔가요? 음악 선생님이 오염수님께 말하면 잘 알 거라고 하던데요。”
또 오염수。듣기 거북한 내 이름으로 상대의 이름을 상기한다。꼭 '철물점 이씨'라고 불리는 내 또래의 남자。이씨、 왠지 더 아저씨로 만들어버린다。아버지가 하던 철물점을 물려받으며 이름까지도 물려받은 듯한데 사실을 알고나니、
“오히려 이 씨가 편해요。어렸을 때 놀림을 많이 받았거든요。내 이름이 대통령과 똑같아서 이 대통령님 때론 저 대통령님으로 참으로 놀림 많이 받았네요。배운 것처럼 존경할 만한 인물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한참 후에 알았어요。우리 국민에게 나쁜 짓을 더 많이 했던데요。비록 내가 고등학교 밖엔 나오지 않았지만。。。 학교에서 가르치는 게 다 맞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습니다。그래서 이름 말고 그저 이씨라고 불리는 게 더 듣기 편해요。”
철물점을 자주 드나들며 친해진 또래 이 씨에게 남들이 부르는 '철물점 이씨'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때가 많았다。내가 '염수 씨'라 불리는 걸 싫어하듯이 그 또한 '승만 씨'로 불리는 것을 싫어하니 해서、
“이 형 어때요? 나에겐 오 형이라 불러주시면 될 것 같고요。”
호칭이 편해지니 우리들은 이 형、 오 형으로 말을 틀며 더 가까워졌다。
음악 선생은 하교하면서 매일 마주치는 정문 앞 버려진듯한 빈집의 벽이 눈에 늘 거슬렸다。화단이라도 있다면。。。 마침 전근하게 될즈음 정든 제자들과 헤어지려니 참으로 아쉬워 제자들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이 동네 여기저기에 들어선 음악가들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희가 바이올린을 다시 잡았다는 게 너무나 반가웠다。상희에게 주는 선물은 제자 모두에게도 해당됐다。마침 <사랑의 인사>는 유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상희가 바이올린으로 연주한다고 하니 더욱 더 기뻤다。
주크박스는、이 형이 잘 아는 순창읍내의 전자제품수리점에 이 형과 함께 가서 버튼을 누르면 언제나 노래가 나오는 카세트를 찾아냈다。주크박스는 간단했다。이제 찾는 이 없는 카세트를 창고에서 꺼내왔다。바로 이것! 먼지를 닦으며 수리점 주인이 말한다。
“버리기 아까워서 놔뒀더니 이렇게 쓸모가 있구먼요。”
쓸 용도를 말하니 거저 가져가란다。빈 카세트테이프도 몇 개 챙겨 준다。녹음이 되는 카세트로 상희의 바이올린 연주와 유나의 피아노 반주로 듣기 참 그럴듯한 <사랑의 인사>를 녹음했다。주크박스가 완성되기 전에 음악 선생은 구림을 떠났다。 고창으로 주크박스가 다 만들어졌다며 전화를 걸었다。
“꼭 한번 가서 직접 들어 보겠습니다。 그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거지요?”
<사랑의 인사>는 상희와 유나가 합주한 노래로 들을 수 있고 따로 녹음한 엘가의 다른 곡 <위풍당당 행진곡>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위풍당당。。。 그것까지는 생각 못 했는데、정말 더 잘 됐네요。공부나 입시로 지긋지긋해 할 학생들이 오고 가다 들을 수 있는 곳으로 딱인 걸요。위풍당당하게 사랑의 인사도 나누는 구림 학생들、상상만 해도 정말 멋집니다。”
내가 대답했다。
“아시죠? 선생님은 여기를 떠났지만 매일 하루에도 여러 번 제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는 걸요。것도 사랑의 인사로 말입니다。제자들은 물론 구림주민들이 다 선생님을 오래오래 기억할 겁니다。꼭 오세요 다시。우리、기다리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