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락교시대 07화

백조의 호수

by 차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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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백조의 호수--- 차이코프스키



못 보는 것보다 듣지 못해 더

답답하다

--- 헬렌 켈러



아침마다 집 앞 거리를 비로 쓸다가 옆집 미용실 주인을 알게 된 유나는 머리를 혼자 깎고 다듬어왔기에 미용실 간 적이 거의 없지만 아침 거리빗질의 인연으로 종종 미용실을 이용했다。드나든지 세 번째 쯤인가、그녀가 듣지 못하고 그래서 말도 잃었다는 걸 알았다。


“초등학생 때까진 멀쩡했지라。”


양순이 들려준 그녀의 사정은 참으로 딱하다。구림면에도 한 땐 무용학원이 있었다。문정은 특히 발레에 뛰어났다。오래 전 영화배우 문희를 꼭 닮아 예쁘기도 했던 초등학교 6학년생 문정이 심한 귀앓이를 겪었고 이 때 청각을 잃었다。듣지 못하니 말도 어눌해지기 시작했다。재능 있던 무용도 그만둬야 했고 중학생 때 두 번 음독 자살을 시도했으나 다행히 목숨은 살려낼 수 있었다。공부도 잘했던 문정은 학교에도 자주 빠졌고 결국 중학교를 다 마치지 못했다。집에만 있는 딸을 아버지는 전주의 미용학원에 보냈지만 이 또한 흥미를 가질 리 없었다。문정의 엄마가 딸 대신 미용 기술을 배웠고 배운 기술로 딸을 가르쳤다。


“어떤 부부도 저렇게는 못 할 겨。”


아버지는 자신의 취미인 사진을 딸에게 전수했다。새들을 찍으러 섬진강으로 갈 때마다 딸과 동행했다。양호 선생이던 엄마는 학교를 그만두고 미용실을 차려 딸도 미용일을 할 수 있게 했다。


“그럼、미용실 안에 걸린 두루미 사진들은 누가”

“물론 다 문정이 작품이제。”


5년 전 엄마는 암으로 돌아가셨고 그 후 그녀 혼자 미용실을 도맡아 꾸리고 있다。엄마가 돌아가시고 또 다시 한참을 방황했었다는 문정은 1년 만에 다시 문을 열고 미용실의 간판부터 바꿨다。


'Best regards,

'passage'


미용실 이름으로는 낯설다。<소녀의 기도> 영임의 추측에 고개를 끄덕인다。


“철새라는 뜻도 가지고 있지 않아예?”


처음엔 섬진강에서 주로 철새들을 찍어선가 했다。하지만 떠돌이 철새는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문정의 마음을 담았으리라。곱게 생긴 문정을 보며 든 생각에 울컥해지고 만다。그녀가 <쇼팽과 상드>로 처음 찾아온 날、유나와 문정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눴다。문정이 종이에 써서 물었다。


“미용실에도 음악을 틀어놓고 싶어요。”

듣지 못하는 그녀가 왜? 유나가 물을 것을 이미 알고 또 종이에 썼다。

“손님들을 위해서요。”

자기로 인해 침묵이 도는 미용실이 싫었다。유나는 알아차리고、

“특별히 들려드리고 싶은 노래가 있나요?”

이번엔 종이 대신 스마트폰을 꺼내 폰 펜으로 쓴 글씨를 유나에게 내민다。

“백주의 호수。”


그녀가 미용실로 돌아가고 유나는 바로 나를 찾아왔다。


“문정 씨는 그 백조의 호수를 아직 기억하고 있는 게 분명해요。발레를 배우며 무수히 들었을 그 음악。들을 순 없어도 기억에선 들리지 않겠어요? 더 생생하게 들릴 것 같은데。。。”


그녀가 마지막으로 들은 노래도 ‘백조의 호수’였을 것이다。꿈은 멈췄지만 사라지진 않았다。이루지 못해서 더 부풀려 키워져 있을 꿈은 이루지 못했기에 더 오래 남아 있고 그래서 이루지 못한 꿈은 늘 현재다。


“백조의 호수 전설도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요?”


소심하고 말 없고 우울했던 차이코프스키지만 어린 조카들과는 잘 어울렸다。조카가 읽던 동화를 보고 조카들을 위해 <백조의 호수>라는 짧은 노래를 지어 선물했다。몇 년 후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으로부터 발레공연에 쓰일 음악을 의뢰받자 그 백조의 호수를 떠올렸고 발레음악곡으로 완성했다。독일 전설을 담은 그 동화、마법에 걸려 밤에는 흑조로 변하는 오데트 공주를 그 마법으로부터 구해내려는 지그프리트 왕자의 애절한 사랑、그 사랑을 방해하는 악마로 인해 결국 공주와 왕자는 호수에 몸을 던져 죽게 되지만 죽은 뒤에도 사랑은 이어진다는 영원한 사랑의 전설 위에 사춘기소녀 문정은 자신의 처지를 입혀 이해했을 것이다。아름다움의 반대쪽엔 추함이 있지만 이 둘은 공존한다。백조의 아름다움을 질투질시하는 간교한 악마 흑조는 현란한 몸짓으로 현혹하고 유혹한다。그 몸짓은 고아한 백조보다 더 화려해서 토슈즈의 발끝 위에 얹힌 가녀린 몸을 어둠의 색으로 바꿔 입고 32회나 회전시키며 황홀경에 빠져들게 한다。펫페라고 하던가?

보여지는 것으로 정작 봐야 할 것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문정은 또 스마트폰에 옮겨 말을 건다。

“새를 찍을 때마다 난 새소리를 들어요。”

볼 순 없어도 들었던 새소리를 기억하며 새를 찍는다고 했다。


우리 동네 이장 양순 씨는 참으로 기발하다。

“백조는 어뗘?”

미용실 밖에 백조를 그려 보자는 제안이다。


“덕분에 나도 이젠 유식해지고 있구먼。베토벤도 쇼팽도 브람스도 알고 말여。오래 살다봉께 참말로。학교 앞에 엘가? 이름 맞제? 이름이 거시기 하긴 하지만 이렇게 좀 짤막하고 엥간혀야지。그건 그렇고 백조의 호수는 누가 지었다고? 이름하곤 참。차이코。。。 부부가 거시기 하다가 코풀다가 이름을 지었는감? 그 긴 이름은 도저히 내 머리로 외울 순 없을 것 같고 말이여。들어보니 그 노래는 백조가 작곡한 거구먼。백조한테서 힌트를 얻었다믄서? 안 그려?”


미용실 안에선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들리고 미용실 밖엔 백조가 춤을 추고 있다。그림을 그리던 날、문정은 내게 스마트폰을 내민다。


“미용실에 이름도 바꾸고 싶어요。”


passage를 백조의 호수로 바꿨다。어여쁜 머리를 하고 호수 위에서 춤을 추는 여인、바로 문정이다。그리고 손님들이다。떠돌이철새가 아닌 텃새로 안정을 찾은 듯한 미소를 나는 유나와 함께 바라본다。웃음만큼 빠른 전염은 없다。


“이럴 땐 말여。소리내서 웃는 거랑께。”


언제 나타났는지、우리 등 뒤에서 양순 씨의 화들짝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함박미소의 합창이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이듯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꿈은 이루는 게 아니라 담고 품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루어진 거나 다름없다。꿈꾸는 자는 그래서 늘 웃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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