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일본이 독립국인지 불안감이 엄습한다。오키나와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미군에 의한 범죄、성범죄가 반복되고 있지만 일본은 미일지위협정 때문에 제대로 문제화하지도 못하고 있다。이처럼 무능한 일본 정부를 보면 불안한 생각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스키토 사토시 교수가 쓴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거짓말>(양영철 옮김/<말글빛냄>에서 펴냄)
이 글에서、오키나와를 파주나 이태원으로、일본을 한국으로 읽게 된다。일본은 최근에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한국은 최근에도 미군들이 한국 소녀들을 살인한 사건이 있었고 한국 정부는 조치는커녕 반응조차 없다。남의 국민 보듯 해왔다。한국 정부뿐인가。이에 대해 서울 광화문에서 미군에 항의하는 시민들을 욕하고 구타해대는 이들이 있었는데、다 한국인들이었다。일본인도 그럴까。고개를 젓는다。아니 부끄럽다。
일본 69세 여성이 친정 시골집으로 이사 가서 살며 마당에 꽃 심고 밭을 가꾸는 소소한 일상을 올리는 유튜브를 보는 것으로 일본 여행을 대신하고 있다。그 유튜브의 글이 일본답단 생각을 한다。
“막 시작한 밭이 물에 잠기다。다시 한번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러한 자기와의 약속 같은 말을 난 참 좋아한다。이런 일본인을 보면 일본 정치인들은 침묵할지라도 미군의 만행에 항의하는 일본인들을 다른 일본인이 해코지하지는 않을 듯、생각을 해 본다。
한국은 더 심해져서 젊은 군인이 사고로 죽임을 당한 사건을 정부가 은폐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사고 관련 장성이나 장관을 빼돌리거나 더 높은 자리로 영전시키고 있다。미군의 문제가 아니라 자국민인 한국인에게까지 대처하기보단 은폐 또는 조작하는 것을 보면서 일본의 사토시 교수가 자문한、'일본이 독립국인지 불안감이 엄습한다。'는 말을、'한국이 과연 나라인지 자괴감이 몰아친다。'로 바꿔 나에게 자문하며 이런 정부로 인해 국민의 한 사람인 내 자신도 붕괴돼 가는 걸 느낀다。
일본을 더 잘 아는、한국으로 귀화한 세종대학의 오사카 유지 교수의 말을 들어 보면 그 69세의 일본 여성에 대해 생각이 바뀐다。'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라던 그 일본 유튜버 여성의 자신과의 약속은 어쩌면 '난 몰라。정치가 어떻게 되든 국민을 어떻게 하든 오로지 내 일에만。。。'
나 하나만 편하면 된다는 오불관언의 무관심일 수도 있겠다 싶다。호사카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불만은 많은데 정작 투표는 않고 못 본 척 하는 일본국민들。”
임포스터(imposter)라는 단어가 생각나게 하는 말이다。'남을 사칭하는 사람、사기꾼、가면을 쓴 사람' 을 말하는데、정부가 어떻게 하든 못 본 척 산다는 것은 가면만 안 썼을 뿐 다를 게 없다。한국 젊은이들도 이런 현상이 매우 강하게 번지고 있다。반면 60대 이상 노인들은 90%를 넘는 투표율을 보이는데 대부분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우려하는 결정과는 거리가 먼、오히려 상반된、눈앞의 자기 주변의 안일、그리고 지식인이나 권력자들에서나 보이는 사대、그러니까 미국이나 일본을 한국보다 먼저 우선시하는 이들이 60대 이상의 한국인에게 많다는 사실이다。이럴 바에는 차라리 정치무관심이 더 한국의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는 소신 아닌 소신을 나는 갖고 있다。나도 곧 70대다。
최근 일본 군마현에서 일본이 저지르는 전쟁에 강제동원돼 희생된 조선인들을 위한 추도비를 산산이 부숴버린 사건이 벌어졌다。이 비는 오래 전 일본인들에 의해 세워졌고 오랫동안 아무 탈 없이 보존돼 왔었다。매년 이 비 앞에서 추도식도 열었었다。그런데 왜 최근에 이런 일이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독일의 베를린에 설치된 소녀상(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한국의 10대 젊은 소녀들로、일본군인들을 위해 젊은 여성을 성노예로 바치게 한 역사를 잊지 말자 해서 세워진 동상)을 없애라는 베를린 주재 일본대사의 요청이 있었고 철거 전 다행히 한국 교포와 독일인、그리고 일본인들도 나서 막아내고 있는 사건이 떠오른다。더 한심한 일은、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한국정부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정부의 침묵은 일본의 만행을 용인하는 것이 된다。군마현의 조선인 추도비나 독일의 소녀상을 너희 일본인이 부숴도 된다는 용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과거의 일로 언제까지 그 과거를 울궈먹으려 하느냐、고 말하는 한국인의 수가 또 꽤 된다。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한국 권력자나 지식인들은 비굴하게 굴지 말고、일본 권력자나 지식인들은 치졸하게 굴지 않는다면 거의 형제남매 국가인 두 나라、한국과 일본은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고 산다면 두 나라 국민 다 좋은 것이 아닌가。 너무나 당연한데도 유치하고 유아적인가。
지난 작년에 한 달간 일본에 머물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며 '언제 다시 일본에 올 수 있을까?' 그 언제가 기약할 수 없어 먼 미래로 묘연하다。이 좋은 일본을 이젠 먼 훗날의 여행으로 미뤄야하자니 가슴 아프다。
오사카 난바 앞바다에서 바다 가운데 장대 위에 올라 서 있는 바다 새 한 마리를 보며 일본의 하이쿠로 마음을 끄적거려 본다。
그려 보지만
바람으로 지우네
시간도 함께
까뮈가 한 말이 소망을 담아 본 나의 미래를 울적하게 만들고 만다。
'용서하되 잊지는 말라。' 가 '잊지 못하니 용서할 수 없다。'
가해자 일본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다。피해자이면서 가해자를 두둔하는 한국인 상당수에게 하는 말이다。묻는다、나에게도 그들에게도。
“왜 치졸하고 비굴하게 살아야 하지?”
국가나 민족의 문제가 한 개인의 삶의 문제나 지향으로 질문은 연장된다。나 하나、내 가족만 편하자고 저렇게 살고 싶을까。근데 또 들린다。
“너나 그리 살어。”
한국인도 일본인도 팽배해 있는 오로지 나 혼자만의 편리주의!
뜬금없이 또 하이쿠를 읊으며 사랑을 붙잡는다 。
사랑은 왠지
이루어지지 않을
기적이 없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