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여차、가요 가요!”

by 차쌤

20。"에라여차、가요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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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100년'이라는 말은 메이지유신 이후 오늘날에 이르는 시기를 말한다。이 시대의 특징은 일본 역사를 일본만의 역사로 고찰해서는 충분치 않다는 점이 있다。아시아의 역사와 세계의 역사 속의 관계를 맺고 교섭을 버리기 시작한 시대였기 때문이다。아시아의 관계는 고대 시대 이래 계속되어 왔으며、그것을 계기로 세계화도 간접적인 관계를 맺어 왔다。그러나 근대에 들어서 양적、질적으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협상이나 교류의 시작인 전쟁과 침략、문화적 교섭과 통상무역 등이 관계를 맺는 방식에 따라 시대의 분위기가 크게 변화했고、또 그 속에서 근대 일본의 역사가 전개된 것이다。

---마쓰시마 에이이치가 쓴 <역사를 통해 본 고전의 현대적 의의> 중에서




위 글은 이 책에서도 여러 번 소개하고 내게 일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해 준 800 페이지가 넘는 매우 두꺼운 책인 <절대지식 일본고전>의 책 말미에 에필로그 같은 글에서 그대로 발췌했다。당연하고도 바람직한 글 속에서 나는 또 솔직하지 못한、적어도 한국에 대해 열등감을 우월감으로 덮으려는 일본 지식인들의 전형을 읽어낼 수 있었다。

엄연한 침략약탈을 교류교섭으로 둔갑시키는 얼토당토 않은 주장。。。 아시아의 역사를 얘기하면서 한국을 굳이 밝히지 않는 저의는 일본 정치인만이 아니다。학자들을 동원한 역사 왜곡날조들。

마쓰시마는 이 글에서 다카마쓰 고분벽화 발굴에 대해서도 썼다。이 지식인이 모를 리 없을 터、다카마쓰 고분은 1972년 농부가 우연히 발견한 700년대 전후의 고분이다。이곳 석실 내부에서 일본 최초로 채색벽화가 발견됐고 사신도와 인물화 그리고 천장에 천문도가 그려져 있었다。고구려 수산리 고분과 거의 흡사하다。일본 벽화의 인물은 동글동글 복스러운 고구려의 얼굴 그대로다。복장 역시 고구려식이다。700년대 당시 일본은 제련기술이 없어 한반도로부터 재료와 기술자들을 들여왔다。이를 일본학자들이 인정하면서도 고구려부터의 유입을 부정하는 모순을 보인다。이 모순이 자의적이라면 악의가 충분히 담겨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마쓰시마의 표현을 보면、아시아 또는 중국이라는 모호하기 그지 없는 글이나 말로 한반도와의 관계를 지우고 있다。

앞서 썼듯이 일본 국보1호였던 반가유 상에서도 그렇다。청동거울도 그렇고、일본 천황이 맥아더에게 보이며 자랑했다는 백제산 바둑판 등등。나라의 법룡사라는 절에는 백제 유물관이 따로 마련돼 있는데 그 안에는 한국에도 없는 한국 국보급 이상의 백제유물이 무척 많이 잘 보관돼 있다。나라의 동대사 뒤 정창원에도 백제유물이 가득하지만 공개하지 않고 있다。법륭사의 금당 벽화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이유를 알 수 없는 화재로 소실됐다。고구려 담쟁이 그린 그림이란 사실은 팸플릿 등 법륭사 어디에도 없다。중학교 때 나는 이 사실을 국사 시간에 배웠다。요즘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시 다카마쓰 고분으로 돌아가서、현재 고분의 벽화는 레프리카(원작의 사본)의 모사화가 그려져 있다고 한다。원본은 다른 곳에 잘 전시됐다고 믿고 싶은데 원본도 아닌 모사화의 사진촬영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다。왜?

일본 여행을 하며 만난 일본인들을 떠올린다。돗토리현의 작은 어촌마을 시모이치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게스트하우스의 여주인으로부터 특별초대를 받아 그녀의 아지트란 곳에서 떠오르는 해를 같이 맞아야 할 수 있었고 그녀가 타 준 차와 구워진 빵을 먹었다。게스트하우스에서 본 남편은? 그녀의 대답。남편출입 불가지역이라는 것。나는 정말 특별한 손님이 되었다。저녁에는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개천으로도 나를 안내했다。시모이치 역 안의 카페 주인 역시 여성으로 한국에서 왔다니 특별히 커피도 공짜로 주고 나를 환대했다。주변에 볼 것들을 알려 주며 재일 교포가 운영하는 식당도 소개했다。아들과 엄마가 꾸려나가는 고기구이 식당으로、엄마는 40년 전 경남 양산에서 이곳으로 재일 교포에게 시집 와 살고 있다。나에게 일본에 와서 산 40년의 세월을 4시간쯤을 짧은 대화로 풀어낸 그녀는 과일 배로 유명한 돗토리현이기에 돗토리산 배가 들어간 동치미로 한국음식을 일본인들에게 소개한다고 했다。1년에 한두 번은 한국에 다녀온다는 그녀는、

“한국이 이젠 낯설어요。”

말한다。시모이치 신사나 바닷가 식당에서 눈 인사로만 만난 일본인들로 시모이치에서의 일주일은 참으로 의미 있고 재미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자전거로 20분쯤 가면 꽤 큰 마을회관이 있는데 이곳에 온천장도 있다。이곳에서 매일 온천욕을 즐겼다。뜨거운 욕탕에 들어가 눈을 감으니 한국의 목욕탕과 비교됐다。지저분하고 시끄럽고。。。

문득 든 생각、대통령 등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이 국민의 혈세를 떼먹지 않고 국민을 위해 제대로 썼다면 한국의 도시나 지방 곳곳에도 일본 지방의 그 정도의 시설물은 이미 갖고도 남았을 텐데。

일본으로 유학 가서 30여 년 일본 대학교의 교수로 있는 한 분은、

“한국은 서울 등 큰 도시로 문화 시설들이 물려 있는 것에 비해 일본은 도시와 지방의 차이가 별로 느껴지지 않을만큼 공중시설이 많고 뛰어나다。”

반갑게 맞아준 시모이치의 일본인들과 헤어져 시모이치 역으로 가다가 '언제 다시 오려나?' 하며 작은 스케치북을 꺼내 스케치하고 또 하이쿠를 자작해서 떠나는 심정을 담는다。


떠나온 역에 떠나려 다가가니 붙잡는 인연


게스트하우스에 여주인은 자기의 아지트와 게스트하우스 벽에 벽화를 그려달라고 '다음'을 기약했다。난 돗토리현이 토끼전설로 유명하니 토끼 그림을 꼭 그려드리러 오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다시 오기엔 너무 꺼려지는、후쿠시마 핵오염수 투기방류로 그 약속은 먼 훗날로 미루고 있다。꼭 지켜지길 바라면서。

사람이나 국가 간의 관계에서 진심으로 솔직하다면 불미스러운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터、그 쉬운 그 '솔직함'이 왜 이리도 힘든 것인가。나는 나라 법륭사의 백제유물을 볼 때나、큐슈 미야자키 백제마을에서 본 1,300년 전 백제 목수들이 쓰던 목공구 천여 점을 볼 때나、

'우리 것을 다 훔쳐 갔네。'

라기보다는 한국에선 다 말살시킨 한국의 유물을 일본이 천년 넘게 다 잘 보관해 준 것에 대해 그지없이 고맙고 감사하다고 절로 두 손 모았다。

다카마쓰 고분은 가 보지 못했지만 보게 되면 이 감사한 마음은 여전히 똑같을 것이다。

오히려 보존보전하지 못하고 다 말살해버린 못난 한국에 그저 부끄러움이 먼저 든다。일본을 돌다 보면 한국의 옛 문화나 유물들을 거의 그대로 보고들을 수 있다는 게 매우 아이러니하지만 난 너무나 반갑고 감사하다。

일본 마쓰리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한국어들도 그 중 하나다。

“에라여차 여라여차、가요가요!”

일본의 지방도시 돗토리 마쓰리에 참가한 일본인들에게 그 뜻을 물었지만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돗토리 마쓰리에서 뿐만이 아니다。일본인들이 펼치는 축제에서 들려오는 한국말이 울컥 가슴을 전율케 했다。한국에서 버려진 옛 전통을 일본인들 스스로 축제로 삼아 매년 기념하고 있다는 사실에 반갑고 고맙다、무지。한국에 와서도 환청처럼 들려오던 일본인들이 신나게 외치던 우리말、

“에라여차 여라여차、가요 가요!”

20-2.png 돗토리현 마쓰리(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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