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지키지 못하는 약속

by 차쌤

22。아직 지키지 못하는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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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시대에 부유한 농민이나 가난한 농민이나 자신의 땅을 궁극적으로 후계자에게 넘겨주고 싶어하는 희망을 갖고 있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다。이런 이유 등으로 숲에 대한 통제권은 점차 숲에 보다 장기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의 손으로 넘어갔다。자신의 자녀들이 그 숲을 사용할 권리를 계승하리라고 예측하고 희망했기 때문이다。마을 공유지는 개별적 가구들의 분리된 계약으로 분할되었으며、이에 따라 공유지의 비극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중략)

단지 수동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지도자、위기를 예견하고 초기에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지도자、상의하달 방식으로 통찰력 있는 강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도자는 진실로 자신이 속한 사회에 커다란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용기 있는 시민、행동하는 시민도 하의상달 방식을 통해 사회를 변모시킬 수 있다。

도쿠가와와 쇼군、그리고 텔러 야생생물 구호 단체를 만들었던 몬테나의 내 친구들이 바로 자신들의 장기적인 목표를 위해、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총•균•쇠>의 저자、제라드 다이아몬드가 쓴 <문명의 붕괴>(강주헌 번역、김영사 발행)중에서



노리코 선생님께、


선생님、인사가 많이 늦었습니다。약속한 내 책 선물을 직접 찾아뵙고 드리려 하다 보니 미루고 있습니다。기억하시나요?

가로초등학교 학생들의 등굣길을 스마트폰으로 찍고 있던 나를 한 학생이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 노리코 선생님께신고하는 바람에 내게 황급히 뛰어오셨고 내가 한국에서 온 여행자요 학생들이 모여서 등교하는 모습은 한국에선 보기 힘든 일이라 정겨운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고 얘기했었지요。

선생님께선 한국말을 못 하시고 나는 일본말을 못 했지만 거의 비슷한 초보 수준의 영어로 해명과 사과(?) 그리고 만나서 반갑다는 얘기도 나눴었지요。나누는 내내 놀란 표정과 숨차 하시던 모습은 지금도 영역하고 본의와 다르게 선생님을 괴롭힌 외국인이 된 나는 정말 송구했답니다。초등학교 3학년 쯤 됐을 그 남학생이 무슨 말을 했기에?

한국은 북한과 나뉘어져 있고 서로 이념도 판이하게 달라 수상한 사람이 보이면 간첩으로 여기고 신고해야 하는 일을 어렸을 적부터 교육을 받아왔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은데 오히려 한국보다 고발 정신이 투철하단 생각도 들었답니다。왜 그럴까?、아직도 이 점은 이해하기 힘듭니다。다른 학생들은 인사하며 나를 반갑게 맞이해 줬고 나도 “곤니찌와!”하며 인사하다가 일본 어린이들의 밝고 맑은 표정을 간직하고 한국 가서도 보고 또 보려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었던 건데。。。한국 어린이들의 등굣길과 너무나 달랐거든요。

헤어지며 선생님께선 이름과 학교 주소도 알려 주셨죠。친필로 쓰신 쪽지를 아직도、그리고 오래오래 잘 간직하고 있을 겁니다。

책이나 편지를 등기로 붙이는 것보단 다시 일본에 가서 선생님을 만나 뵙고、그리고 짧은 영어지만 더 대화를 나누고 싶기에。

이런 중에 후쿠시마 핵오염수 투기방류의 뉴스가 세상을 시끄럽게 했고 중국이나 대만 그리고 멀리 남태평양의 발리 등 모든 나라들이 방류 반대를 하고 있는 중에 유독、유일하게 한국 정부만 찬성、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4년 전 한국의 휴전선을 구경하러 온 일본 여성을 길에서 우연히 알게 돼 카톡으로 지금도 연락하고 있기에 물었습니다。일본 여성도 반대하는 핵오염수 방류를 한국 정부가 찬성한다는 게 이 일본 여성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하면서 그녀가 하는 카톡、

“쌀도 이젠 믿을 수가 없어요。꼭 돗토리 현에서 생산한 쌀인가를 확인하고 사 먹어요。우리도 이런데。。。”

그녀는 또、

“편의점의 삼각김밥도 우린 믿지 못해서 사 먹지 못 하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생산지 표시가 현 단위로 구체적으로 명시해 왔던 일본인데 후쿠시마 핵오염 이후 일본산이라고 광범위하게 표기하고 있다며 일본 해산물을 무척 좋아하는 나를 생각해서인지 또 한 마디 합니다。

“생선들은 더 먹을 수가 없어요。”

그녀는 한국 정부가 중국도 수입 거절하는 가리비 멍게 등을 수입한다는 뉴스를 봤다고도 했습니다。

그런 걸 파는 일본도、그런 걸 수입하는 한국도 둘 다 이해할 수 없다는 말에 한국인인 내가 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이런 이유로도 선생님을 찾아뵙고 일본 큐슈를 두 달간 자전거로 다니며 쓴 여행기인 내 책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그리고 책에서 출판)를 드리지 못하고 뒤로、훗날로 자꾸자꾸 미루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데 일본 정부에선 숨기고 역시 한국 언론도 보도하지 않는 일본인 유튜브의 고발 사진들이 보입니다。죽은 엄청난 정어리 떼가 후쿠시마 인근 앞바다를 꽉 채우고 있는 사진들과 오염수치를 알리는 전문가의 보도、이런 것이었습니다。

문득、오래전에 읽은 책을 꺼내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미국의 지리학 교수로 <총•균•쇠>라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인 제라드 다이아몬드가 쓴 다른 책 <문명의 붕괴>입니다。내가 기억하고 있는 건、이 글 앞에 썼듯이 도쿠가와 시대에 숲 개발을 막고 공유지를 넓혀 자연을 보호한 바람직한 과거사례를 읽었기 때문입니다。당시 한국은 조선시대로 그런 모범적인 사례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미국인의 이 글로 한국과 일본 정치인들、한국인과 일본인이 지금 다시 본받고 실천해야 한다는 절박감은 이번 후쿠시마 핵오염수에 관한 일로 더욱 절실합니다。3、400년 전 일본 지도자와 일본 국민들이 보였던 모범사례、자연보호를 3、400년이 지난 지금은 발전시키지는 못하고 오히려 퇴보하여 자연을 피폐화하고 있는 것인가。심히 안타까워서입니다。

일본은 미국인 학자도 아는 과거의 좋은 사례로 모범을 보인 국가였는데 말입니다。

선생님을 다시 만나 이런저런 즐거운 얘기를 나누고자 할 시간은 현재로서는 무한정 길어질 것만 같습니다。

선생님께선 헤어지며 내게 이 말을 하셨는데、기억하세요?

“나를 놀래켰으니 꼭 갚으셔야 합니다。”

나는 처음 무슨 뜻인지 몰라 긴가민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알아차리고 일본어로 대답했었지요。

“모치론데쓰네(물론입니다)!”

거의 1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선생님도 기억하시고 나도 기억하는 이 마지막 인사를 다시 만나면 우린 이렇게 나누지 않을까요?

“약속을 지키셨네요!”

“소레대와、도젠데스!(그럼요、당연하지요!)”

선생님、꼭 다시 만나면 우리 이 인사를 하기로 해요。당장 만날 순 없더라도 이번엔 말이 아닌 편지에 약속을 담아 띄웁니다。만날 때까지 나는 일본어 공부를 다시 꾸준히 하며 우리의 재회를 기다리겠습니다。다시 만날 준비하는 남자로。。。

참 기억하세요、선생님?

시코쿠의 유스하라초에 있는 시골 도서관에 꼭 가 보고 싶다고 내가 말하자、

“나도요。꽤 높은 곳에 있다지요? 만나면 우리 같이 가요!”

“예。해발 1455m의 고원지대에 있는데 그래서 구름 위에 마을이라고도 부른대요。내가 사는 동네 가까운 곳에도 인월이 있습니다。달과 가까운 높은 지대라는 이름이지요。”

일본인에게선 보기 힘들게 선생님께선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내가 그 도서관은 안내할게요。한국에 가면 그 인월이라는 데를 안내해 주세요。나도 가 보고 싶어요。”

했었지요。

일본 말 중에 나는 '이치고 이치에(일기일회)'를 매우 좋아합니다。한 번의 인연、선생님과의 짧은 인연을 정말 소중히 여기며 다시 마음에 새깁니다。

그동안 건강하세요、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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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終)


일본과 한국、한국과 일본은 어느 나라、어디、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운 사이 아니니? 우린 형제、누이、남매라고 난 믿고 있어。근데 왜 이렇게 원수처럼? 이래서 한국인、일본인들이 좋을 게 뭐가 있겠니?

한쪽은 치졸하고、또 다른 한쪽은 굴욕적이라면 이런 식으로는 절대 가까워질 수 없지 않겠니? 치졸한 자와 굴욕적인 자를 우리가 배제하면 우린 참으로 가까운 이웃이 될 거야! 그렇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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