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정성 들여 끼니를 챙겨 먹는 것을 포기했다. 아침은 시리얼, 점심은 어제 저녁으로 먹다 남은 치킨과 컵라면, 저녁은 어제 엄마가 해 주고 가신 다 식은 김치찌개. 분명 저녁은 제대로 먹자고 다짐했는데 잠투정 심한 두 아이를 재우다가 지쳐버렸다. 혹여나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겨우 재운 아이들을 깨울까 싶어 김치찌개는 데우지도 않았다. 차갑게 식은 김치찌개는 정말이지 니 맛도 내 맛도 아니다. 그냥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먹을 뿐 육아전선에 뛰어든 뒤부터 밥맛을 잃은 지 오래다. 맛집을 찾아가고 먹는 걸 좋아하던 나였는데 요즘은 먹는 게 그다지 즐겁지 않다.
내 밥 챙겨 먹는 것도 이처럼 일인데 이제는 아이 밥도 챙겨야 한다. 이유식은 시판길을 걸었기에 밥 먹이는 게 일이었지 차리는 건 쉬웠는데 유아식으로 넘어간 지금은 그야말로 매 끼니가 숙제다. 내 밥이야 대충 먹는다 치더라도 아이 밥을 어찌 그렇게 하겠나. 아이 밥만큼은 고기나 생선, 야채를 매 끼니마다 챙겨주려고 노력한다. 물론 이렇게 말하지만 인스타나 블로그에 올라오는 열혈맘처럼 국, 반찬 2-3개의 식판식을 차려준 건 손에 꼽는다. 차려봤자 국 하나에 반찬 하나, 혹은 볶음밥 같은 한 그릇 음식에 불과하나 내가 나를 위해 차리는 밥상에 비하면 진수성찬이다.
우리 집 첫째는 감각이 예민한 편이라 이유식 초기부터 후기까지 꽤 오랜 시간 힘들었다. 그래도 이유식 후기부터 유아식 초기까지만 해도 대체적으로 잘 먹는 편이었는데 최근 들어 잘 못 먹는다. 그런데 이 못 먹는다는 게 예전에는 먹는 양이 적어 문제였다면 지금은 편식이다. 새로운 음식은 아예 도전조차 하지 않고 예전에 먹었던 음식도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먹고 뱉는다. 오로지 콩, 두부만 먹는다. 콩만 쏙쏙 골라서 먹는 모습을 보면 기가 차면서도 웃기다. 요 꼬맹이가 벌써부터 저렇게 음식을 가리다니... 예전에는 잘 안 먹으면 치즈나 김이 치트키였는데 요새 들어 그마저도 안 통한다. 안 먹으려는 음식에 치즈 올려서 먹여주려 하면 치즈만 달라 난리다. 김에 싸서 주면 뭐든 잘 먹었는데 이제는 받아먹다가도 주르륵 뱉어버린다.
상황이 이러니 밥 먹는 게 일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내 밥도, 아이 밥도 챙겨 먹는 게 일이다. 누가 알아서 떡하니 챙겨서 먹여주면 좋겠다. 왜 인간은 세끼나 먹어야 하는 걸까? 한 끼만 풍족하게 먹고 하루를 버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끼나 챙겨 먹어야 하는 비효율적인 인간의 몸이 한탄스럽다.
아직은 아기들이 어려서 그렇겠지. 좀 크고 나면 남편과 여유롭게 저녁을 준비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거야. 외식도 자유롭게 하고 말이야. 얼마 전에도 남편과 이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남편이 가장 가고 싶은 곳은 불막열삼,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선산곱창이었다. 정말이지 지글지글 구워서 소맥이랑 같이 먹고 싶다. 그러면 지금 쌓인 육아스트레스가 싹 사라질 것만 같은데...
입맛 없다는 말 취소다. 갑자기 군침이 확 돈다... 우리 둘의 위시리스트를 꼭 이룰 수 있길 바라며... 내일은 그래도 아이 것만 챙기지 말고 내 끼니도 잘 챙겨야겠다. 육아도 밥심일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