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확신
이미 난 결혼 1년 3개월 전에 했다. 결혼 준비에서 집 구하기만큼이나 힘들었던 게 청첩장 돌리고 밥 사기였다. 결혼 준비 전까진 난 사람들이랑 만나서 얘기하면서 시간 갖는 걸 즐긴다고 생각했는데, 결혼 후 6개월간 아무 약속도 잡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수많은 식사 자리에서 가장 지치는 것 중 하나가 같은 질문의 연속이었다. 집은 구했냐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냐 준비하면서 안 싸웠냐 등등 다양한 질문에 처음엔 당황도 했지만, 나중엔 스크립트 읽듯 논리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반복 학습했다.
그중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어떻게 결혼에 확신을 가졌냐이다. 평소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었지만 반복되는 질문에 점점 논리적인 답을 찾아갔다.
사람들이 하는 가장 잘못 생각하는 것은 완벽한 사람을 만나면 결혼하려고 하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잘못됐다. 어떤 사람이건 완벽할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완벽한 남자가 아니기에 그건 욕심이다. 완벽한 사람이 있다 한들 나랑 만나줄 리도 없다. 그래서 누굴 만나더라도 항상 참을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남은 50년의 세월 동안 끙끙거리고 살아갈 것인가.
그래서 내가 참고 넘어갈 수 있는 포인트 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마누라가 옷에 관심은 없어도 괜찮지만, 분홍 토끼 캐릭터 양말 신는 건 안된다. 와이프가 물에 젖은 수건을 아무 곳에다 놓는 것에 예민하다면 그 정도는 기꺼이 따를 수 있다. 상대의 빡침 포인트에 합의 및 조정이 가능하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참아야 하는 포인트가 대수롭지 않다면 그게 나에게 완벽한 사람이다.
지금의 와이프와 처음 만났을 때도 남들이 말하는 첫눈에 반하는 감동은 없었다. 물론 그런 사람도 많겠지만 나의 역사엔 성공한 적 없는 연애다. 어쨌든 사귀고 나서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판단의 시간이 온다. ‘아 이 친구랑 계속 연애하고 싶다.’, ‘길어봤자 3개월이구나’ 등등 지금의 와이프는 그 판단에서 살아남았고 생존 그 이상으로 나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화장에 소홀하고 편한 옷만 입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반대로 헤어지면 ‘내가 손해구나, 계속 내 인생에 붙잡아둬야겠다.’ 는 생각을 했다. 내가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이 들다 보니 어쩌면 이기적(?)으로 결혼에 대해 확신을 갖았다.
결혼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된다면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금은 내 옆에서 와이프가 세상모르고 깊이 잠들었지만, 내일 맛있는 고기반찬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