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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빵 Aug 24. 2023

정국이의 여름방학

전세 보증금이 올랐대요.




오늘은 정국이의 여름방학 첫날이다. 중학생이 된 후 맞는 첫 방학을 자축한답시고 엄마를 졸라 가장 좋아하는 고추당추바사삭 치킨도 배달시켜 먹었다. 방학이라 기분도 좋고 배도 부르겠다, 침대에 눕자마자 스르르 잠이 들었지만 치킨과 함께 콜라를 너무 마신 탓일까? 정국이는 잠에서 깨 화장실로 향한다.


그런데 화장실 옆 안방 문에서 부모님 목소리가 들린다.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뭐? 집주인이 전셋값을 1억이나 올려달라고 했다고?

아니, 1억이 뚝딱 어디서 나와? 집주인이랑 잘 이야기해 봤어?”


“그것도 사정 봐준 거래요. 부동산에 물어 시세 알아봤더니 그새 2억 가까이 올랐대요. 그러게 내가 준호(정국이 외삼촌) 말 듣고 4년 전에 대출 좀 받아서 이 집 사자고 했었잖아요. 지금 전셋값보다도 싸게 살 수 있었는데...”   

 

“이제 와서 다 내 탓이라는 거야?!”     


“솔직히 당신 황소고집 탓이지! 누구 탓이긴요!”     


“아니, 이 사람이!”     


부모님의 언성은 점차 높아지고 정국이의 마음도 돌덩이가 들어찬 것처럼 무거워진다. 침대에 다시 누워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억지로 감으니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린다. 잠은 이미 달아난 지 오래다.


전세금이라는 것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억이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돈인 듯하다.     


‘1억이라니!’     


정국이가 가끔 사치랍시고 사 먹는 감자 박힌 도깨비방망이 핫도그가 2천 원이다. 1억이면 도깨비방망이가 5만 개다. 하루에 한 개씩 먹어도 130년이 넘게 걸린다. 아무리 장수한다 해도 평생 다 먹지도 못할 양이다.

   

그런 어마어마한 돈이 우리 집에 있을 턱이 없다. 부모님은 항상 절약을 입에 달고 사는 분들이다. 근데 왜 돈이 없을까. 질문의 꼬리는 다시 머리를 문다,     



'만약에 1억을 마련하지 못하면 난 이제 이사를 가야 하나?'


'중학교 입학해서 이제 겨우 한 학기 동안 친구들 좀 사귀었는데...'


'이사를 가면 내 방도 없는 것 아닐까.'


'부동산이 뭐길래 이제 겨우 중학생인 날 이렇게 슬프게 하는 거야.'


'방학이라 좀 신나나 했더니 아이고 내 중딩 팔자야.'


'우리 집은 왜 집주인이 아닌 거야.'


'그럼 집주인은 지금 어디 살고 있는 거야.'


'매일 핫도그를 먹고도 장수할 수 있을까?'


'으쁘능 왜 음므믈을 안 드꼬.......' 

    



드르렁~     




다음날 아침 7시 50분, 정국이는 8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뜨고 말았다. 잠꾸럭지 정국이에게 결단코 이런 적은 없었다.     


형언할 수 없는 심란한 기운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다. 거울을 보니 어제의 눈물바람 때문에 눈도 조금 부어있다. 거실에 나가보니 엄마가 정국이를 위해 (정국이가 싫어하는 브로콜리와 피망이 잔뜩 들어간) 오믈렛을 만들고 있다. 정국이의 부은 눈을 엄마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정국아 너 눈이 왜 이렇게 부었니! 너 울었니? 무슨 일이야? 브로콜리 먹기 싫어서 그래?!”     


“아! 나 이제 애기 아니라고요! 흐엉~”     

결국 또 눈물이 터진 정국이는 어젯밤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는다.


엄마의 얼굴이 일순 어두워진다.      

“정국아, 너까지 알아야 하는 일은 아닌데.. 마침 조금 전에 집주인이랑 통화했어. 전세금 5천만 원을 올리는 대신 반전세로 월세를 한 달에 30만 원씩 내기로 합의했어.”     


“반전세요? 그게 뭔가요? 훌쩍”     


“반전세? 전세와 월세가 합해진 거지 뭐. 내가 왜 너한테 이런 얘기를 왜 하고 있대니. 넌 아직 그런 거 몰라도 돼. 그런데, 정국아. 미안한데 너 이번 방학부터 시작하려고 했던 피겨스케이팅 레슨 말이야. 1년 정도만 미루면 어떨까?”


이미 예쁜 스케이트와 프릴이 잔뜩 달린 피겨 연습복까지 점찍어둔 정국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한 달에 30만 원의 지출이 더 생겼으니 부모님 입장도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정국이는 슬픈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 근데 나중에 또 전세가격이 오를 수도 있어요?”     


“설마 그러기야 하겠니! 집주인도 양심이 있지.”

라고 답하는 엄마의 표정에도 불안이 스친다.     


“미래에도 지금처럼 시세라는 게 있을 텐데 집주인이 부처님도 아니고 무턱대고 자비를 베풀 리가 없잖아요.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는 거 아니에요?”

소심하게 말대꾸를 던지지만 엄마는 답이 없다.     


‘부모님만 믿고 있다간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리저리 이사 다니게 될지도 몰라. 최소한 나라도 부동산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겠어. 근데 부동산이 뭐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그러다 문득 정국이 머릿속에 준호 삼촌이 스쳐 지나갔다. 준호 삼촌은 엄마의 동생이자, 미혼인지 비혼인지 암튼 혼자 사는 노총각이라고 했다. 엄마가 아빠에게 준호 삼촌이 부동산에 해박하니 삼촌 말을 좀 듣자고 여러 번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아빠가 엄마나 외삼촌 말을 진지하게 들은 적은 없지만 말이다.     


“엄마! 나 이번 방학에 삼촌 집에 머물러도 돼요?”     


“응? 영어학원 방학 특강 있지 않니?”


“어차피 다 아는 내용들이에요. It's a piece of cake. 학원은 한 달 쉴래요. 혼자도 할 수 있어요. I can do it.”     


“뭐 삼촌도 너 방학하면 자기 집에 항상 보내라고 말은 했는데.. 뭐 이 기회에 삼촌이랑 더 친해지면 좋긴 하지. 내가 지금 준호한테 전화해 볼게.”

엄마는 뭔가 휴가를 얻은 것처럼 신이 난 표정이다. 번호를 누르는 엄마의 손길이 민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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