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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빵 Aug 27. 2023

한국에서 용적률이 가장 높은 건물

가장 높은 건물이 가장 빽빽한 건물일까


“삼촌, 그럼 한국에서 가장 용적률이 높은 건물은 뭔가요? 삼촌이 보여주신 표에서 가장 높은 강남역 건물(1,096%, 삼성생명 서초타워)이 그 주인공인가요?”     


“그 건물도 꽤 용적률이 높은 편이지만, 1등은 아니야. 한국의 용적률 1등 건물은 서울시청 광장 옆에 있는 프레지던트 호텔이란다. 지하 3층, 지상 27층 규모로 용적률이 무려 1,930%에 달해.”     


“흐엑. 거의 2,000%네요.”


“그렇지. 땅 면적의 20배가량을 뻥튀기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보면 되는데, 지하층은 용적률 산정에 포함되지 않으니 실제 활용되고 있는 바닥면적은 20배를 훌쩍 넘겠지?”     


“근데 왜 최신 건물들도 프레지던트 호텔처럼 2,000%로 짓지 않나요? 용적률이 높을수록 바닥면적이 늘어나니까 건물주 입장에서 이득 아닌가요? ”     




“예리해! 현대의 건축기술로 2,000% 이상 용적률의 건물을 짓는 건 그닥 어려운 일도 아니지. 그런데 도시가 그런 高용적률 건물로만 가득 찬다면 어떻게 되겠니?”

정국이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다.


“빽빽하고 답답한 느낌이 들긴 하겠어요.”     


“그래서 국가에서는 구역별로 용적률의 상한을 정해놓고 있단다.”     


“그럼 프레지던트 호텔이 있는 구역이 2,000%로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구역이에요?”     


“그것도 아냐. 사실 한국에 용적률 2,000% 수준의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땅은 없어. 이게 도시의 역사를 함께 이해해야 해. 1970년을 기준으로 도시의 용적률과 건폐율을 제한하는 규정이 생겼는데 프레지던트 호텔이 공사를 시작한 시점은 그러한 규정이 생기기 전인 1969년이야.”

 
“아, 그러니까 제한 규정이 없었던 시절을 활용한 셈이네요?”     


“어찌 보면 그렇지. 합법보다 달콤한 게 무법이랄까?”     


“그런데 삼촌, 누구보다 한국인들이 셈에 밝잖아요? 왜 1970년 전에 미리미리 프레지던트 같은 건물을 많이 지어놓지 않았나요?”

    

“프레지던트 호텔이 지어진 시점은 지금부터 무려 50년도 더 전이란다. 경제가 발전 중이긴 했지만 지금처럼 선진국은 아니었지. 당시에는 고층 건물을 짓기 위한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했어. 일례로, 요새는 엘리베이터가 거의 모든 신축 건물에 들어가지만 당시의 엘리베이터는 돈이 많이 드는 첨단 시설이거든. 당연히 고층 건물을 짓기가 쉽지 않았겠지?”      


“아, 그랬겠네요. 당시 기준으로는 호사스러운 고층 호텔이어서 통 큰 투자가 가능했겠어요.”

 
“맞아. 그래도 네 말이 틀린 건 아냐. 프레지던트 호텔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용적률 1,300~1,800% 수준의 건물들이 꽤 남아있거든. 이런 초 고(高) 용적률 건물들은 그 시절 서울의 독보적인 중심지였던 을지로나 종로 등 구도심에 몰려있단다. 강남이나 여의도 등은 개발이 시작되지도 않은 시절이었거든.”


“근데 시간이 가면서 건물은 낡아갈 테고, 허물고 다시 지으면 지금처럼 높은 용적률을 활용할 수 없으니 건물주들도 고민이 많겠어요.”     


“너 내 머릿속 커닝했니? 네 말처럼 건물을 허무는 순간 깐깐한 현행 규제에 따라 건물을 지어야 하는데, 현행 제도 하에서 기존과 같이 건폐율을 90% 가까이 활용하고 용적률 1,000%가 훌쩍 넘는 매머드 건축물을 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제 말이요.”

정국이가 어깨를 으쓱거린다.     


대지의 크기는 당연히 변화가 없을 테니 건물의 용적률 하락은 곧 그 건물의 임대 수익도 줄어듦을 의미하지. 그러니 노후가 극심해진 도심의 고 용적률 노후 건축물은 통상 리모델링을 통해 수명을 연장한단다.종로의 삼일빌딩이 대표적인 예야.”     


“사밀빌딩이요?”     


“삼, 일! 삼일빌딩은 1970년에 지어진 31층 규모의 빌딩이야. 왜 이름이 ‘삼일(31)’빌딩인지 알겠지?

준공 당시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고 해.”     



과거의 삼일빌딩, 서울역사박물관


“겨우 31층으로요? 요새는 아파트도 30~40층인데.”

     

“격세지감이지. 암튼 50살이 훌쩍 넘은 이 건물의 용적률은 프레지던트 호텔에 크게 뒤지지 않는 1,700%에 달하는데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통해 새것과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어. 용적률은 유지한 채, 새 건물이 되니 임대 수익은 올라갈 테고, 환경적으로도 재건축에 비해 도움이 되겠지?”    


 


https://newsimg.sedaily.com/2021/04/21/22L664KYQM_7.jpg


리모델링을 완료한 후 머릿돌을 추가해 삼일빌딩에는 두 개의 머릿돌이 있다.









✪ 흥미 충전


- 건폐율 100%가 넘는 건물


용적률의 짝꿍, 건폐율도 더 자세히 이해해 봐요. 건폐율이란 대지면적 위에 건축물이 들어선 면적의 비율을 뜻합니다. 100평짜리 땅에 건축물이 들어선 부분은 60평인 경우, 해당 필지의 건폐율은 60%라고 볼 수 있습니다.     


건폐율은 대지면적 대비 건축물의 ‘수평 투영 면적’을 기준으로 해요. 수평 투영 면적을 쉽게 설명하자면 하늘 위에서 바라본 면적, 위성사진이나 드론에 찍힌 면적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1층의 바닥면적보다, 2층의 면적이 더 크다면 2층의 면적이 그 건물의 수평 투영 면적이 되는 거지요.     


그렇다면 건폐율이 100%를 넘는 것도 가능할까요? 한 층의 면적이 땅보다 더 큰 건물이라니! 얼핏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그런 건축물도 있습니다. 종로에서 시작해 을지로를 관통하고 있는 세운 상가는 건축물의 일부가 대지를 넘어 도로 위까지 나와 있답니다. 그러다 보니 수평투영면적에 따른 건폐율이 100%를 넘기도 하는 것이지요. 세운상가뿐만 아니라 악기로 유명한 낙원상가 역시 건축물의 상당 부분이 도로 위에 지어졌어요. 물론 이들은 서울시의 도시계획에 따라 예외적으로 지어진 터라, 이런 건축물이 또 지어질 확률은 희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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