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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빵 Aug 29. 2023

용도지역, 자리에 맞는 건물이 되어라.

땅과 쓰임을 매칭하라.



서울시청은 명동에서 걸어서 금방이다. 몇 분 걷지 않아 푸릇하게 잔디가 돋아난 시청 광장이 보인다.


“삼촌, 아까 토지의 영속성 관련해서 사진으로 봤던 서울시청이네요! 오잉? 저 건물은 용적률 대장 프레지던트 호텔 아니에요? 진짜 육중하다.”

여기저기 공부했던 건물들이 보이자 신이 난 정국이가 소리를 높인다.     


“눈썰미 좋네! 뒤돌아서면 까먹을 줄 알았더니 제법이구나.”     


삼촌과 정국이는 광장 한켠에 자리를 잡는다. 무더운 날씨지만 높은 건물들이 만든 그늘 덕에 시원하다. 삼촌은 언제 준비한 건지 보온병에 담아온 차가운 수박주스도 건넨다.     


“정국아 여기가 좋겠다. 이거 좀 마셔.”

정국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꿀꺽꿀꺽 소리를 내며 수박주스를 삼킨다.


“야무지게도 먹는다. 오늘 도심에 나와보니 어때?”

삼촌의 질문에 정국이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본다.     


“높네요.”     


“높다구? 아…주변 건물들 말이구나. 시청 근방은 서울의 주요 번화가 중의 하나로 호텔이나 사무용 빌딩들이 주로 모여 있어. 상업지역의 특성 중 하나가 높고 빽빽한 건물이라고 볼 수 있지"    



고층 건물이 즐비한 상업지역은 한낮에도 그늘진 곳이 많다.



“상업지역이요? 사자성어인가요?”     


“아, 상업지역은 용도지역의 하나야."


"'용도지역'은 또 뭔가요?"


"‘용도지역’이란 땅의 쓸모에 맞게 그 용도를 지정해 주는 제도야. 예를 들어, 교통이 발달하고 사람들이 몰려 고층 빌딩이 필요한 곳은 ‘상업지역’으로 정하여 용적률이나 건폐율, 최고 높이 등의 기준을 완화(높은 건물 ok. 빽빽한 건물도 ok.)해 주고, 경관이나 녹지, 문화재 등을 보호할 필요가 있는 곳은 건축물의 허가 기준이나 용도를 더 깐깐하게 하는 식으로 땅에 적합한 쓰임을 지정해 주는 거지.”    


“알 듯 말 듯 하네요.”     


“어렵지? 그럼 가정을 해볼까? 정국이네 집이 여기에 있으면 어떨 것 같아?”      


“맛집이 많은 건 좋지만 계속 살기엔 시끄럽고 정신없을 것 같아요.”     


“그래. 상업지역은 유동인구도 많고, 차량 통행량도 많기 때문에 유독 복잡하지. 게다가 높고 빽빽한 건물에 가려져 대낮에도 실내에 햇빛이 들기 어려울 수도 있고 말이야.”     


“빛이 없는 것도 싫어요. 창살 모양 따라 생긴 햇빛 조각이 얼마나 예쁜데요.”     


“갬성적인걸! 이번엔 공업지역을 생각해볼까? 집 바로 옆에 공장이 있다면 어떨까?”     


“트럭 소리, 기계가 둥두탕탕거리는 소리, 굴뚝 연기 때문에 별로일 것 같아요. 아, 물론 과자 공장이라면 예외예요. 시끄러운 것도 꾹 참고 매일 견학을 가서 시식 간식을 맛보겠어요.”  

   

“그.. 그래.. 덧붙이자면 공업지역은 생산에 필요한 물이나 전기 사용량이 많고 트럭이나 중장비 등 대형 차량의 접근도 용이해야 하기 때문에 그에 특화된 계획이 필요할거야. 집들이 주로 지어지는 주거지역도 마찬가지야. 주거지역은 무엇보다 살기에 쾌적해야겠지? 매일 일정 시간 이상 햇빛이 들어야 하고 소음도 일정 기준을 넘어선 안돼. 아이들이 통학할 수 있는 유치원이나 학교도 필요하고 인근에 파출소나 소방서도 있어야겠지. 이렇듯 목적에 따라 필요한 시설이나 환경도 달라지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인 토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용도지역이란 기준이 필요한 셈이야”     


“그래서 공장은 공장끼리, 집들은 집끼리, 빌딩들은 빌딩들끼리 모여 있던 거였군요. 왜 비슷한 건물들끼리 모여 있는지 궁금했었거든요.”         



연희로25길


“그렇지! 용도지역에 따라 비슷한 기능과 층수의 건축물들이 모이게 돼. 위 사진을 보면 길을 기준으로 오른쪽과 왼쪽의 차이가 느껴지니?”     


“네. 오른쪽은 가게도 있고 4~5층짜리 건물들 위주인데, 왼쪽은 정원 딸린 단독주택만 있네요? 부잣집 같아요.”     


“그게 바로 용도지역 때문이야. 주거지역은 전용주거지역, 일반주거지역, 준주거지역으로 세분되는데, 오른쪽은 ‘제2종 일반 주거지역’이고 왼쪽은 ‘제1종 전용 주거지역’이거든. 왼쪽인 ‘제1종 전용주거지역’은 특히나 까다롭게 관리되는 지역이야. 서울의 경우 건폐율 50% 이하, 용적률 100% 이하, 층수도 2층으로 제한되니 사실상 지을 수 있는 건물이 단독주택 정도로 한정되어 있겠지.”     


“저는 저런 동네가 단순히 단독주택을 선호하는 부유한 사람들이 모여 살아서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제도적으로 제한이 있는 것이었군요!”                                      



서울시 조례에 따른 제1종전용주거지역 건축기준




“그렇지! 더불어 주거와 상업 기능이 혼재된 지역, 주거와 상업, 공업 기능이 모두 필요한 용도지역도 있어. 그런 곳 역시 준주거지역이나, 준공업지역과 같은 용도지역으로 구분되어 관리된단다.”

정국이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국토계획법상 용도지역별 용적률



“용도지역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볼까? 서울에는 크고 작은 산이 많잖니. 평지와 산이 접하는 곳의 집들은 대부분 4층을 넘게 건축하지 못해. 이 역시 용도지역의 제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만약 이 제한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되도록 높게 집을 짓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높은 곳에서 바라볼수록 숲의 경치가 멋질 테니까요.”     


“맞아! 너도나도 산자락에 고층 건물을 지을 거야. 그런데, 그렇게 되면 그 건물 뒤에 위치한 건물은 우거진 숲을 볼 수 없겠지? 소수가 산과 숲이 주는 혜택을 독점하게 되어버리는 것이지.”         


“아! 그런 문제까지는 생각도 못했어요.”     



포털 지도를 ‘지적 편집도’로 선택하면 용도지역을 확인할 수 있다






✪ 흥미 충전 


- 상업지역이나 준공업지역에는 집을 지을 수 없나요?     


상업지역이나 준공업지역에도 공동주택을 지을 수 있어요. 이들 지역은 높은 용적률과 건폐율 기준 덕에 밀도 높은 건축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반주거지역보다 사업성이 좋은 것으로 평가받곤 해요. 오히려 최소 용적률 기준 때문에 마당이 넓은 단독주택처럼 용적률이 너무 낮은 건물을 짓기가 어렵습니다. 더불어 상업지역 같은 경우는 각종 편의시설이 잘 발달되어 있고 역세권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수요층으로부터 인기도 많지요.


그런데 주의할 점도 있어요. 상업지역이나 준공업지역은 원래부터 집을 짓기 위해 지정된 용도지역은 아니기 때문에 채광 시간, 건축물 간 간격 등이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거나, 주거지역에 비해 대폭 완화되어 있어요.

그래서 주택임에도 영구적으로 해가 들지 않는 영구 음영 세대가 될 가능성이 있어요. 지금은 앞에 낮은 건물이 있어 해가 잘 들어온다 해도, 언제 창문 바로 앞에 고층 빌딩이 들어설지 모르는 거지요. 이러한 용도지역 특성도 잘 고려해야겠지요?          



바로 앞에 신축 중인 고층 건물로 채광이 불량해진 건물(왼쪽)




✪ 흥미 충전 


- 주요 상업지역_서울의 3대 도심     


광화문과 시청, 명동 일대를 아우르는 시내 도심부(CDB, Central Business District), 강남권(GBD, Gangnam Business District), 여의도(YBD, Yeouido Business District)를 서울의 3대 도심이라 부릅니다. 용도지역이 상업지역인 땅들이 몰려있는 주요 상업지구지요.


뜬금없이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 중 하나인 애플 이야기 좀 해볼까요? 애플스토어 1호점은 강남의 가로수길에, 2호점은 여의도 ifc몰에, 3호점은 명동에 위치합니다. 세계적 기업인 애플 역시 유동인구가 몰리는 상업지역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단 사실이 재미있지 않나요. (가로수길 용도지역 자체는 상업지역이 아니지만, 압구정과 신사를 잇는 범 강남 상권에 속해 상업지역의 성격을 강하게 띄는 지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의도 ifc몰 애플스토어





짤막 퀴즈


태민이, 원영이, 소연이, 케빈은 현재 용적률이 100%인 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제반 환경의 수준은 비슷하지만 용도지역은 모두 다르다. 누가 가장 경제적으로 이득인 재건축이 가능할까?


ⓛ 태민- 제2종 일반주거지역

② 원영- 제3종 일반주거지역

③ 소연- 일반상업지역

④ 케빈- 준주거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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