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발달과 기술 발전의 컬래버래이션
삼촌은 부동산 시장 조사를 위해 노원구 상계동에 임장을 왔다. 며칠만에 삼촌 껌딱지가 된 정국이도 함께다.
서울에서 가장 아파트가 많은 동네답게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꼬마, 학원 가방을 든 어린이, 장바구니를 든 아저씨, 강아지를 태운 유모차를 끄는 할아버지 등이 눈에 들어온다.
“이 동네도 아파트가 많네요.”
“한국은 어딜 가나 아파트 참 많지. 정국아, 넌 아파트의 기원이 뭔지 아니?”
“글쎄요. 그러고 보니 고개만 돌리면 원래 있었다는 듯 어디에나 아파트가 있어서 딱히 생각해 본 적도 없네요.”
“그래. 당연히 그럴 수 있어. 최초의 아파트는 로마시대의 ‘인술라’라는 건물이래. 마침 삼촌이 오늘도 셔츠 주머니에 인술라 사진을 가지고 왔지.”
삼촌이 오늘도 도라에몽마냥 주머니를 뒤적인다.
“어때? 요새 보이는 아파트랑 비슷한 것 같니?”
“음... 삼촌 말을 듣고 보니 좀 비슷한 것도 같네요.”
“아파트는 한정된 토지에 많은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창안되었어. 토지의 부증성 때문에 물리적으로 땅을 늘리는 것이 불가능하잖니. 한정된 토지를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어떻게 한댔지?”
“건물을 여러 층으로 짓는다고 했어요. 식판은 작은데, 빵과 치즈, 고기 패티와 양상추, 토마토, 양파, 해시브라운에 소스까지 한 번에 먹기 위해서는 햄버거로 먹을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되게 비싼 햄버거 같구나. 아무튼 식판이 땅이고, 햄버거의 각 재료들이 건물의 한 층을 의미하는구나. 좋은 비유네. 사람들이 점차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도시가 발달하게 되었고,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의 주거 해결책으로 고안된 것이 아파트의 기원이라 볼 수 있어. 산업혁명(18세기 후반부터 약 100년 동안 유럽에서 일어난 생산기술과 그에 따른 사회 조직의 큰 변화)은 이 추세를 본격화 시켰지.”
정국이는 골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묻는다.
“근데 어떻게 저렇게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는지 궁금해요. 모두 잠든 밤에 아파트보다도 덩치가 큰 걸리버라도 와서 몰래 짓고 간 건가요?”
“헙…그거 국기기밀인데..”
삼촌의 흔치 않은 너스레에 정국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머쓱해진 삼촌이 머리를 긁적이며 설명을 이어간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관련이 깊단다. 대표적으로 ‘철근콘크리트’ 기술의 발전이 고층 건설의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어. 철근은 당기는 힘에 강하고 콘크리트는 누르는 힘에 강한데, 이 두 가지 특성을 더했으니 밀고 당기는 힘 모두에 강하겠지?”
정국이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여기에 더해 한 가지가 더 있어. 정국이는 고층 빌딩 하면 뭐가 생각나니?"
“글쎄요. 전망대?”
“힌트를 줄까? 네가 아파트 39층에 사는데 매번 계단을 통해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면 어떨까?"
삼촌이 잘 생각해 보라는 듯 실눈을 뜬 채로 묻는다.
“허벅지가 뜨거워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이 비 오듯 흐르겠어요."
“이제 뭔가 감이 잡히니?"
“아!!! 엘리베이터예요! 엘리베이터의 발달이 중요했겠어요.”
삼촌이 정국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맞아. 엘리베이터는 아파트를 비롯한 고층 건물의 발달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야. 한국의 초창기 대단지 아파트인 잠실 주공아파트나 반포 주공아파트는 엘리베이터 없는 5층 내외의 건축물이었단다. 서울 지역의 저층 아파트 단지들은 대부분 이미 재건축되었거나 추진 중이지만, 지방엔 아직 남아있는 곳도 상당해. 당시 저층 아파트의 꼭대기인 5층은 오르내리기가 힘들어 인기가 없고 저렴했대.”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오히려 저층이 인기가 있었겠네요.”
“그렇지. 이 아파트들이 건설된 때는 1970년대~1980년대 초반 무렵인데, 당시의 한국은 모든 아파트마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만큼 부유한 나라가 아니었어. 엘리베이터는 커녕 고층까지 상하수도를 연결하는 문제부터 기술적, 비용적 고려가 필요했던 시대였지. 건축 기술이 발달한 지금은 30~40층 아파트 짓는 것도 기술적으로 큰일이 아니지만 70년대엔 엘리베이터 있는 고층 아파트로 짓느냐, 엘리베이터 없는 저층 아파트로 짓느냐가 고민할 만한 이슈였던 거지. 게다가 폭증하는 인구에 맞춰 빨리 집을 공급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을거고”
“노인이나 장애인에겐 가혹한 시절이었네요. 70년대부터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한 거예요?”
“그 이전에도 아파트는 있었지만 70년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건설이 시작됐어. ‘한강의 기적’이라는 표현이 생길 만큼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도시의 팽창 역시 빠르게 이뤄졌고, 몰려드는 사람들로 살 집이 부족해지니 아파트도 그에 맞춰 빠른 속도로 생겨났단다. 아파트가 워낙 많으니 조금은 자조적인 표현으로 ‘아파트 공화국’이란 별명도 생긴 거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건가요?”
“최근 통계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구나. 정말 어마어마한 비율이지.”
✪ 흥미 충전
-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 / 단지 / 대단지
현재까지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아파트는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충정아파트라고 해요. 1932년에 준공된 건축물로 지하 1층에서 지상 5층 높이에 60세대 규모입니다. 거의 100년이 다 되어가는 건축물입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위트홈’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곧 재건축 될 예정이라고 해요.
충정아파트는 한 동으로 이뤄져 우리가 이해하는 아파트의 형태가 아니라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위 사진은 1958년에 지어진 종암아파트의 모습입니다. 3개의 동으로 구성되어 현재의 시각을 기준으로 보아도 아파트 단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수세식 변기를 집 안에 들인 것으로도 유명세를 치렀다 하네요. 종암 선경 아파트로 재건축(1996년) 되었습니다.
위는 최초의 대단지 아파트(642세대)라 볼 수 있는 마포구 도화동의 마포아파트입니다. 1962년에 준공되었으며, 현재는 마포 삼성 아파트로 재건축(1997년, 982세대) 되었습니다. 어느덧 다시 지어진 삼성 아파트도 30살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 짤막 퀴즈
한국에서 아파트가 일반적인 주거형태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닌 것은 무엇일까?
ⓛ 콘크리트 기술의 발달
② 엘리베이터 기술의 발달
③ 높은 곳을 오르지 못하는 악어를 피하기 위해
④ 도시의 팽창과 인구의 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