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로 배우는 용적률
쇠뿔도 단김에 빼는 상남자 정국이는 마음먹은 김에 바로 눈물바람 다음날부터 2주간 삼촌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서울에 있는 준호 삼촌의 집은 경기도에 위치한 정국이의 집에서 전철로 1시간이면 닿는 거리다. 전철에서 내린 정국이는 스마트폰 지도앱을 켜고 능숙하게 삼촌 집을 찾아간다. 전철역 출구에서 나와 1분 정도 걸었을까? 곧 무너지게 생긴 3층짜리 벽돌 연립주택이 나온다.
‘ㄷㅂ..저기구나...귀신은 안 나오겠지?'
삼촌이 살고 있는 연립주택은 삼촌이 태어나던 해에 지어졌다고 들었다. 즉, 40살인 셈이다. 당연히 엘리베이터도 없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집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모양새지만, 전철역에서 금방인 데다 주변에 각종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많아 살기엔 나쁘지 않아 보였다. 정국이도 초등학생일 때 한 번 이 집에 와본 적이 있긴 하다. 당시엔 부모님 차를 타고 온 터라 주변까지 살펴보진 못했었다. 삼촌은 재건축을 염두에 두고 이 집을 샀다고 들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 우당탕 소리가 나더니 곧 문이 열린다. 삼촌이 정국이를 보자마자 번쩍 안아 올린다. 삼촌 뼈에서 우두득 딱딱 소리가 난다.
“아유! 정국이 엄청 많이 컸네! 이제 힘들어서 들어 올리지도 못하겠다.”
정국이는 삼촌에게 안긴 채로 고개를 돌려 집안을 둘러본다. 중학생 답지 않은 퀵-스캔(quick scanning).
다행히 집 안은 한 번 수리를 거친 건지 꽤나 깔끔하다. 삼촌은 부동산에 대해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정국이의 말을 듣고 정국이가 머무는 2주에 맞춰 급히 휴가를 냈다고 했다. 뭐 부동산 공부도 좋지만 그보다 삼촌과 조카가 함께 추억도 쌓을 휴가이자 방학인 셈이다.
“정국아, 저기 네 임시 방 꾸며놨으니 머무는 동안 저기 쓰면 돼. 삼촌 마침 동네 산책 나갈 참이었는데, 짐만 풀고 같이 다녀올까? ”
“산책 좋아요.”
둘은 간단한 채비 후 현관을 나선다. 한여름에 10분 정도 동네 이곳저곳을 걷다 보니 어느새 땀이 흥건하다. 정국이가 입은 회색 티셔츠가 땀에 젖어 얼룩덜룩하다.
“정국아, 우리 동네에 꽤 유명한 제과점이 있는데 우리 거기 앉아서 땀 좀 식혔다 갈까.”
“삼촌, 독심술 하세요? 너무 좋아요!”
먹는 제안에 다소 어색했던 정국이의 마음도 한 뼘 열린 듯 하다.
“어서 오세요. 당신의 입맛을 꿰뚫는 코뚜레쥬르입니다.”
제과점 문을 열자, 코에 피어싱을 한 직원이 두 사람을 반긴다.
“아, 바나나 우유 한 잔이랑 아이스 와사비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아, 삼촌 집에 머물게 된 기념으로다가 케이크도 하나 포장해 갈까? 정국이 케이크 좋아하니? 요새 어떤 케이크가 인기인가요?”
삼촌이 직원과 정국이를 번갈아 보며 주문을 한다.
“고객님, 요새는 참치회 맛이 나는 ‘리얼 펄떡펄떡 시리즈’가 인기예요. 그중에서도 인기가 가장 많은 2층 케이크 ‘펄떡펄떡 2호’ 어떠실까요?”
“오, 그 케이크 포장해 주세요.”
지느러미 모양이 장식된 2층 케이크가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뽐낸다.
크고 작은 새하얀 정사각형 2개가 포개진 케이크는 꼭 만화에 나오는 2층 집 모양이다. 삼촌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정국아, 2층 케이크를 보니 생각나서 하는 말인데, 너 용적률에 대해서는 알고 있니?”
“용적률이 뭐예요?”
기계적인 대답이다. 눈동자는 그저 쇼케이스 안의 각양각색 케이크를 구경하느라 바쁘다.
삼촌은 정국이가 케이크에 집중하고 있는 김에 용적률에 대해 설명해 보기로 한다. 생생한 현장 학습 아니겠는가.
“죄송한데, 저희 케이크 여기서 먹다 갈게요.”
점원은 상자에 넣으려던 케이크를 큰 접시에 담아주며, 남은 케이크는 포장해 주겠다고 말을 더한다.
삼촌과 정국이는 커다란 2층 케이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단짠'의 시대가 가고 '단비'의 시대가 왔다더니 달콤하면서도 비릿한 케이크 냄새가 두 사람의 입맛을 자극한다.
“... 먹어도 되나요?”
삼촌의 엉덩이가 의자에 닿기도 전에 식욕을 참지 못한 정국이가 묻는다. 이미 포크는 케이크를 찌르고 있다.
“환영 파티 주인공 맘이지! 맛있게 먹어!!”
삼촌의 대답과 동시에 정국이의 본격 먹방이 시작된다.
“정말 잘 먹네. 먹으면서 들어봐. 어디 보자.. 음..
용적률을 이해하려면 건폐율과 연면적부터 알아야 하니... 우선 연면적이란 대지에 들어선 건축물의 바닥면적의 합계를 말해. 바닥면적은 우리가 발로 밟을 수 있는 공간의 면적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리고 건폐율은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면적의 비율을 말한단다. 100평 땅 중에 30평만 건물을 짓는 데 썼다면 건폐율이 30%인 거지. 그리고 용적률은 대지면적에 대한 연면적대지에 건축물이 둘 이상 있는 경우에는 이들 연면적의 합계의 비율을 말하고...블라블나불나불"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단어들도 너무 어렵냠냠.”
정국이가 입을 우물거리며 건성으로 대답한다.
“그래. 어렵지. 자, 이제부터는 내가 요 케이크로 설명을 해볼 테니 방금 전 설명과 비교해서 얼마나 쉽나 느껴봐!”
삼촌은 앞의 지루한 설명은 극적 대비를 위한 전략이었다는 듯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 간다.
"펄떡펄떡 2호 케이크의 바닥 종이판의 사이즈는 가로 세로가 모두 30cm야. 이 케이크 밑판을 대지의 크기라고 생각해 보자. 그럼 대지의 면적은 얼마가 되는 거지?"
“제 별명이 곱셈 귀재 곱등이라고요! 냠냠. 30x30이니까 정답은 900 cm²에요!”
음식에 빗댄 설명에 정국이도 신이 나 대답한다.
“오… 정국이 대단한걸. 맞아. 대지의 크기가 900 cm²라고 볼 수 있지. 그럼 이제 케이크를 건물이라고 생각해 보자. 펄떡펄떡 2호는 2단 케이크니까 짱구네 집같은 2층 집이라고 가정해 보는 거지. 정사각형 모양의 케이크 1층의 가로세로 크기는 20cm씩이고, 2층의 가로세로 크기는 10cm잖아? 그럼 케이크 1층의 넓이는 400 cm², 2층의 넓이는 100 cm²가 되겠지?”
“그렇지요! 합치면 500 cm²겠네요.”
“그렇지! 아까 용적률은 대지면적에 대한 연면적의 비율을 말한댔지? 대지로 볼 수 있는 케이크 밑판의 크기가 900 cm²이었고 케이크 1층과 2층의 넓이의 합이 500 cm²이니 이 케이크의 용적률은 500/900을 해서 약 55.5%가 되는 거야!”
“아! 이해돼요. 건폐율은 대지면적 대비 건물이 지어진 바닥면적의 면적이라 하셨으니 400/900으로 44.4%겠군요. 펄떡펄떡 1호는 단층짜리 케이크니까 용적률이 2호보다 낮고, 펄떡펄떡 3호는 용적률이 더 높겠어요!”
“똘똘하구나. 그럼 주변 건물들로 용적률을 살펴볼까? 저기 보이는 단독주택과 그 옆에 보이는 10층짜리 아파트 중 어떤 건물이 용적률이 더 높을까?
".... 움늄늄. 쭈압쭈압"
입안 가득 케이크가 차 있어 알아듣기가 힘들다.
"입에 있는 건 좀 삼키고 대답해 줄래?”
“…움, 쨥... 쨤깐... 기다리세요. ”
정국이가 몇 번 우물거리더니 입 안 가득 들어있던 케이크를 꿀꺽 삼킨다. 마치 커다란 물고기를 통째로 삼키는 펠리컨 같다.
“1층 케이크보다 2층 케이크의 용적률이 높았으니… 정답은 10층짜리 케이크... 아니.. 아파트예요!
“그렇지! 덧붙이자면 2000년 전후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보통 200%~300% 수준의 용적률로 지어졌단다.
실내 바닥면적의 합이 땅 면적의 2배~3배 수준이란 말이지. 반면, 전철역이나 대로변, 사거리 등 유동인구가 많은 상업지역, 준주거지역 같은 곳에는 용적률이 600~700%가 넘는 빌딩이나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기도 해. 바닥면적의 합이 땅 면적의 6-7배란 뜻이니 땅을 참 알차게 쓰고 있는 셈이지.”
“아, 그래서 전철역 주변 건물들이 높았던 거군요! 알차다, 알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