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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샤 Jun 19. 2020

미역장찌에 같이 담긴 찐사랑

공기도 맑고 하늘도 푸르고 동이 틀 때부터 해넘이 전까지 마당에서 하루 종일을 뛰어놀고 토끼풀 뜯어다가 친구들과 엮어 반지와 목걸이를 만들던 시절 나의 시골 친구들은 나의 그 시골을 항상 부러워했다. 방학이면 늘 시골간다고 자랑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날 때부터 자랐던 내 고향. 고향이란 단어를 요즘 통 들을 수가 없지만 내 고향이라는 단어는 내게 너무도 큰 향수를 가져다준다. 향수가득담긴 시골에서 유치원도 학교도 다니면 좋았겠지만 나의 교육을 걱정하신 부모님께서는 할머님 댁을 떠나 부산으로 가셨고 나는 방학이면 방학식이 끝나자마자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할머니 댁에 도착하면 언제나 그렇듯 안방 구들장에 나의 간식이 가득 쌓여 있었다. 이제나 저제나 언제 오나 싶은 손녀딸이 오기만을 하루하루 날짜 세며 기다리셨을 우리 할매. 뻥튀기에 달달한 옛날 과자에 취향은 할머니 취향이었지만 나 역시도 맛있어서 너무나 좋아했던 과자들이다.


 우리할매를 떠올리면 함께했던 시간의 즐거움, 사랑했던 마음의 행복과 볼 수 없다는 슬픔, 끝내 잡아주지 못한 손에 대한 미안함 그런 나에 대한 원망 한마디로 그 한 단어 속에 그 하나의 그리움 속에 나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있다. 


 보통 시골에서 자랐다고 하면 편식 없이 야채도 뭐도 다 잘 먹을 거라 생각을 하지만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랐어도 햄과 계란을 가장 좋아했다. 야채는 입에도 대지 않았고 아주 선택적인 편식을 했다. 물론 할매는 그런 내 입맛도 오냐오냐 해주셨다. 


 아직도 생각나는 우스운 기억은 삼계탕의 닭은 껍데기만 먹고 돼지고기는 비계만 열심히 먹어댔던 나란 아이. 어쩜 식성이 그리도 미끄덩거리는지 혀가 안 말리는 것이 다행이지 싶다. 미쿡 아이인가? 느끼한 걸 즐기는 반전 촌아이였다. 그 편식의 와중에도 내가 입맛 없을 때 또는 늘 즐겨먹던 메뉴가 있다. 바로 [미역 장아찌] 내 고향은 경상도라 그냥 장찌라 불렀다. 


 소금에 절인 미역줄기에 고추장과 된장을 적절히 양념해 참깨로 마무리해서 만들어낸 장찌는 할매 전매특허였다. 물론 다른 사람이 똑같이 만든 것도 있지만 할머니가 만든 그 맛이 나질 않았다. 


 작은 바닷가 마을이었던 나의 시골에서 직접 거두어들인 미역으로 그 줄기를 따서 만든 것이니 이보다 더 맛있을 수 있겠는가 행여 같은 미역으로 한다고해도 할매의 손맛 잊을 수가 없다. 밥을 맹물에 살살 말아서 장찌 한 젓가락 들어 올려서 입안에 츄르릅 들이마시면 환상이었다. 그렇게 맛있게 먹고 있자면 한없이 자애롭고 깊은 눈으로 그윽하게 나를 바라보는 할매눈, 쌍꺼풀이 진하게 진 할머니의 눈매는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각설하고 김 모락 모락나는 맨밥에 올려먹어도 그 맛이 일품이었으니 어린 날의 기억임에도 장찌는 잊지 못한다.  


 시집가기 전에 일 많이하면 시집가서도 일복이 많다고 반찬하나 제대로 안 가르치셨던 우리 할머니의 딸인 우리 엄마는 배운적이 없었다는 사실! 하지만 내가 좋아 하는 걸 아시니 재현하고자 여러 차례 반복하며 기억을 떠올려 부드러운 미역줄기를 일부러 주문해서 만들어 주셨다. 


 역시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이제는 할머니의 장찌 맛을 엄마를 통해 또 한 번 느끼고 있다. 그래서 장아찌 먹으면서 눈물을 글썽이거나 그리움을 삼키거나 한 적도 있다. 


 방학이 끝나고 돌아올 때면 아픈 다리때문에 툇마루 넘어 안방에 앉아 손을 흔드셨던 그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장아찌. 모르긴 몰라도 그렇게 방학기간내내 부대끼며 함께있다가 내가 키운 내새끼 보내고 나면 혼자 얼마나 엉엉 우셨을까 싶다. 할매 할매 울 할매 금쪽같은 손녀가 잠이 들기전이면 5남매 키워내며 길게 늘어진 따뜻한 젖가슴 아래에 고사리 손을 넣어 따뜻함을 느끼도록 보듬어주곤 하셨다. 너무나 그리운 그 따뜻한 젖무덤아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감촉하나까지 전달된다.


 엄마가 아닌 할매가 내게 각인되어 있다는게 나는 때로는 오히려 행복하다. 그 사랑을 지금 볼 수 없어도 마치 옆에있는 듯 느낄 수 있는 애착을 선물해주신 나의 할머니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을까 싶어서 더욱 그립기도 하고 말이다.


 편식 쟁이도 잘 먹던 꿀맛 장찌. 장찌만 보면 다시 그 날 그 밥상 앞으로 작은 꼬마 여자아이는 소환된다. 아마 그리움이야 나보다 엄마가 더 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지만 짭짤한 미역에 담긴 짭짤한 슬픔은 이내 할머니의 인자한 모습과 우리의 추억을 떠올림에 금방 달달한 행복감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한식이 맵고 짜고 달달하고 그 맛이 확실한게 그래서가 아닐까? 우리네 인생을 소중히 생각하고 담아낸 선조들의 지혜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의 시골 나의 고향 찐사랑이 담긴 그 맛 예쁘게 가슴에 다시 담아두고 미소를 띄워보낸다. 이 미소가 하늘까지 닿기를 간절히 바란다. 당신껜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했을 당신의 손녀가 이렇게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고 아직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노라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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