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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하 Dec 02. 2023

8화 - 빵

 "얼마에요?" "빵 5개 하셔서 8700원입니다. 할인 적립 카드 있으신가요?" "아니요, 그냥 주세요." "네, 여기 있습니다. 맛잇게 드세요." 아침 장사 개시를 했다. 오늘도 많이 팔려라 수현은 미소 지으며 제빵사를 도와 일거리를 시작한다. 아침 빵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한지 한 달이 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빵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와야 해서 춥고 힘들었지만, 수현은 오히려 활력이 느껴져서 좋았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하는 하루의 아침도 꽤 괜찮았다. 은둔자에서 다시 생활인으로 나온 기분이었다. 갓 구운 빵에서 나는 달큰한 냄새와 몽실몽실 따끈한 김을 느끼고 있자면 마음 속 저 깊은 곳에서 누군가 '괜찮아, 잘 하고 있어.' 토닥거려주는 느낌이다.

 "샌드위치랑 우유 5500원입니다." 매일 아침 이 곳을 들러 샌드위치를 먹고 가는 회사원이다. 아침을 샌드위치로 먹고 출근하는 눈치다. '아, 나도 이 시간 저렇게 출근하고 있어야 하는데.' 진열장에  빵집 근무복을 입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의 모습에 수현은 숨길 수 없는 한숨이 나온다. 서한대 다음의 이력서가 빵집일 줄은 미처 몰랐다. 아르바이트 역시 다시 하게 될 줄 몰랐다.  솔직히 대학원에 가면서 아르바이트를 모두 정리했을 때 수현은 알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수능 끝나는 다음 날부터 해 오던 아르바이트 생활에 지쳐있기도 했다. 학기 중에는 2개 정도, 방학 때는 3~4개. 명절에는 가격이 쎈 마트 알바들. 방학이면 유럽 여행이다, 휴학하면 어학 연수다 가는 동기들이 말할 수 없었지만 무척 부러웠다. 그런 수현에게 언제 그만하게 될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연구실에서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은 안정적이었고 번듯한 삶 그 자체였다. 그런데 다시 돌아왔다, 알바의 세계로. 3년간 떠난 삶 자체가 이질적이었고 다시 수현의 본래 삶으로 돌아온 거 같이 일들은 익숙했고 손에 금세 익었다. 스무살 언저리에 하던 아르바이트들은 새싹같이 풋풋했는데 서른을 바라보며 하는 아르바이트는 겨울 나무의 앙상한 가럼 시리기만 하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하루 중 수현의 힐링 순간이다. 오늘 하루 열심히 일했다는 느낌과 적당한 운동, 시원한 바람이 수현을 스쳐 지나간다. 아르바이트를 가기 위해 일찍 잠에서 깨는 순간부터 집에 돌아오기까지 하루의 시간이 째깍째깍 바쁘게 지나간다. 노동이 주는 신성함을 느끼며 감사하다. 집에서 한 숨을 돌리고 나면 그 때부터 수현은 헛헛해졌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했으면 지금 이렇게 놀고 먹고 있지는 않을텐데. 괜히 황새 따라가려고 서한대에 들어갔나? 학부 대학원으로 갔으면 지금쯤 학위 인정 받고 떵떵거리며 취업해서 잘 살고 있을텐데. 내가 너무 빨리 포기한 것은 아닐까? 조금 더 영어 시험을 쳐서 다음 학기라도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든, 박사를 가는 게 현명한 것 아닐까? 수현의 머릿 속에서 한 바탕 영화가 펼쳐진다. '그래, 결심했어.' 라고 인생의 양 갈래를 겪어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정해진 길이 없고 답이 없어 불안한 수현이다. 원래 20대는 불안정한거라고, 그래서 무슨 방향이든 갈 수 있고 아무리 불가능해 보여도 해볼 수 있는 거라고, 그게 특권이라는 것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그러니 20대지.

 띠이잉! 올 일 없는 핸드폰에서 문자 소리가 울린다. 삼국전자의 입사 시험을 통과했다는 문자다. 면접 장소와 세부 사항은 이메일로 보낸다고 한다. 우와, 이게 진짜 현실인가. 방금까지 홀로 영화 속에서 이 시나리오, 저 시나리오로 후회만 하고 있었는데, 방금 온 문자는 뭐지? 수현은 냉큼 칠흙같은 어둠 속 과거에서 쨍쨍한 밝은 미래로 넘어가본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온다. 커트라인을 넘지 못하는 점수의 문자만 내리 받다가 이런 합격 문자를 받아도 되나?받을 수 있는 것인가?얼떨떨하기만 한 수현이다. 업을 한 학기, 두 학기, 세 학기로 넘기면서 이대로 계속 영어 시험만 보며 허송세월할 수 없다고 느낀 수현은 얼마 전 삼국전자에 자기소개서를 제출했다. 삼국전자가 우리 나라 대표 기업이이력서를 제출한 것은 아니다. 대학원 사람들이 제일 안 가는 곳이라 선택했다. 한 때는 평생을 간직해 온 꿈이었지만 이제는 느낀,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왕 새롭게 시작하기로 생각했다면 전혀 다른 곳에서 출발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엄마, 나 취업했어! 됐어! 됐대!" 아르바이트를 끝마치고 나오는 길 구세주 같은 문자가 도착해있다. 바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이주 전 면접의 결과가 나왔다. 2년 동안 본 시험에서는 한 번도 합격하지 못했는데, 취업에서는 단 번에 합격이 되었다. 끈적끈적한 갯뻘 바닥에서 이렇게 한 방에 벗어날 수도 있구나. 하늘에서 누군가 날 끌어올려주는 기분이 이러할까?수현은 날아오를 듯 벅차 올랐다. 날아 오르고 싶었다. 삼국 전자의 미래가 현실로 다가왔다. 수현은 자신이 빵처럼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비로서 숨이 쉬어졌다. 오븐 안에서 밀가루 반죽이 서시히 빨갛게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자면 '나 살아 있어요.' 숨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빵이 탄생한다. 수현을 다시 살린 건 쌔근쌔근 숨쉬는 빵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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