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것은 소금물에서 소금을 건져내는 것이지.
물의 양이 같고,
작가마다 소금의 양은 달라.
그러니, 아주 짜거나, 소금 맛이 거의 없거나
입에 머금을 만한 소금물이 있어.
물
물이어야 하는 이유는
물이 지구를 이루고, 사람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야.
글의 소재는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고
모든 작가의 갈증을 풀어주는 본질인 것이지.
소금
소금이어야 하는 이유는
손님이 찾아와 식탁 위의 소금을 덜어가는* 귀한 재료이기 때문이야.
오늘, 엄마는 '책의 저자'의 식탁에서
소금을 덜어왔어.
바다에서 직접 구하지 않았지만
얼마나 사유하는가에 따라 소금의 양이 달라질 거야.
.
물의 양은 같아도, 소금의 양이 달라지니
소재는 같아도, 사유의 깊이가 달라지니
글의 농도가 달라질 거야.
작가들의 소금물을 찍어, 맛을 보면
다 다른 이유이지.
퇴고는 소금을 건지기 위해
물을 따라 버리는 일이야.
하지만, 소금은 이미 녹아 있어서 건질 수가 없어.
건질 수 없지만 남아 있어.
작가의 필요만큼 소금을 넣었고
작가의 요구만큼 농도를 가졌어.
이 글이 발행되면 독자들은 소금물을 마실 수 있지.
짠맛을 느끼는 정도는 소금물에 따라 다를 것이고
독자들의 짠맛 취향에 따라 다를 것이야.
느끼는 바, 표현하는 바가 다를 것이야.
물은 버렸지만 소금은 남아 있어.
물의 양은 같았지만 소금의 양은 작가의 선택이야.
엄마는 요즘 새벽독서를 하고 있어.
읽는 책이 다르지만 토론이 가능하지.
내용은 다르지만 하나의 본질로 건져내지.
저자가 남긴 소금을 맛본다는 것은
균질하게 녹이기까지의 수고를 느끼는 것이고
소금을 녹이기 위해
천천히 젓든 빨리 젓든
물이 차갑든 따뜻하든
소금 알갱이가 작든 크든
모두 작가의 몫이야.
세상은 물이야.
너의 경험은 소금이지.
세상 곳곳에서 소금을 덜어와.
천천히 젓든
따뚯한 물에 녹이든
알갱이를 빻든
소금을 녹이는 건 너의 몫이야
소금물의 짠 정도는 너의 본질이야.
너의 삶의 농도가 될 거야.
엄마가 물을 따라버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짧지 않지만
지금은 삶의 농도를 맞춰가는 중이란다.
아들! 너는 어디서
얼마만큼의 소금을 덜어오겠니?
어떠니?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말하는 건 옛말이지만
소금물의 소금을 건져보라는 건.
* 소금이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때, 프랑스에서는 손님이 오면 식탁에 소금을 두고 덜어가게 했다.
출처 : 찬도기야우파니샤드 중에서(영원의 철학)
[소금을 물에 넣고 내일 아침 내게 오너라]
: 아들아 소금물 속의 소금과 마찬가지로, 네가 진리를 인식하지 못한다 해도 그것은 실제로 거기 있단다. 감지하기 어려운 본질인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자체의 본성을 가진다. 그것은 진리요, 참자아이며, 스웨타케투야. 네가 바로 그것이니라.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고, 지각할 수 없는 것을 지각하며, 알려지지 않는 것을 아는 그런 지식을 청해 보았느냐? : 네이버 카페
#퇴고 # 본질 #소금물 #세상의 소금 #농도 #소금
[빛작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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