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 믿음 : 카잔차키스 24

by 빛작

내 젊은 시절은 불안과 악몽과 회의뿐이었고,

성숙은 절름발이 해답에 지나지 않았다. 별과 인간과 사상으로 눈을 돌려 봐도 혼돈뿐이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빨간 발톱이 달리 파랑새인 신을 찾아냈을 때 내가 겪어야 했던 고뇌!


길을 하나 골라 끝까지 따라가서 보니 심연이었다. 겁이 나서 돌아선 내가 다른 길을 따라가서 보니, 끝에는 또다시 심연이었다. 다시 물러나 새로이 여행을 해도 똑같은 심연이 불쑥 앞에서 입을 벌렸다. 이성의 모든 길은 나를 심연으로 이끌어갔다.


내 젊음과 성숙은 허공에서 전율과 희망의 두 말뚝 주위를 맴돌았지만, 이제 나이가 들자 나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며 조용히 심연 앞에 선다.


나는, 아니 내가 아니라 내 손으로 맞는 오디세우스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았고,

더 이상 자신을 부끄럽게 행동하지 않았다.

나는 심연을 차분히 맞게끔 그를 창조했고,

그를 창조하여 나는 그와 닮으려고 노력했다.

나 자신이 창조되는 중이었다.


나는 내 모든 열망을 오디세우스에게 맡겼으니,

그는 인간의 미래가 흘러 들어가도록 내가 파내는 틀이었다. 내가 열망했으나 달성하지 못했던 모든 것을 그는 달성하리라. 그는 미래를 창조하는 어둡고 밝은 힘들을 끌어내는 마력이었다.

믿음은 산을 움직이니, 그를 믿으면 그가 오리라.


누가 오는가? 내가 창조한 오디세우스가, 그는 원형(原型)이었다.


영혼의 자서전, 카잔차키스


믿음은 산을 움직이니* _ 빛작


사람들은 한 우물을 파라고 말했다.

내가 다른 우물을 판다고 했을 때

잘할 수 있겠나 하고 걱정을 해주었다

그때 나도 처음 파본 우물이었기에

해나갈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었지만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차오르는 게 좋았던 것 같다

새로운 물리현상을 배울 때처럼

빠뜨렸던 수학공식을 알게 된 때같이

새로움을 맞닥뜨리는 기쁨이 있었던 것 같다

반짝거리지 않아도 얻게 되는 것들에

파고들면 들수록 내 안의 우물 안에서

폴짝폴짝 잠재력이 뛰어오름을 느꼈다

내가 알던 성격과 가치관이 갖은 혼합과

조화를 이루어 감각을 깨워주었고

가고 있는 과정들이 경험으로 채워져 갔다

점점 내려갈수록 내가 지닌 광물들이

루틴의 재료가 되고 가치 있는 보석이 되었다

이제 파기 시작한, 내가 따라가고 있는

인문학의 우물 속으로 무엇이 오고 있을까

지나간 시절에 팠던 우물과 멀리 있다고

실망하지 않으며 불안해하지 않으며

긍정적인 경험 더미로 쌓을 기회가 될 것이라며

바닥을 미처 드러내지 못했던 때를 감사히 여겼다

미래가 흘러들어 갈 자리임을 알아차린 건

몇 군데의 우물이 아주 큰 우물의 일부였다는 것

미처 알지 못했던 강인함을 확인해 준

해보았던 역할들이었다는 것

믿을 수 있는 우물인지 순전히

내 안의 근본은 이미 알고 었다는 것



본 브런치북 '빛나는 문장들'은 인문학 서에서 발췌한 글귀와 저의 짧은 글을 담고 있습니다.

글벗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영혼의 자서전, 카잔차키스, 열린 책들, 2019

#카잔차키스 #인문학 #잠재력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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