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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둑이 되었다

물건으로 친구를 사다

by 양다경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짙푸른 잎을 달고 늘어선 가로수. 그 사이로 나는 걷고 있었다. 주변으로 비둘기가 옹기종기 앉아있고, 하교를 알려주듯 학교 앞, 정문 사이로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모여든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하루. 완벽하게 햇살이 아우러지는 화창한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에 관심이 없는 척, 목을 움츠리고 걷고 있었다. 그러던 중 불현듯, 뒤로 들리는 듯한 큰 웃음소리. 나는 그 청아한 웃음소리에 휙, 돌아보고 뒤를 살피게 되었다. ​뭔가 그룹 애들이 삼삼오오 모여 나를 따라오는 듯한 느낌. 자세히 보니 새로 올라간 학년에 같은 반 아이들이다. 그 애들은 들뜬 표정으로 서로 눈짓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러고는 그중 한 아이가 나를 보더니 나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 경쾌한 발걸음에 나도 멈춰 섰다. 그러자 그 아이는 방긋 웃으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너희 집 학교 안에서 문방구 하고 있지?" 하고 묻는다. 곧 뒤에 아이들도 서서히 다가오더니 나를 둘러싸고, '키득키득' 웃으며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들이 있지. 너랑 친구 하고 싶은데, 같이 친구 할래?" 하고 뛰어온 아이가 입을 열었다. 나는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친구 하자는 말에 흔들렸다. 그때의 나는 친구가 없는 외톨이였기에. 손톱을 물어뜯으며 고민하는 척하는 나. 하지만 내심 무척 기뻤다. 아이들은 그런 나를 보며 "친구 하자~! 응!" 졸라대며 응석을 부리기 시작했다. 나는 마지못해 하는 말투로 "그래!" 하며 승낙한다.


​​친구가 생긴다는 것. 어두운 먼지를 마음의 창고에 잔뜩 가두고 있던 내가, 누군가에게 의지하면 그 출구의 문을 열 수 있다는 생각에.


​​​하지만 문제는 다음 날부터 시작되었다. 그 아이들은 내게 가게에서 파는 물건을 하나둘씩 가져오길 바랐다. 이를테면 샤프, 칼, 지우개 등등. 가져오면 함께 놀아준다는 단서를 단것이다. 나는 그 말에 애들이 시키는 대로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더 이상 홀로 다니는 가여운 아이가 아니다'라는 생각. 그 생각이 온통 머리에 가득 찼다. 그래서 부모님 몰래 아이들이 요구하는 것을 하나둘씩 훔쳐냈다. 그리고 아이들 손에 쥐여주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약속한 대로 놀이에 끼워 주고 놀아준 것이다. 나는 친구를 가진 느낌에 더할 나위 없이 행복에 부풀었다. 아이들에게 뭐든지 다 해줄 수 있을 것처럼 말하기도 하며. 아이들은 내 말에 환상에 젖어 한층 환한 얼굴로 나를 대했다. 나 같은 친구를 곁에 두는 것을 왠지 뿌듯해하는 듯도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더욱 고개를 으쓱하고 우쭐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태엽이 감긴 시계처럼 돌아가고 있는 나의 도둑질. 모든 일은 꼬리가 길면 밟히게 되어있다. 엄마가 내가 가게 물건을 스리슬쩍 하는 것을 본 것이다. 들킨 나는 우왕좌왕하다 티셔츠 안쪽에 있는 모든 물건을 빠르게 아래로 쏟아냈다. 전부 아이들에게 가져다줄 문구류였다. 엄마는 화가 나 손에 잡히는 대로 내게 물건을 집어던졌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해!"라고 내게 물었다. 그리고 동시에 손바닥으로 내 뺨을 후려쳤다. 뺨을 맞아 뺨 전체가 벌겋게 달아오르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도 손을 접어 올리며, 더욱 세게 때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맞는 것이 두려웠다. 벌벌 떨며 콧물, 눈물과 함께 실토하는 나. 엄마는 내 얘기를 듣자마자 앞치마를 걷어 젖히고, "내 이것들을!" 하며 가게에서 튕기듯이 나가 학교 교무실로 향했다.


​그날 이후, 그룹 친구들은 나를 본 채 만 채하고, 서서히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곤 그 후 비방하는 반 아이들도 늘어만 가고. 나는 다시 혼자되는 불안감에 '해명할게, 만나자!"라는 쪽지를 그룹 친구들에게 남겼다. 그래서 그 아이들과 급식 식당 뒤편에서 서둘러 만나게 되었고. 나는 다시 그룹에 넣어달라고 아이들에게 싹싹 빌며 용서를 구했다. 다시 한번,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그러나 마음이 싸늘해진 아이들은 나를 끼워줄 생각이 없었다. 아이들은 나를 보며 얼굴을 찡그리고 연신 혀를 찼다. 그러던 중 찰나, 그룹 보스 아이가 욕을 내뱉으며, 화가 났는지 발로 내 정강이를 세게 걷어차는 것이다. 나는 "앗!" 하며 무릎이 굽혀졌다, 중심이 흔들렸다. 아이들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아무렇지 않게 히죽거리며 뒤돌아서 걸어갔다.


​​​​순간, 난 애들이 날 친구로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라고 직감했다.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갖고자 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사실. 나는 분함에 눈물을 쓰윽 훔치며, 입술을 꽈악 깨물고 쫓아갔다. 빠르게 빠르게. 그룹의 보스 아이의 등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야!" 하며 오른쪽 발을 들고, 보스 애의 등을 발로 찼다. 그 애는 급습한 내 공격에 무방비라 넘어진다. 나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넘어지는 그 아이의 머리를 내 품 안에 들어오게 했다. 머리를 쥐어뜯는다. 나는 아랑곳없이 맹렬하게. 주변 아이들이 말려도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나는 분노의 괴물로 변해있었다.



​왠지 나는 그때를 회상하면 시간이 정지된 느낌이 든다. 어쩌면 나 스스로 도둑질을 했으면서 그 아이들만 탓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미안한 감이 들기 시작하면서. 이용당했다는 것보다 시키는 대로 하면서 우쭐대던 그때의 내가 미운 것이다. 나를 방어하기 위해 그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 같은. 내가 부모님 가게의 물건을 훔치면서 그것이 나쁜 일인지 몰랐던 것처럼, 그 아이들도 내게 한 일이 나쁜 일인지 몰랐을 것이다. 그건 나를 사랑하지 않는 문제에서 시발점이 되어, 무언가를 얻기 위해 서로가 이용한 것은 마찬가지였을 지도.


​친구를 사귈 때 애써 나 자신을 부풀리거나 안간힘을 쓸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해서 누군가를 곁에 두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인가, 그것은 분명 나를 속이고 상대도 기만하는 일일 것이다. 때문에 본연의 있는 모습 그대로 너와 나에게 전달되어, 사랑받고 사랑하길 바라며. 그때의 어린 나와 그 아이들에게 다가가, 중년이 된 내가 있는 힘껏, 꼭 안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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