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마중 나온 아버지
아침 일찍, 공기는 차가움이 남아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짐 자전거 뒤에 실려 바람을 가르며 중학교를 간다. 눈 한쪽의 실명, 다른 한쪽의 희미한 시력. 그리고 두꺼운 안경을 쓴 아버지는 사닥다리 같은 긴 손잡이를 "꼭 잡아!"라고 틈틈이 말하며 곡예 수준에 자전거를 타신다. 그리고 나를 바래다줄 때 기분이 좋으신지 '배신자'라는 곡을 흥얼거렸다. 그렇게 조금은 먼 중학교라 아버지는 일주일에 두세 번 바래다주셨다.
그런데 나는 자전거를 타고 등교할 때마다 얼굴을 내밀지 않고, 숨겼다. 그건 내가 아버지와 엮이기 싫은 무언의 창피함 때문이었다. 낡은 옷, 낡은 신발, 낡은 장갑. 그런 허드레 한 복장으로 국민학교 안에서 문방구를 하셨던 아버지. 가게에서 파는 물건의 봉지가 학교 안에 보일 새면 허리를 구부려 아이들이 버린 쓰레기를 줍고 다니셨다. 어떨 땐 그 모습이 달팽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느린 걸음, 등에 걸친 망태기, 굴절된 안경. 그 느낌은 마치 내게 보이기 싫은 흉터와도 같았다. 그래서 지나가다 아버지와 마주칠 때면 나는 서먹하게 돌아서기 일쑤였고. 그건 일상에서 부녀간 불필요한 대화가 없었기에, 마음의 요동침 없이 그런 행동을 서슴지 않고 했다.
그런 어느 날, 우산 없이 학교를 갔을 때이다. 비는 수도를 튼 것처럼 쏟아졌다. 나는 걱정이 되었지만 평소 비를 좋아했던 터라 맞는 것쯤, 하며 수업을 마치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맞은편으로 아버지가 우산을 들고, 학교 정문을 향해 걸어오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보는 순간, 냅다 아버지에게 뛰어가고도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목뒤가 뻣뻣해지더니 혹시나 친구들에게 들킬까 봐, 속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났다. 그래서 눈이 동그래지고 아는 친구가 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버지는 나의 그런 모습도 아랑곳없이 딸을 알아보자마자, 옅은 미소로 웃고 계셨다. 나는 그 광경에도 누가 볼 새라 다가서는 아버지를 지나가는 타인처럼 외면했다. 그리고 아버지 곁을 지나쳐 그냥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갔다. 아버지는 바로 내 뒤를 바삐 쫓아왔는데."우산 쓰고 가~!"라며 쌀쌀맞은 내 등 뒤로, 연거푸 말을 거셨다. 그런데도 나는 대답 없이 추적추적 비를 맞고, 더욱 빠른 걸음으로 속력을 냈다.
그런데 간격이 너무 멀어지는 듯도 해서 순간 뒤돌아보니, 젖은 도로에 운동화와 옷자락이 흥건하게 물을 머금고, 낡은 우산도 비틀대서 아버지가 거의 비를 다 맞고 계셨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안쓰러운 게 아니라 화가 났다. "다음엔 오후에 마중 나오지 마세요!", 하고 못된 소리를 뱉어냈다. 그렇게 엉망진창 곪을 때로 곪은 나쁜 딸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 추억은 시간 속, 낡은 필름이 되어 기억 영화에 갇히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예상 밖에 신호조차 없었던 아버지의 이른 암 선고, 아버지는 마르디 마른 야원 얼굴을 하시고, 6개월을 넘기기 힘들어하셨다. 간호를 한다 해도 간호도 어설프게 한 나였건만. 아버지는 아픈 가운데에서도 생애 처음으로 "우리 딸, 사랑해, 예쁘다"라는 애정 담긴 말을 인사처럼 건네주셨다. 그 말을 들으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깊은 사랑의 뿌리에 부성애가 쏟아부어져, 나를 환하게 눈물짓게 했다. 흡사 마음은 온통 먹구름 껴 회색인데, 빛 한줄기가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결국 아버지는 짊어졌던 달팽이 집과도 같은 가족을 두고, 눈동자가 보이지 않게 피곤한 눈을 감고 뜨지 않으셨다.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였는데. 그 미소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감싸주는 달빛과 같은 온화함이었다.
나는 나를 지탱했던 수호신 같은 사랑, 그 사랑을 더 이상 가지지 못할 슬픔에 입안에 피 냄새가 나는 듯도 한, 폭풍 오열을 토해냈다. 내 주변을 달빛처럼 비춰주시고, 정말 달이 있는 곳으로 떠나버린 아버지.
아버지의 사랑, 그 사랑은 가슴속에만 있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지만, 늘 내 곁에 맴돌고 그냥 존재만으로도 빛이 되던 굳은 심지의 사랑이었다.
지금 당장 내가 달려갈 시간과 장소가 있다면. 중학교 시절, 비 오는 그때. 저 멀리 마중 나온 아버지에게 첨벙첨벙 달려가 나란히 우산을 쓰고, 환하게 웃으며 걸어가고 싶다.